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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양승태 재판에서 메추리알·멸치가 왜 나와? 증거조사 놓고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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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리알에 멸치 같이 볶은 것 있지 않습니까. 메추리알에서 멸치를 다 골라내서, 한 번에 털어내면 간단한데 메추리알을 먹으면 중간에 꼭 멸치가 끼어들어와서 먹어야 됩니다. 이런 것을 굳이 힘들게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양 전 대법원장 측 이상원 변호사가 갑자기 ‘메추리알’, ‘멸치’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사법농단 재판에서 ‘서증조사’를 놓고 검찰과 피고인들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서증조사는 서류 증거를 법정에 꺼내 함께 보면서 확인하는 절차다. 재판 개입 관련 내용이 기재돼 있는 법원행정처 문건이 대표적인 서류 증거다. 피고인들 반대로 재판부가 이미 채택한 증거들도 서증조사를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경향신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캐릭터. 김용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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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검찰은 법관 증인들의 불출석 때문에 재판이 공전되자 그 시간에 서증조사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신속한 심리를 하자는 취지다. 서증조사를 하려면 일단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인 증거능력을 갖춰야 한다. 검찰은 문건 작성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작성했다고 인정한 서류들은 증거능력을 갖췄고, 서증조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단 문건에 어떠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이었던 판사들은 증인으로 나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들은 말을 토대로 문건을 작성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등 피고인들은 문건에 담긴 ‘임 전 차장의 말’ 부분에 대해 임 전 차장이 증인으로 직접 나와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이상 증거능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소위 전문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증조사를 모든 증인에 대한 신문이 끝난 뒤에 하자고 주장했다. 이상원 변호사는 “문제는 증거능력이 없는 부분을 골라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라며 “굳이 힘들게 그럴 필요 없이 (당장 하지 말고) 나중에 일괄적으로 서증조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했다. 메추리알과 멸치 이야기는 여기서 나왔다.

피고인들 주장대로 할 경우 재판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임 전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한참 뒤에나 가능하고, 임 전 차장이 증인으로 나오더라도 자신의 형사재판과 관련이 있다며 증언거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임 전 차장이 증언거부하면 증언거부를 이유로 피고인들은 문건 전체가 허위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가 일제 강제징용 사건 관련해 기재한 메모도 서증조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메모를 작성했다고 인정했지만, 일부 메모에 대해 증언거부하면서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는 게 이유다.

검찰은 “이미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했고, 작성자가 자신이 작성했다고 인정까지 한 문건에 대해서 피고인 측이 이의 제기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서증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앞서 임 전 차장 재판에서도 유사한 공방이 있었지만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는 문건들을 서증조사를 위한 증거로 채택하고, 문건에 그러한 내용이 기재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서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잠정 판단을 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 때 나눈 대화 내용을 전해듣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기록한 이른바 ‘안종범 수첩’이 문제가 됐다. 전해들은 내용을 기재한 것이어서 증거로 아예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이 부회장 2심 재판부 판단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근 이 판단이 잘못됐다면서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에게 그러한 말을 들었고, 수첩에 기재됐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증거로는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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