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7시 반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한 삼겹살 전문점. 식사 시간인데도 테이블 두세 곳이 비어 있었다. 연탄불에 돼지고기를 굽던 주인은 "아무래도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손님이 조금 줄어든 것 같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삼겹살집을 자주 찾는다는 김모(52)씨는 "퇴근한 직장인들로 붐빌 시간인데 오늘따라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시에 이어 연천군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ASF·African Swine Fever)이 번지면서 돼지고기 음식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우려하고 있다.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인상될 수 있고, 돼지고기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 ‘삼겹살 파동’ 재연될까… 돼지고기 가격 급등에 고민 커진 식당가
지난 17일 저녁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삼겹살 전문점. / 안소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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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돼지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치료제가 없어 돼지 치사율이 100%에 이른다. 확산될 경우 4년 전 돼지 구제역으로 일었던 ‘삼겹살 파동’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에 번지자마자 돼지고기 경매가는 급등하고 있다.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 집계를 보면, 국내 첫 확진 소식이 들린 지난 17일 전국 돼지고기 평균 경매가는 전날보다 31%(1417원) 오른 5975원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재고가 많지 않은 소규모 식당은 판매가를 올려야 할지 고민이 크다. 서울 광화문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박보연(51)씨는 "6년 만에 가격인상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기 비축량이 이틀 치밖에 없는데 당황스럽다"며 "도매가가 치솟으면 1인분(1만3000원)을 최대 1만8000원까지 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11년째 삼겹살집을 운영 중인 이상경(37)씨도 "거래처에 물어보니 kg당 10% 정도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며 "판매가를 바로 인상하면 손님이 다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이 된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김종수(59)씨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번지면 한 두 달정도 타격이 있지 않겠냐"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보고 있다"고 했다.
◇"인체 무해하다"고 하지만… 불안한 소비자들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돼지고기를 먹어도 인체에는 무해(無害)하지만, 소비자들의 걱정은 큰 편이다. 아들 두명을 키우는 강모(54)씨는 "주로 카레나 김치찌개 같은 음식을 많이 해먹는데 돼지고기 대신 뭘 넣을지 고민 중"이라며 "혹시 몰라서 가족에게도 삼겹살 같은 돼지고기를 사 먹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삼겹살집. 1층에 있는 테이블 2~3곳에만 손님이 앉아있었다./ 김세은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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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서다솜(27)씨도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지만 주변에서 돼지고기 먹는 것을 꺼리면 자주 먹지 않게 될 것 같다"며 "조류독감 때 닭고기를 피했듯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날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이준원(29)씨도 "전염성은 없다지만 안전하다는 확신이 없어서 돼지고기에 선뜻 손이 가진 않는다"고 했다.
한돈농가들은 방역을 강화하는 한편, 소비심리 악화를 막으려 나섰다. 대한한돈협회는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한돈 농가들은 방역·소독을 철저하게 하고, 종사자 간의 직접적 교류를 자제하는 등 확산방지에 노력하고 있다"며 "2011년 구제역 사태 때도 자극적인 표현, 사진 때문에 소비자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 국내 축산업이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안소영 기자(seenrun@chosunbiz.com);김세은 인턴기자(고려대 독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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