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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상륙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33> 정부 무능+농민 이기심에 돼지열병 확산···亞육류시장 초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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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민폐' 中 돼지열병 부실 대응

ASF 발병후 정부는 사실 은폐·농가는 도축해 내다 팔아

방역대책 마련 못해 몽골·베트남·北 거쳐 한국까지 전염

"올 중국돼지 2억마리 죽을것" 공급비상에 가격 천정부지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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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발해 방송과 신문 보도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지난 1년여 동안 이 돼지 전염병에 시달려온 중국의 관영매체에서는 ASF에 관한 언급을 보기 드물다. 중국 농업농촌부 등 정부에서 대책을 발표할 때만 ASF가 간간이 등장할 뿐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생각보다 이 돼지 전염병에 둔감하다. 중국에서 ASF가 발병 이후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이제는 거의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데는 이 같은 문제의식의 결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사이 돼지고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46.7%나 치솟은 데 이어 올해 말까지 두 배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지방에서는 돼지고기를 구하기조차 힘들다. 베이징 왕징의 한 시민은 “돼지고기가 너무 비싸졌다”며 “ASF 때문이라고 하는데 중국같이 큰 나라에서 돼지가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중국 전역에 만연한 ASF 문제는 이 나라 축산 방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중국 정부의 무능과 농민들의 이기심이 지난해 8월 랴오닝성 농가에서 발발한 이 질병이 1년여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가도록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중국 관영매체들도 앵무새처럼 ‘문제없다’는 정부의 발표를 반복하면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제 중국 각지로 번진 ASF는 국경을 건너 인근 국가로 확산하면서 아시아 육류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북한을 지나 결국 이날 한국에까지 전파됐다. 급등하는 돼지 가격이 민생을 위협하자 중국 정부도 나름 대책을 모색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관심이 여전히 돼지고기 증산과 가격안정에만 쏠린 상황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많다.

ASF는 한국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급성형은 100%의 폐사율을 보인다. 보통형의 폐사율도 30~70%에 이른다. 즉 병에 걸리면 대부분 죽게 되는데 아직 예방백신도 나오지 않았다. 질병은 주로 감염된 돼지나 생산물의 이동, 오염된 남은 음식물 등을 통해 전파된다. 다행히 인간에게 전염되지는 않는데 이것이 과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와는 달리 중국인들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100여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발견된 돼지 전염병이다. 지난 1960년대 유럽으로 전파됐다가 1990년대까지 박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발발했는데 러시아는 수십만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하는 등 박멸에 총력을 기울였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8월3일 만주의 랴오닝성 선양시에서 처음 발견됐다. 위치로 봐서는 러시아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곧바로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했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다. 이후 8월16일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확진판정을 받은 돼지가 나왔고 이어 19일에는 장쑤성 롄윈강시에서도 발병했다. 랴오닝성에서 장쑤성까지 거리가 거의 2,000㎞인데 겨우 2주 남짓 만에 퍼진 것이다. 오염된 돼지가 트럭이라도 타고 이동하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전파속도다.

중국 당국이 통제한다고 나서기는 했지만 ASF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국으로 퍼졌다. 11월16일에는 쓰촨성 이빈시에서 발견됐다. 쓰촨성은 중국 내에서도 돼지를 가장 많이 키우는 지역이다. 이어 11월23일에는 수도 베이징에서도 이 병에 걸린 돼지가 나왔다. 사실상 전국에 퍼진 것이다.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중국발 ASF가 국경을 넘었다. 1월 몽골에서 발발한 ASF는 러시아보다는 중국에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어 2월에는 남쪽인 베트남에서 감염된 돼지가 출현했고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발병이 이어졌다. 북한도 중국 국경과 인접한 자강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했다고 5월 세계동물보건기구(0IE)에 공식 신고했다.

중국발 ASF가 이토록 빨리 확산한 데 대해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의 허술한 방역체계와 농가의 이기심이 상승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철저한 사전 방역과 함께 병에 걸린 돼지를 살처분해야 하는 지방정부는 오히려 발병 사실을 숨겼다. 중앙정부의 문책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지방정부들이 발병 사실 자체를 숨기면서 ASF의 확산세가 빨라졌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은 이상증세를 보이는 돼지를 당국에 신고하기는커녕 도축해 시장에 팔았다고 한다. 사체는 그냥 땅에 파묻었다.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되는 번거로움과 적은 보상금에 불만을 품고 이기적인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유통된 돼지들은 다른 돼지들을 감염시켰다.

중국의 고질적인 정보통제도 사태를 키우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공산당 일당독재 아래 언론통제가 심하기 때문에 누구도 발병의 정확한 상황과 수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중국 농업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정보통제가 아니었다면 피해가 이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태 초기에 병에 걸린 돼지들이 불법적으로 처리된다는 지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돌다 곧 중국 당국의 검열로 삭제됐다.

희대의 해프닝은 3월에 일어났다. 위캉전 중국 농업농촌부 부부장(차관)이 3월20일 TV에 나와 아프리카돼지열병과의 전쟁에서 “잠정적인 승리를 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시 농업농촌부는 ASF 발생 건수가 2018년 11월 25건, 같은 해 12월 21건에서 올해는 1월 5건, 2월 7건, 3월 2건 등 급격하게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발병 사례가 아니고 신고 사례가 줄어든 것이라는 업계의 지적이 빗발쳤다.

위 부부장은 7월4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전체적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병률이 현저하게 둔화했고 살아 있는 돼지의 생산과 유통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그 사이 ASF는 4월 중국의 최남단인 하이난섬까지 전파됐다. 5월에는 북한 당국이 발병 사실을 인정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돼지 공급량이 감소함에 따라 뛰는 돼지고기 가격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초까지 전년 동기 대비 한 자릿수 상승률로 안정적이던 돈육 가격은 4월에 두 자릿수로 뛰었고 8월에는 무려 46.7%나 올랐다. 중국인들에게 돼지고기는 한국인들의 김치처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식재료라는 점에서 서민들이 입는 충격은 크다. 가격지표가 도매가격 기준이고 또 중국 당국이 보수적으로 집계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소비자가격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9월 초 한 주간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홍콩 시위 사태나 미중 무역전쟁이 아닌 ‘돼지고기’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올해 말까지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뛸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발병 이후 6월까지 120만마리를 살처분했다고 발표한 후로는 집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에는 약 4억3,000만마리의 돼지가 있었다. 축산 선진국인 네덜란드의 은행 라보뱅크는 “올해 중국 돼지 가운데 1억~2억마리가 ASF로 죽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통상 가축전염병의 경우 질병이 창궐하면 소비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돼지고기 수요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반면에 공급이 갈수록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뛴 것이다.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에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결국 중국 정부는 사실상의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중국 정부는 이미 “돼지고기 가격안정은 중대한 정치 임무”라고 선언한 상태다. 오는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사회안정’을 흔들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한 셈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최근 재정부와 농업농촌부 등은 양돈농가에 대한 융자를 늘리는 등 돼지고기 증산 계획을 비롯한 대책을 공개했는데 “양돈농가에는 무조건 대출하라”는 지시가 은행에 하달됐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방역대책은 미진했다. 중국 정부도 방역의 한계를 인정한다. 살처분으로 해결할 단계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연적으로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인체에 해롭지 않는다는 것으로 자위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SCMP는 중국의 대책에 대해 “너무 부족하고 또 너무 늦었다”고 평가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중국은 ‘글로벌 민폐 국가’라는 이미지만 키우게 됐다. 자국민에게 돼지 전염병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은 것은 물론 인근 국가에 대한 통보 의무도 무시했기 때문이다. 국경 근처에서의 발병 상황만 제대로 통보했어도 아시아 인접국가에서의 발병을 막거나 적어도 늦출 수 있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2월에 전파된 베트남의 경우 ASF가 이미 전 국토에 퍼져 전체 사육돼지의 13%에 가까운 400만마리 이상을 살처분했고 북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에서도 북한 접경인 파주시에서 확진 돼지가 나왔다. 한국 축산 업계 관계자는 “중국 축산 당국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와 방역에 대한 정보를 지금도 전혀 알려주지 않고 있다”며 “국내 문제니 알아서 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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