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영 차관, 美정부에 '지소미아 실망 표현' 항의
해리스 대사는 "11월 종료 전까지 입장 철회" 전달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왼쪽)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7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장관과 면담에 앞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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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최근 발생한 한·일 갈등과 한·미 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조 차관과 해리스 대사의 이날 면담은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후 미국 정부가 실망과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등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외교부가 '면담' 형식으로 '논의'를 했다고 밝혔지만,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사실상 일본 측 입장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미국에 항의의 뜻을 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외교가 일각에선 한국 정부가 사실상 미국대사를 '초치(招致·외교 관계에서 항의하기 위해 상대국 대사를 불러 들임)'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말도 나온다. 한·일 갈등이 한·미 갈등으로 비화하는 신호 아니냐는 것이다.
조 차관은 이날 해리스 대사에게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한·일 양자관계 맥락에서 검토하고 결정한 것으로 한미동맹과는 무관하다"면서 "앞으로 미측과 긴밀한 공조 하에 한·미·일 안보 협력을 지속 유지하고, 한미동맹도 한 차원 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조 차관은 이어 "한·일 외교 당국 간 소통을 지속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있는 만큼 대화와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한·일) 양국이 합리적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특히 조 차관은 이날 면담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실망과 우려를 표출하는 것이 한미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측이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계속 표출하면서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셈이다. 정부 소식통은 "조 차관이 해리스 대사에게 ‘미국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대로 한국이 스스로 더 강한 국방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진정한 의지’라는 점을 힘줘 설명했다"며 "조 차관이 ‘미국 측이 실망이라는 공개적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으니 이제는 조금 자제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진정한 의지를 북돋워 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영향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조 차관은 또 미국이 한국 해군 등이 최근 실시한 독도 방어 훈련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데에 대해서도 "독도 방어 훈련은 우리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실시하는 연례적인 훈련"이라면서 "미국의 이례적 입장 표명은 우리의 진정한 의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이날 해리스 대사의 구체적인 발언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알겠다"면서 "본국에 관련 사항을 보고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지소미아가 11월 종료되기 전까지 한국이 종료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미측의 입장을 거듭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해리스 대사의 반응에 대해 외교가에선 "해리스 대사는 조 차관의 입장을 사실상 항의의 뜻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정부의 향후 태도를 보면 이날 면담을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22일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한 이후 연일 공개적으로 실망감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발표 직후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는 데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고 했고, 25일엔 국무부 대변인이 "우리는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한 것에 대해 깊이 실망하고 우려한다"고 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공식 트위터 계정에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27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나 "11월 22일까지 지소미아가 종료되지 않는다면서 미국은 한국이 그때까지 생각을 바꾸기를 바란다"며 시한까지 못박아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또 지난 27일(현지시각) 우리 해군이 지난 25~26일 실시한 독도 방어 훈련에 대해 '한·일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은 '독도'를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이라고 부르며 한·일 간의 독도 영유권 분쟁에서도 한국 편을 들 생각이 없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리앙쿠르암(巖)은 서양 선박으로서 독도를 처음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섬(島)'이 아닌 '바윗덩어리(암석)'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에서 섬이 아닌 암석은 영유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미국이 실망과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미동맹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한·일 지소미아가 종료되었다고 해서 마치 한미동맹 관계가 균열로 이어지고, 우리에 대한 안보 위협에 있어 대응체계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틀린 주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한·일 지소미아 종료를 계기로 안보에 있어 우리의 주도적 역량 강화를 통해 한미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독도 방어 훈련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데 대해선 "독도가 누구의 땅인가"라며 "(독도가) 누구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말한 '한미동맹 업그레이드'는 지소미아 종료로 제기될 수 있는 대북 감시·정찰 정보 공백 우려를 한국군의 독자적인 감시·정찰 자산 강화 등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현 정권이 임기 내 전시작전권 전환 완료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이 자신들의 동북아 전략과 상충된다고 보고 철회해달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자주 국방 메시지로 이를 되받고 있는 형국"이라며 "동맹 관계에서 자주를 들고 나오는 것은 그것이 건강한 동맹 관계를 표방한 것이라 해도 긴장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지소미아는 한미동맹과 미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현 정부가 얼마나 고려하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라면서 "북한은 비핵화를 중단하고, 중국은 계속 부상하려는 상황에서 몇십년을 유지해 온 한미동맹의 틀을 굳이 훼손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독도방어훈련을 주권 행사 측면보다 국내적 반일(反日) 캠페인 차원으로 보고 있을 수 있다"며 "현 상황에 어떻게든 미국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할 한국 정부는 오히려 미국이 일본 편을 들도록 밀어내는 외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가 반일을 넘어 반미(反美)로 캠페인을 확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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