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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어게인TV]'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 서울 곳곳, 역사의 선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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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POP=최유미 기자]

헤럴드경제

MBC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 캡처


돌아온 선녀들이 서울에 남은 일제강점기 그 비극적인 역사의 선을 넘었다.

18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이하 ‘선녀들’) 첫방송에 설민석, 유병재, 전현무, 김종민, 배우 최희서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선녀들' 기존 멤버였던 설민석, 전현무, 유병재에 간헐적 천재 김종민이 합류했다. 설민석은 국경선을 넘었던 시즌 1과 한반도의 선을 넘었던 시즌 2에 이어 시즌 3는 시간의 선을 넘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종민은 "임진왜란이 처음 발발했던 부산"을 가고 싶다했고, 전현무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많은 여수"에 가고 싶다 전했다. 유병재는 "고향인 충남에 역사의 흔적이 많다"며 가고 싶은 곳으로 충남을 꼽았다. 설민석은 "서울의 숨은 역사를 살펴보고 싶다"고 전했다.

본격적으로 서울 역사의 선을 넘기 위해 광화문 앞에 선녀들이 모였다. 전현무는 “여기에서 맨날 유턴만 했지. 선 건 처음”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설민석이 경술국치를 이야기하던 중 영화 박열의 주연 배우 최희서가 첫 게스트로 등장해 기대감을 높였다.

선녀들은 경복궁으로 향해 경북궁 앞에서 '해치'를 발견했다. 설민석은 "경복궁 중건 당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관악산의 화기가 밀려들어오기 때문에 문을 동쪽으로 내면 안된다'고 했지만 정도전이 '해치를 세워 화재에서 경복궁을 보호하겠다'며 수많은 해치를 세워 실제로 수많은 화재에서 경복궁이 소실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총 4번의 수난을 겪은 광화문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경복궁 안에 들어서자 설민석은 "경복궁 안에 무려 500동이 있었다"고 전했다. 전현무는 "일제강점기 시대 과거 경복궁의 90%가 사라졌다"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어서 근정전에 들어서 조정에 선 설민석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가 조선 수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물산 공진회'를 연 사실을 전했다. 유병재는 "일제는 참 체계적으로 나빴다"며 분노했다. 배우 최희서는 "일본에서 한인 학교를 다니면서 혼자 한국 역사를 울면서 공부했다"고 전했다.

선녀들은 명성황후의 침전이었던 곤녕합으로 향했다. 곤녕합은 우리 역사의 비극 '을미사변'의 현장이었다. 전현무는 "너무 야만적인 역사"라고 혀를 찼다. 유병재와 최희서 역시 참담한 현장에서 말을 잇지 못하던 가운데 호사카 유지 교수가 곤녕합에 깜짝 방문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듣고 큰 충격을 받고 귀화했다"고 전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귀화했지만 개명하지 않은 이유를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개명하지 않았다"고 전해 큰 감동을 전했다. 호사카 유지는 일본의 국사 교육은 "원폭 피해 사실은 장대하게 설명하지만 식민 지배 설명은 자세히 하지 않는다"고 전해 선녀들이 분노했다.

또한 선녀들이 당시 을미사변에 합류한 친일파들의 만행을 폭로하자 호사카 유지는 "당시 하버드대 졸업했던 엘리트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고 전했다. 이에 설민석은 "당시 전범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석방 됐다"고 전했다.

한편 호사카 유지는 "한국인들의 인기 관광지 후쿠오카의 구시다신사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에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고 적어 보관 중"이라고 전했다. 당시 명성황후를 시해한 시해범의 후손들 중 몇몇이 와서 사죄를 하고 갔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호사카 유지는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역사"라고 전했다.

평양냉면을 먹고 선녀들은 아관파천의 현장 구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했다. 고종이 피신했던 러시아 공사관 앞에서 설민석은 "을미사변 이후 큰 충격을 받은 고종이 몸을 피하려고 '춘생문 사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아관파천을 성공시켰다"이라고 전했다. 배우 최희서는 "아관파천의 성공 뒤에는 고종의 후궁이었던 엄상궁의 지혜가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엄상궁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영친왕 이은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전현무는 "고종의 업적도 많았지만 가려져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선녀들은 "내가 만약 고종이라면?"가정을 했다. 유병재는 "나라면 도망쳤을 것"이라고 전했고, 최희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분노했다.

선녀들은 덕수궁을 찾았다. 유병재는 "이완용은 친일, 친미, 친러까지 했고 아들에게는 유언으로 친미하라 했다"고 전해 선녀들이 분노했다. 선녀들은 "나라를 팔아 30억을 번 이완용의 재산이 아직도 환수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한 선녀들은 억지로 맺은 조약, 을사늑약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종 대신 사인한 을사오적에 대해 이야기하며 을사늑약의 현장에 섰다. 또한 설민석은 "을사늑약에 반대한 3인 조차 2명이 친일로 돌아섰다며 지조를 지키기 어려운 시대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설민석은 "헤이그 특사 파견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되고 결국 500년 종묘사직이 막을 내렸다"고 전해 선녀들이 분노했다.

설민석은 "을사늑약을 이끈 이토 히로부미 암살 직후, 이재명 의사가 이완용 암살을 시도했지만 이완용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흉부외과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전현무는 "이완용 아들이 1940년 꼼수로 이완용을 배향 공신에 넣었다"며 분노했다. 하지만 광복 후 이완용은 배향공신에 제외됐다고 전해 선녀들이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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