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가량 팔린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에서 대규모 원금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고강도' 검사에 나선다. 불완전판매 뿐 아니라 내부통제, 상품구조 등 전반을 샅샅이 들여다 보기 위해 DLS와 관련된 은행·증권·자산운용사를 망라해 무더기 검사를 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이르면 다음달 안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열기로 했다. 원금손실 가능성을 설명했는지를 두고 투자자와 은행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불완전판매 분쟁민원이 늘고 있어서다. 아직 만기가 도래한 것은 아니지만 투자성향이 보수적인 은행 고객이 원금 전액을 날린 것은 2005년 우리은행 '파워인컴펀드' 이후 처음으로 당시 70% 손해배상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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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주문한 상품? 은행·증권·운용사 '고강도' 검사=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국 금리 연계 DLS에서 50~100% 평가손실이 발생한 가운데 금감원이 이르면 이번주 고강도 검사에 나서기로 했다. 금감원은 지난 16일 유광열 수석부원장 주재로 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 검사 담당 국장 등이 참석한 긴급회의를 열어 검사 대상과 일정 등을 조율했다.
금감원은 평가손실이 확대되고 일부 상품은 다음달 만기가 도래하는 만큼 검사 준비가 완료되면 가급적 신속하게 검사를 나갈 계획이다. 불완전판매 뿐 아니라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상품구조에 문제는 없는지 등 상품 개발부터 판매까지 전반을 들여다 보겠다는게 금감원의 방침이다.
이번 검사는 DLS 상품을 프라이빗뱅크(PB)를 통해 사모형식으로 판매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상품을 판매한 일부 증권사들도 검사 대상에 포함되지만 두 은행이 판매한 DLS만 8000억원에 이른다. 미국 국채 5년물 금리와 영국 파운드화 이자율스와프(CMS) 금리 연계 DLS를 판매한 하나은행 상품은 현재 50% 평가손실이 났고, 독일 국채 금리 연계 우리은행 상품은 100% 평가손실이 발생해 원금 전액이 날아갈 우려가 제기된다.
금감원은 은행이 고위험 상품인 DLS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영업 '드라이브'를 걸지 않았는지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은행은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로 진입한 4월 상품 판매를 시작해 투자자 손실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금리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손실의 하한선 없이 원금 100% 손실이 나는 상품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반적인 ELS(주가연계증권)은 녹인구간(원금손실 구간)에 걸려도 원금의 50% 가량은 건질 수 있다.
만기가 4~6개월로 짧고, 만기연장도 안되는 상품구조는 은행에 팔기엔 부적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기 도래하면 재예치 하는 식으로 1.5%에 달하는 선취수수료를 연간 3회 받기 위해 이런 구조를 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은행의 주문에 따라 운용사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상품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운용사 고유 업무에 판매사(은행) 개입할 경우 자본시장법상 처벌을 받는다. 금감원도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실 70% 배상 '파워인컴펀드' 재연되나..다음달 분조위 예고=DLS와 관련한 금감원 민원도 증가세다. 지난달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고객이 각각 1건과 4건의 민원을 제기한 데 이어 이달에는 20건 이상 접수됐다. 일부 투자자는 손실 확대를 막기 위해 7%에 달하는 환매수수료를 내고 중도해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음달부터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확정되면 DLS 민원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1~2개월 안에 분조위를 열어 '참고지표'로 삼을 만한 사례를 안건에 올려 소비자 혼란을 최대한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DLS 투자자는 "은행이 원금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은행측은 "위험에 대해 설명을 했고, 이에 대한 녹취도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단 1건의 민원이라도 수용하면 대규모 손해배상 문제로 번질 수 있는 만큼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투자자와 은행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이르면 다음달 열릴 분조위 결과가 주목된다.
고위험상품 원금손실로 은행이 70% 손해배상을 한 적은 있다. 우리은행은 2005년 장외파생상품인 파워인컴펀드를 팔았다가 100% 원금손실이 발생해 투자자에게 70% 손해배상을 했다. "원금손실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감원 분조위는 50% 배상을 권고했는데 법원은 "상품구조가 소비자에게 불리했다"는 이유로 70% 배상 판결을 냈다. 판매금액은 1700억원으로 DLS 전체 판매금액 약 1조원보다 작다. 만약 DLS도 50% 권고가 내려지면 금융권이 5000억원 배상금 부담을 떠 안아야 한다.
다만 파워인컴펀드는 은행 창구에서 판매된 공모펀드고 DLS는 PB를 통해 판매된 사모형 상품이라는 점에서 배상비율을 속단하기 어렵다. 분조위에서 설령 은행에 일부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은행은 분조위 권고를 거부하고 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 파워인컴펀드는 투자자가 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금을 더 많이 받아는 케이스(사례)다.
◇"2억씩 투자한 부자고객인데?" 일반투자자로 봐야하나=평균 투자금 2억원에, 사모형태로 고위험 상품에 가입한 DLS 투자자를 일반투자자로 볼 수 있는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는 금감원 검사와 분조위 방향을 가르는 핵심이다. 일반 투자자라면 은행이 '적합성원칙'에 따라 투자자 성향분석을 해야 한다. 설명의무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상품구조를 설명했는지 △성품설명서나 투자설명서를 제공 했는지△ 원금손실 가능성을 고지 했는지 여부가 불완전판매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반면 '전문투자자'로 본다면 '본인이 원해서 가입한 상품'이라는 확인서만 있다면 설명의무가 없다. 자본시장법에서는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이고 금융순자산이 5억원을 넘으면서 소득이 1억원 이상이면 전문투자자로 보고 있으나 은행이 DLS 투자자의 금융자산을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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