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지역에서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긴급 방역에 나선 파주 적성면의 한 돼지농가 출입문 앞에서 파주시청의 공무원이 현장점검을 한 뒤 떠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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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이 올 경우 닥칠 재난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에 대한 강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지난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이하 ASF)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8월 중국 발생에 이어 북한 발병 사실이 보도되면서다. ASF는 발병하면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치명적인 돼지전염병이다. 당국자들의 의지처럼 ‘완벽한 방어’가 가능할까. 3회에 걸쳐 실태를 진단하는 긴급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중국에서 발병한 지 10개월도 안 돼, 1억 내지 2억 마리가 살처분됐다. 전체 중국 양돈업 절반이 날아갔다. 한국 사육두수는 1000만 마리에 달한다. 2011년 구제역 파동 때 MB정부는 초동방역 실패로 3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국가예산 3조원이 투입됐다. ASF 방역에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자를 만난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돼지열병 북한 유입 여부 판단할 수 없다?
중국처럼 ASF가 창궐한다면 발병 1년 내에 9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사실상 축산업 자체가 궤멸될 것이라는 얘기다.
발병하면 손쓸 수 없기 때문에 선제적 방역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주무부서 간 입장차로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것이 의원실 주장이다. 하나씩 검증해보자.
ASF의 유입을 알아볼 수 있는 선행지표가 있다. 돼지열병(CSF)이다. 두 질병의 감염경로는 유사하다. 사육돼지와 야생멧돼지의 직·간접적 접촉 및 감염된 돼지의 혈액이나 분변 등 분비물 접촉, 바이러스에 오염된 잔반 급여 등이다. 차이는 백신의 유무다. 돼지열병은 백신이 있지만, ASF는 없다. 농어업정책포럼 동물방역복지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준영 수의사에 따르면 ASF는 돼지열병에 비해 바이러스가 크고, 여러 유형이 복합된 형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백신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다.
주목할 만한 자료가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6월 말 국회에 제출한 ‘야생멧돼지 CSF 검사현황’이라는 자료다.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현황을 담았다. 자료에 따르면 특히 경기·강원지역에서 돼지열병 항체·항원 검출이 올해 들어 급증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경기에서는 25건, 강원도에서는 88건이 검출되었다. 상반기까지만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북한 접경지대에서만 돼지열병이 급증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는가. 유사전염경로를 가진 ASF도 북에서 내려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북부와 강원도에서 발견된 돼지열병은 북한에서 넘어온 것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7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의 해명자료다. 해명자료를 보면 돼지열병과 ASF는 다른 질병이고,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2011년 국내에서 발병한 돼지열병과 동일한 종류의 바이러스로 국내 순환감염의 결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해명자료가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에서 넘어온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다. 비교할 수 있는 북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7월 31일 통화한 농림축산검역본부 바이러스질병과 관계자는 “북한이나 러시아는 국제수역사무국(OIE)에 발병한 바이러스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ASF는 어떨까.
북한이 발병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5월이다. 북한 양돈 전문가이기도 한 김준영 수의사는 “지난 2월 말 <로동신문>이 ‘ASF가 아시아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창궐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실제 발병 시기는 2월 전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한국의 경우 살처분을 하면 생석회 도포를 하는데 북한은 소독약이 없으니 그냥 묻는다. 문제는 밤이 되면 민간인들이 꺼내서 삶아 먹는다는 것이다. 삶으면 탈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다시 사람들의 손으로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ASF가 넘어가는 데 약 8개월이 걸렸기 때문에 10월쯤이면 황해도 해주 정도를 거쳐 한국으로 넘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독약 없이 땅에 묻는데, 겨울철에는 묻을 수도 없다. 야산에다 감염사체를 버리면 들짐승이나 새 종류가 파먹고, 그에 의해 전파되는 것이다.”
겹겹의 철책과 매설된 지뢰로 막혀 있는 DMZ의 특수성으로 야생멧돼지가 직접 남하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데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문제는 방치된 감염사체를 뜯어먹는 들쥐나 새 등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제적 살처분에 미온적인 환경부
예방적 살처분을 통해 개체수를 조절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부처 간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것이 김현권 의원실의 주장이다. 지난해 9월 벨기에에서 야생멧돼지에서 ASF가 발생하자 인접국인 독일은 두수 제한 없이 최대한 야생멧돼지를 수렵하도록 해 개체수의 70%, 지난해만 약 83만두를 줄였다. 벨기에의 경우는 직업사냥꾼뿐 아니라 군 저격병을 차출해 야생멧돼지 사냥에 투입했다. 프랑스도 50만두를 사냥해 지난 1월 완전 소탕을 발표했다. 한국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한돈협회는 국방부 협조 아래 북한 접경지 강, 바다, 도로 등 야생멧돼지 유입 우려지역 반경 4㎞ 소탕과 함께 현재 30만 마리로 추산되는 야생멧돼지 개체수를 3분의 1로 줄여 10만두로 축소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그런데 주무부서인 환경부는 이런 건의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7월 31일 통화한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연간 포획량은 늘리고 있지만 포획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야생멧돼지가 번식률도 좋고 멸종위기종도 아니라는 말은 맞다. 그런데 멧돼지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연간 1회 번식을 하던 횟수가 2회로 늘어나기도 한다. 또 한쪽에서 사냥을 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널리 퍼질 수도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목표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현재 연간 약 5만마리가 포획·사냥되고 있는데 정확한 목표치는 없다”며 “현재 조치로 50% 늘어난 7만5000마리 정도가 사냥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돈협회의 개체수 대폭 감축 주장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부처 간 입장 차는 단독 입수한 농림축산식품부의 ‘멧돼지 개체수 사육밀도 저감조치에 대한 부처 입장’ 내부문건에도 드러난다. 문건에는 농식품부의 포획단 운영, 수렵장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계획과 함께 “봄·가을철 민간인 총기사고 발생 우려로 수렵기간 연장 불가 및 포획 확대에 소극적(동물보호단체 반대 등). 발생시 포획 확대 입장”이라는 환경부 쪽 시각도 소개하고 있다. 김현권 의원실 측은 “환경부가 내놓는 입장을 보면 개체수 조절에 대한 목표도 없고 살처분의 개념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ASF가 일단 발생하면 괴멸적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한데 발생시 포획 확대라는 입장은 너무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선임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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