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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미사일 도발 재개하며 막 나가는 北, 눈 감은 韓·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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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6일만에 또 미사일 도발⋯'평화외교' 시험대
정부 "9·19합의에 안맞아"... UN 제재엔 침묵
트럼프, 한미방위조약에도 韓 안보에 무관심

북한이 31일 원산 갈마지구 일대에서 단거리 탄도 미사일 2발을 발사하며 엿새만에 미사일 도발을 재개했다. 지난 5월 두 번의 미사일 발사까지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4번째 미사일 도발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부터 이어진 '보여주기식 평화 무드'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눈감아준 게 도발을 계속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도발에 나선 지난 25일은 판문점에서 미·북 물밑 접촉이 이뤄진 직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와 AP통신은 30일(현지시각)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가 지난주 판문점에서 북측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접촉에서 미 백악관 당국자는 6·30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 사진 등 기념품을 북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미국과 물밑 접촉이 이뤄진 직후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에 대해 "남조선 군부 호전세력들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을 만만하게 보고 대남 압박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조선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 군사연습과 남측의 신형군사장비 도입에 반발해 지난 25일 신형전술유도무기(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위력시위사격'을 직접 조직, 지휘했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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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프로세스 판 깨질라'…北 미사일 도발에 침묵하는 정부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새벽 5시 6분과 5시 27분 동북방 해상으로 단거리 탄도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번에 발사한 단거리 탄도 미사일의 고도는 약 30km, 비행거리는 약 250km로 추정된다고 합참은 설명했다. 250km는 미사일 발사 지점인 원산 갈마를 기준으로 서울과 수도권이 사정권에 드는 거리다. 북한이 지난 25일 발사한 탄도미사일 2발은 모두 비행거리가 600㎞로 미사일 발사지인 원산에서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이 사정권 안에 드는 거리다. 한국을 겨냥한 미사일이란 뜻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의 대응은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긴장완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러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는 합참 명의의 입장 발표가 전부였다. 남북 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 "관계 당국에서 밝힌 것 외에 통일부가 따로 말씀드릴 내용은 없다"고 했다.

청와대도 이날 오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의도 분석과 추가적인 대북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미사일 도발 때에도 NSC 회의를 주재하지 않았고 별도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위반이라는 지적에도 청와대는 "정부가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안보리가 판단할 문제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와 1874호는 북한에 대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2017년 12월 채택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에서도 이를 재확인했다. 장·단거리 등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지난 2016년 9월 5일 북한이 탄두를 개량한 3발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만 해도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노골적인 위반이자 엄중한 도발행위로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부는 주요국들과의 긴밀한 협력하에 안보리 등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막기 위해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를 안보 위기로 인식하고, 이 문제가 안보리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면서 "안보리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인식은 상당히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가 묵인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면서 "한국과 미국의 반발이 없으니 북한으로선 부담없이 무력 시위를 할 수 있게 됐다. 또 한국 정부로선 현 수준의 도발에 대해선 앞으로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에서 교착 상태인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월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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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겨냥하지 않았다"며 '내 알 바 아니다'는 트럼프

미·북 비핵화 협상을 재선(再選)을 위한 업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쏜 미사일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니라며 괘념치 않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각)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소형 미사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북한 김정은)는 미국에 경고하지 않았다"며 "그들 양측(남북)은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래왔다"고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을 향한 도발이 아닌 남한을 향한 것이기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트럼프의 이런 발언은 그의 '동맹관'을 엿보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이 무력 위협을 받으면 유엔의 결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입한다'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외신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주일 미군 뿐 아니라 일본, 한국과 같은 동맹에 가해지는 위협을 무시했다"고 보도했다. AF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에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단거리 미사일이 미국 근처에는 도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미사일의 사정 거리는 동맹인 한국과 대규모 주한미군 기지를 포함한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 차관보 출신인 로렌스 코브 미국진보센터(CAP) 선임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적대 관계에 있는 우방(友邦)들이 그곳(북한의 이번 탄도미사일 사정권 내)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분명 걱정해야 할 일"이라며 "미국은 북한이 무기로 동맹국인 한·일을 위협하면 그들을 방어하기로 한 협정을 맺고 있는데도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순진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북한이 쏜 미사일은 사거리가 250km로, 미사일 발사지인 원산 갈마 인근에서부터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가 소재한 경기도 평택 등 지역까지 사정권 안으로 들어간다.

◇잇따른 北 도발에 무력화된 '남북 군사합의'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게 된 배경에 대해 "남한에 대한 경고성 무력 시위"라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측을 향한 "엄중한 경고"로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북한이 계속 문제 삼고 있는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북측의 행동은 군사적 적대 행위를 금지한 9·19 남북 군사합의와 정면 배치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판단하느냐'는 질문에 "9·19 합의 1조에는 '적대행위 금지'가 있기 때문에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여권에선 남북 군사합의를 근거로 북한의 자제를 촉구하는 반면, 야권에선 상대방이 지키지 않는 합의를 우리만 지킬 필요가 있냐면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인영 원내대표는 31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북한은 9·19 남북군사합의 정신을 준수해 평화를 해치는 일체의 위협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면서 "이런 행위가 반복될 경우 어렵게 마련한 남북, 북미 관계 개선에 중대한 장애만을 조성하게 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명백한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며 "북한은 이미 3차례 도발 함으로써 삼진 아웃됐다.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은 "지난해 남북이 군사 행동을 자제하자는 취지로 남북군사합의를 체결했지만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의미가 사라졌다"면서 "북한의 행동은 합의를 폐기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9·19 합의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4·27 판문점 선언도 이쯤되면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됐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등 남북이 그동안 체결한 합의문의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사문화됐다"면서 "9·19 군사합의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계기로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으니 공식적으로 폐기를 선언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대응하기 위해선 9·19 합의에서 금지한 휴전선 인근의 정찰 활동 재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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