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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기사'로 해고된 보리스 존슨은 어떻게 영국 총리가 됐을까?

조선일보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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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기사'로 해고된 보리스 존슨은 어떻게 영국 총리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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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 생각하게끔 만드는 이력서를 가지고 있다."(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
"카리스마가 있지만, 논란이 많은 인물."(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

영국의 차기 총리로 확정된 보리스 존슨(55) 전 영국 외무장관에 대해 언론이 내리는 평가는 다양하다. 영국 BBC 방송은 그의 성격에 대해 ‘상냥하지만 우쭐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보리스 신임 총리를 이야기 할 때 ‘변덕스러운(colorful)’ ‘촌스러운 더벅머리(moppy-haired)’ 같은 수식어가 종종 따라붙는다. 막말과 여성혐오 발언으로 ‘영국의 트럼프’라는 별명도 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구겨진 양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다니는 소탈한 모습에 친근함을 느끼는 영국인들도 적지 않다.

이튼 스쿨 재학 시절 보리스 존슨의 모습./BBC

이튼 스쿨 재학 시절 보리스 존슨의 모습./BBC


존슨 신임 총리는 1964년 6월 19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계, 터키계,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등 다양한 혈통이 뒤섞였다. 스스로를 ‘원 맨 멜팅팟(One man melting pot)’으로 칭하기는 이유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5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유년 시절엔 청각 장애로 많은 놀림을 받기도 했으며, 이 시기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BBC는 "존슨 신임 총리는 이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최근 영국 일간 더타임스 기고문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굉장히 어둡고, 상당히 찌질했으며, 엄청난 괴짜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1977년부터 5년간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 수업 시간에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말솜씨과 임기응변이 뛰어난 학생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은 "뛰어난 학생"이라고 회고한다. BBC는 "보리스의 이튼스쿨 시절은 고상하면석도 괴팍하고, 영국인다운 현재 그의 인격이 형성된 때"라며 "이튼스쿨에서의 경험과 인맥은 그가 훗날 총리가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대학은 옥스퍼드대 베일리얼 칼리지로 진학했다. 고전 문학과, 역사, 철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존슨의 성적은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보리스의 지도 교수들은 "한번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대학에서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알레그라 오스틴 오웬을 만났다. 그와 같이 옥스퍼드를 다닌 유명 정치인 중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윌리엄 헤이그 전 영국 외무부 장관, 제레미 헌트 현 외무장관 등이 있다.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가 더타임스 재직 시절 작성한 기사./BBC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가 더타임스 재직 시절 작성한 기사./BBC


사회생활은 언론계에서 시작했다. 1987년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입사해 벨기에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쿼츠는 존슨이 기자 초년 시절 작성한 기사들에 대해 "과장된 이야기를 쓰고, 유럽연합(EU) 체제에 반대하는 기사를 쏟아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1994년 기사의 인용(quote) 부분을 조작한 것이 들통나 더타임스에서 해고됐다. 14세기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 때 지어진 궁전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작성하며 관련 인용 부분을 조작한 것이다.

당시 더타임스 편집장을 맡았던 맥스 헤이스팅스는 존슨에 대해 "진실성, 도덕성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공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더타임스에서 쫓겨난 이후에는 데일리 텔레그래프로 이직했다. 이 시기 첫 아내와 이혼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마리나 휠러와 두 번째 혼인생활을 시작했다.

존슨 신임 총리는 1997년 정치에 출사표를 던지며 하원 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 시기에 텔레그래프 등에서 편집자로 활동하거나 잡지 GQ에서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로서 기고하기도 했다. 2001년 선거에선 헨리 지역구 하원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2002년 BBC의 시사프로그램 ‘당신을 위한 뉴스’에 출연하며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존슨은 영국 보수당에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며 종종 섀도 캐비닛(그림자 내각·야당이 집권을 대비해 미리 짜둔 각료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4년 여성 언론인 페트로넬라 와이엇과의 불륜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당시 보수당수였던 마이클 하워드에게 거짓 해명을 했다가 결국 들통이 나는 바람에 예비 내각에서 빠지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존슨은 2013년 BBC의 한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진행자로부터 "당신은 기사 인용문구를 가짜로 꾸며대고, 당수에게 뻔뻔스런 거짓말까지 한다. 당신은 정말 못 믿을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02년 영국 BBC 프로그램 ‘당신을 위한 뉴스’에 출연한 보리스 존슨의 모습./BBC

2002년 영국 BBC 프로그램 ‘당신을 위한 뉴스’에 출연한 보리스 존슨의 모습./BBC


그런 존슨이 인기있는 대중 정치인으로 도약한 것은 런던 시장 시절 부터다. 그는 2008년 영국 런던 시장에 출마해 노동당 출신 켄 리빙스턴 전 시장을 14만여표 차이로 꺾고 당선됐다. 재선에도 성공해 2016년까지 8년간 시장직을 임했다.


그는 특히 재임 시절 런던의 공용 자전거 인프라 확장에 힘썼다. 런던 도심의 많은 공용 자전거들이 그의 이름을 딴 ‘보리스 자전거’로 불리는 이유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따릉이’를 추진하며 보리스 정책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시장직을 마친 뒤에는 의회로 복귀해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찬성파 대표 역할을 수행했다.

BBC는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그가 시장에 재임하던 때 주택 보급이 늘어났고, 범죄율은 낮아졌다"고 했다. 그가 시장 재임시절 함께 일했던 제임스 클리블리 런던 의회 의원은 "존슨이 런던에서 8년간 이뤄낸 것을 보면 그의 총리 행보도 성공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는 런던 시장 재임 시절 런던의 공용 자전거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런던에서 공용자전거는 ‘보리스 자전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BBC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는 런던 시장 재임 시절 런던의 공용 자전거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런던에서 공용자전거는 ‘보리스 자전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BBC


존슨은 막말로도 유명하다. 과거 이슬람 전통 의상인 부르카를 입은 여성을 ‘은행 강도처럼 보인다’라고 말해 논란이 됐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한다고 발언하자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지 논란을 겨냥해 "그(오바마)는 일정부분 케냐인"이라고 꼬집으며 "조상 대대로 영국을 싫어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편력 또한 남다르다. 그는 두 번의 결혼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현재는 애인인 캐리 시먼즈(31)와 동거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과거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공인의 사생활에 대한 자유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그를 옹호하는 입장을 펼치기도 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존슨은 다우닝가 10번지(총리 집무실이 있는 곳)에 처음으로 애인과 들어가는 총리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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