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기능·교통망 갖춘 녹색도시 약속 무위
베드타운 전락…10년째 교통지옥 불편 감수
아직 갈 길 먼데 앞길 가로막는 ‘3기 신도시’
전문가 “미분양 넘치는 2기 신도시 대책부터”
파주운정신도시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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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남에 위치한 입시 교육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 김민재(가명·46세) 씨는 요즘같은 여름엔 출근하기가 두렵다. 아침 7시경 파주 운정신도시에 있는 집을 나서 경의중앙선 운정역에서 열차를 타는데,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 출근 지옥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홍대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강남역에 도착하면 9시에 조금 못 미친다. 그는 “출퇴근할 때 30개가 넘는 정거장을 거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느냐”며 “2007년 5억원에 분양 받은 아파트를 현 시세(4억원대)라도 팔고 떠나버릴까 수도 없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2. ‘어차피 집값 비싼 서울에 못 살거면 새 아파트에라도 살아보자…’ 지난해 11월 이런 마음을 먹고 인천 검단신도시 내 전용 84㎡를 4억원대에 분양받은 직장인 박정호 씨(가명·41세)는 요즘 정부에게 ‘분양사기’를 당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계약한지 한 달 만에 5㎞ 거리에 인천 계양신도시, 올 들어서는 10㎞ 내 부천 대장신도시가 각각 3기 신도시로 지정돼 검단의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그는 “3기 신도시 반대집회라도 나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부푼 꿈 안고 찾았던 2기 신도시 지금은?’…주민 불만 폭주 = 정부가 지난 5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3기 신도시를 추가 발표한 가운데 파주 운정, 인천 검단, 양주 옥정 등 ‘후발주자’에 속한 2기 신도시 주민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앞서 언급한 김 씨, 박 씨와 같은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입주민·입주예정자 커뮤니티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는 불만과 건의로 도배됐다.
3기 신도시 추진보다 2기 신도시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에는 지난달 1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2기 신도시의 ‘생매장’, ‘사망선고’, ‘부관참시’라는 표현도 쏟아졌다. 파주 운정에 사는 이모 씨는 “적어도 분양 때 약속했던 자족도시 건설, 교통망 확보만이라도 약속해달라”고 호소한다.
주민들의 답답함엔 이유가 있다. 2기 신도시는 지난 2003년 3기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수도권 인구와 기능 분산을 위해 탄생했다. 성남 판교, 화성 동탄1·2, 김포 한강, 파주 운정, 광교, 양주, 위례, 고덕국제화, 인천 검단 등 수도권 10곳과 아산, 대전도안 등 지방 2곳이 순차적으로 발표됐다. 택지 139㎢, 수용인원 170만명, 공급물량 66만5800호 등의 목표는 1기 신도시의 목표치(5곳·29만2000호)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2기 신도시로 인해 달라질 미래상에 기대를 걸었다. 정부는 ▷자족기능 확보 ▷광역 대중교통 수단 정비 ▷친환경적인 도시(녹지율 확대) 조성 등의 장밋빛 비전을 제시하며 홍보했다. 당시에도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비쿼터스’(‘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의 라틴어)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원격치료가 가능한 인프라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2006년 9월 파주 운정에서 첫 분양한 한라비발디는 ‘고분양가 논란’에도 큰 성공을 거뒀다. 927가구를 공급하기 위한 청약접수 첫날 견본주택에 4000여명이 방문했다. 당시엔 인터넷 청약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어서 견본주택 앞에 하루종일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분위기는 한순간 얼어 붙었다. 주택 시장이 본격적으로 침체되고 토지보상 문제로 사업이 장기화하면서 인기는 한순간 나락으로 추락했다. 분양은 계속 됐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했다. 파주 운정, 인천 검단 등은 ‘미분양의 늪’이라는 오명도 생겼다. 주민들은 당초 약속했던 자족기능보다 공급 확대에 치중한 2기 신도시를 ‘거대한 아파트 숲’ 정도로 비유한다.
파주 운정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원격치료는커녕 대형병원도 없어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자족기능 강화 없이 도시는 베드타운이 됐고, 3~4년만 감수하면 된다던 교통 불편은 올해로 10년을 넘어가고 있다”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완성까지 갈 길 먼데…3기 신도시는 ‘성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준공면적 기준으로 2기 신도시 12곳의 택지 개발완료율은 평균 56.8%다. 개발이 끝난 곳은 성남 판교, 화성 동탄1, 대전 도안뿐이다. 위례(57.3%), 화성 동탄2(52.7%), 파주 운정(56.9%), 양주(51.6%) 등은 절반 수준이다. 인천 검단과 평택 고덕은 ‘공사 중’으로 분류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사는 하고 있지만, 사업단계가 행정상 요구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해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개발 종료 시기가 2023년으로 예정된 파주 운정과 인천 검단은 3기 신도시와 사업 기간이 겹친다. 3기 신도시는 2021년까지 지구지정·지구계획 등을 마치고 2022년부터 분양한다. 서울과 더 가까운 거리에 3기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건 미분양을 심화하고, 집값을 하락할 우려를 키운다.
서울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건 교통여건 개선뿐이지만 갈 길이 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경기 김포시을)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미집행된 2기 신도시 광역교통개선대책 사업비는 전체의 33.4%로, 10조6262억원에 달했다. 2기 신도시 입주자들은 주택을 분양받을 때 광역교통개선대책 사업비 명목으로 평균 1200만원의 사업비를 냈다. 이러다보니 주민들은 “부담금은 낼 대로 내고, 교통비 부담은 덜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기 신도시 주민의 소득대비 생활교통비 비율은 10% 이상으로 다른 도시보다 높게 나타났다. 생활교통비 저감 정책이 시급한 1·2순위 권역으로는 파주, 양주, 평택, 화성 등이 꼽혔다. 김포 한강의 경우 이달 개통예정이었던 김포도시철도 개통이 미뤄져 서울로 가는 대중교통수단은 광역버스가 유일하다. 양주 옥정은 지하철은 물론 광화문, 여의도 등 서울 주요 업무지구로 향하는 광역버스조차 없다.
부족한 자족기능에 대한 불만도 크다. 주거 외 업무, 교육, 여가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달 기준 2기 신도시의 택지면적 대비 일자리 자족기능 공공시설 용지의 비율은 평균 2.9%였다. 인천 검단과 위례, 평택 고덕은 아예 관련 시설용지가 없다. 이승철 운정신도시연합회 회장은 “일자리가 없는데 인구 유입은 어불성설”이라며 “주민들은 10만명 이상이 살 도시에 경찰서, 소방서가 없다는 데 당혹해한다”고 했다. 김포 한강의 한 주민은 “입주한 지 1년이 넘도록 단지 내 상업시설이 텅텅 빈 곳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장 3기 신도시를 만드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미분양이 넘치는 2기 신도시를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도시가 활성화돼야 지역경제도 살아나고 당초 기대했던 주택공급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양영경 기자/y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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