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의 그림자
크리스티앙 브뤼엘 글·안 보즐렉 그림 | 박재연 옮김·해설
이마주 | 60쪽 | 9500원
크리스티앙 브뤼엘 글·안 보즐렉 그림 | 박재연 옮김·해설
이마주 | 60쪽 |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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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침대에 올라가고, 계단 난간을 타고, 목욕하는 것은 싫어한다. 늘 산발에, 거칠게 말하는 소녀의 이름은 줄리다. 줄리의 이름 앞에는 천방지축, 선머슴이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부모님은 늘 줄리에게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행동하라”고 말한다.
어느 날 아침, 줄리의 그림자가 남자아이로 바뀐다. 시커멓고 낯선 그림자는 줄리를 하루 종일 쫓아다닌다. “만일 그림자가 진짜 내 그림자가 맞는 거라면?”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고만 했던 줄리는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혼란스럽다.
그림자를 묻어버리기로 결심한 줄리는 삽을 들고 공원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자 같다고 놀림받는 남자아이를 만난다. 둘은 서로에게 공감한다. 이야기 끝에 줄리는 깨닫는다. “우리에겐 우리다울 권리가 있어.” 나부대고 지저분한 줄리도, 천방지축에 선머슴 같은 줄리도 모두 다 줄리다. 줄리는 줄리였다.
1975년 프랑스 68혁명 직후 발표된 이 책에는 상징과 은유가 곳곳에 숨어 있다.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채 침대에서 책을 읽는 줄리 뒤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눈에 띈다. 원주민들이 살던 땅을 인도로 착각한 탐험가들은 이들을 멋대로 ‘인디언’(인도 사람)이라 부른다. 훗날 이 땅이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들은 줄곧 인디언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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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의 방에 걸려 있는 피에로 인형도 마찬가지다. 관객을 위해 항상 웃어보여야 하며, 이로 인해 늘 평가받는 존재가 되는 피에로. 아메리카 원주민과 피에로처럼 줄리 역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사회가 바라고 자신들이 바라는 기준에 맞추길 강요받는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도 변할 것이라 암시한다. 줄리가 공원에서 열심히 땅을 파던 순간 기어나온 달팽이 한 마리. 달팽이는 암수가 한몸이다. 줄리처럼 달팽이에게도 ‘여자 같은 나’와 ‘남자 같은 나’가 공존한다. 줄리의 장화와 삽 뒤로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의 묘비가 보이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와 같은 그의 작품 속 여성은 이제 ‘수동적이고 지나치게 구시대적’이란 지적을 받는다.
줄리가 이날 땅에 묻으려 한 것은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라 자신을 멋대로 규정하고 옭아매는 구시대의 모든 유산이 아니었을까. 줄리가 자신을 이해하고 집으로 향하던 그때, 줄리의 그림자는 줄리가 됐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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