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지구온난화, 여름·폭염·열대야 길어져"
"폭염, 미세먼지처럼 이미 일반적 현상…대책 시급"
‘폭염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금요일인 5일 오전 서울과 경기 일부, 강원 일부 등 중부지방에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기상청은 서울과 경기 가평·고양·구리·남양주, 강원 횡성·화천·춘천 등에 내려진 폭염주의보를 ‘폭염경보’로 높였다고 밝혔다. 폭염경보는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할 때 내려진다.
폭염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열섬’과 달리 전(全) 지역적인 이상기후 현상이다. 도시 내 빌딩,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태양 복사열이 축적되면서 밤사이 배출되는 열섬과 달리, 폭염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나는 기후 변화 현상이다.
기후·기상 전문가들은 올해 여름이 역대 최장기간일 것으로 예상돼 이른바 ‘폭염 피로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기본값’이 돼 버린 미세먼지 문제처럼 폭염 또한 고질적인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점차 길어지는 ‘여름’...폭염·열대야도 최고치 예상
점차 지구온난화로 낮 최고기온 33도가 넘는 폭염과 야간 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 등도 덩달아 길어질 것으로 기상당국은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폭염은 31.5일, 열대야는 17.7일을 각각 기록했다. 역대 최장이었다. 특히 작년 여름에는 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동시에 한반도를 강하게 덮쳐 낮 최고 기온이 40도까지 올랐다.
그래픽=김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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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기온이 20도 이상 유지되는 기간을 뜻하는 여름 일수를 비롯해 최고기온·최저기온·평균기온·폭염 일수·열대야 일수·가뭄 등 모든 지표가 증가 추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동준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아열대 제트기류는 이동성 고·저기압을 만들면서 대기 흐름을 원활히 하는 역할을 하는데, 북극 지방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극지방과 기온 차이가 줄어들어 제트류의 흐름이 느려져 폭염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특정 일의 낮 최고 기온이 높아지는 것보다, 푹푹 찌는 날씨가 길어지는 ‘가마솥’ 더위가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오병철 국제기후환경센터 책임연구원은 "미세먼지가 몇 개월동안 한반도를 덮쳐 시민 사이에서 ‘탈(脫)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던 것처럼, 올 여름도 폭염이 장기화하면 시민들에게 비슷한 피로도를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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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노인·어린이에 치명적…"정부대책 시급하다"
‘자연 재난’으로 분류되는 폭염은 건강에 치명적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올 여름 폭염이 역대 최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온열질환자도 최고치를 기록할 곳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려 31.5일 동안 폭염이 지속됐던 지난해 여름(5월 20일~8월 31일)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4511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8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7월 충북 음성군 한 건설 현장에서는 일용직 근로자 A(51)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근처를 지나던 행인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A씨는 쓰러진 지 닷새 만에 결국 숨졌다. 당시 사인은 열사병으로 추정됐다. 같은 해 8월 서울시 광진구 한 주택에서는 치매를 앓고 있던 B(83)씨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B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한 시간 만에 숨졌다. 역시 사망 원인은 ‘열사병’이었다. B씨가 숨진 날 서울 지역은 폭염 경보가 내려진 상태로 낮 기온이 37.9도까지 치솟았다. 같은 달 강원도 춘천시 신동의 옥수수밭에 있던 C(78)씨 또한 낮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올랐을 때 밭일을 하던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지난해 5월 20일부터 9월 1일까지 4511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온열질환 사망자는 48명으로 집계됐다.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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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는 "폭염일수가 장기화하면서 올해 온열질환 환자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야외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기온이 최대치를 기록하는 시간대만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수분 섭취도 일정 간격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염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병철 연구원은 "폭염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지역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지역·성별·연령·소득 수준 등을 고려해 특성에 맞는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주로 독거노인, 어린아이 등 취약 계층의 피해가 클 수 있는 서울 등 도시와 달리 도서·산간 지방은 외부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아 폭염 피해가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반기성 케이웨더센터장은 "폭염을 없앨 순 없으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폭염에 잘 적응해 나가게끔 대책을 마련할 수는 있다"며 "정부가 나서서 폭염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폭염에 대응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사소한 것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무더위 쉼터나 햇빛 가림막, 살수차 증설도 폭염 피로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폭염은 이제 ‘뉴 노멀(새로운 기준)’..."미세먼지처럼 일상화"
기상청의 기후 전망보고서에서 지구 온도가 오르면서 폭염 일수도 덩달아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폭염은 지구온난화라는 기후 변화가 가져온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과거처럼 특별한 날씨가 아니라 매년, 혹은 상당 기간 반복되는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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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천·대구·부산·목포 등 기상 관측 기간이 100년 이상 된 5대 도시의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를 보면, 최근 10년간 평균 10일 안팎을 기록한 폭염 일수는 20년 후 평균 32일, 50년 후엔 평균 55일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폭염’은 예상보다 더 강하고, 영향을 미치는 기간도 훨씬 길어질 수 있다고 분석된다. 지난해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관측 사상 최장인 31.5일을 기록했다. 기상 당국의 예측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폭염연구센터를 운영하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명인(도시환경학부) 교수는 "지구온난화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를 지금 전 세계에서 몽땅 없애버린다고 해도 그간 축적된 관성으로 2100년까지 지구 온도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면서 "지구가 그만큼 빨리 달궈지면서 폭염이 시작되는 시간 또한 앞당겨지고, 길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오염된 대기와 건조한 지표 상태도 폭염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오병철 연구원은 "미세먼지 등으로 대기가 깨끗하지 않다 보니 밤사이 지표면 열이 빠져나가는 ‘복사 냉각 현상’이 원활하게 일어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열이 대기 중에 머물러 더위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명인 교수는 "날씨가 가물면 일사가 강해지고 바람이 적은 건조한 날씨가 지속돼 기온이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지난 5월 전국 평균 강수량(55.9㎜)은 평년(101.7㎜)의 반절 수준에 불과했다.
[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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