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주민들 "생수로 겨우 씻고 출근"
일부 주민은 피부병 증상까지…불안 호소
서울시 "노후 상수도관 침전물이 원인 추정"
21일 오전 문래동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 서울시 수돗물인 아리수 생수 400여 통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160세대가 사는 이 아파트 주민들은 오전부터 관리사무소에서 세대 당 생수 3통씩 받아갔다. 한 주민은 "어젯밤부터 수돗물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이야기 때문에 불안해서 아침에 양치도 못했다"며 "임시로 생수라도 받아가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인천에 이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에도 ‘붉은 수돗물’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부랴부랴 저수조 청소와 함께 이 지역에 생수를 공급하고 원인 규명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문래동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3일 전에 받은 저수조 수질 검사 당시 ‘정상' 판정을 받았는데 어제부터 녹물이 나온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이어졌다"며 "서울시에 전화했더니 이유는 설명 안 하고 생수만 480통을 두고갔다"고 했다.
서울시가 '붉은 수돗물' 민원이 들어온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에 '수돗물 식수 사용 중단' 권고를 확대했다. 21일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현재 식수 사용 중단 권고는 문래동 4∼6가 일대 아파트 1314세대에 내려졌다. 권고가 내려진 21일 오후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한 어르신이 급수차를 이용해 손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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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문래동 4~6가 일대 아파트 1314세대에 식수 이용 중단 권고가 내려졌다. 본부 측은 문래동 일대 수돗물은 식수 음용 기준에 부합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주민들에게 아리수 생수를 공급하고 있다. 시는 이 지역 한 초등학교에도 수돗물 식수 사용 금지를 권고했다.
◇주민 불안감 "밥도 못 해...피부염 왔다"
문래동 일대에 적수(赤水) 신고가 최초로 접수된 것은 전날인 20일 오전 8시 30분. 서울시는 현장에 인력을 투입해 오전 9시 30분부터 수도관을 세척하고 물을 빼내는 ‘퇴수'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붉은 수돗물을 직접 겪은 주민들 사이에서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문래동 주민 정훈모(74)씨는 "아침에 수돗물로 입을 헹궜는데 까끌까끌한 느낌이 입 안에 남았다"며 "밥을 할 때도 수돗물을 사용하는데 수돗물에 문제가 생기면 밥 해 먹는 것조차 어렵다"고 했다.
지난 20일 문래동 한 아파트 주민이 세면대에 받은 녹물. /주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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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주민 최정복(62)씨는 "어젯밤부터 수돗물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얘기에 새벽에 동네 체육관에 가서 정수기 물을 떠왔다"며 "이러다 인천처럼 사태가 장기화할까 봐 우려스럽다"고 했다. 인근 편의점에 근무하는 조모(68)씨는 "수돗물에 녹물이 나온다며 오전 내내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사갔다"며 "오늘 아침에만 생수 132통이 팔렸다"고 말했다.
피부병 증세를 호소하는 주민도 있었다. 문래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모(26)씨는 "몇 달 전부터 샤워 후에 피부에 붉은 반점들이 올라와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가려워 힘들었다"며 "병원에서는 접촉성 피부염으로 보이는데 물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이어 주씨는 "지난밤부터 영등포 일대 적수가 나온다는 기사를 보고 수돗물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울시는 녹물이 나오는 원인은 알려주지도 않고 열심히 청소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당부만 했다"고 말했다.
한 문래동 주민은 수돗물 이용 후 피부병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주민 제공 |
본부는 이날까지 문래동 일대 아파트 단지의 저수조 물을 빼내고 청소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아파트의 경우 저수조에 물을 담아놓기 때문에 문제의 물이 계속해서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수조 청소업체 대표 최중락(58)씨는 "아파트 저수조들을 들여다본 결과 육안상으로도 탁한 상태였다"며 "일단 150t(톤)에 이르는 물을 모두 빼낸 뒤 고압세척기와 솔로 벽면과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서울시 "3곳서 탁수 검사, 노후 배관이 원인 추정"
붉은 수돗물로 민원이 급증하자, 서울시도 분주한 상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일 문래동 지역에서 적수 발생 민원이 6건 접수됐고, 현장 조사 결과 민원 지역 6곳 중 3곳에서 기준보다 높은 탁수(濁水)가 검사됐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민원이 이어지자 전날 밤 12시쯤 급히 문래동 아파트 단지를 방문해 현장 조치 내용과 식수 공급 상황을 점검했다. 박 시장은 "먹는 물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서울시로서는 치욕적인 일"이라며 "진상을 파악하는 한편 예비비를 동원해서라도 노후관로에 대해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21일 문래동 아파트 관리사무소들 앞에 아리수 생수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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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 지역에 생수를 공급하는 한편 원인 파악에 나섰다. 문제가 된 노후 배수관((D=800mm, L=1.75Km)은 내년 교체 작업을 앞두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인 미상의 교란요인으로 노후된 배수관에서 침전물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나, 면밀한 검토를 통해 원인을 명확히 밝혀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본부 측은 이날 직원 60명을 투입해 각 세대마다 수질 검사를 별도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문래동 아파트 현장을 방문한 이창학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환경의 변화로 오래된 상수도관에 붙어있는 침전물이 수돗물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외부에서 이물질이 유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긴급 예산을 마련해 일대에 일대 노후관을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체 선정 등 교체 작업에는 적게는 수 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여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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