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이명진 논설위원이 본 공수처 법안의 문제점
이명진 논설위원 |
'중립적 수사기관은 존재 가능한가.' 국회의 공수처 신설 논의를 보며 떠올린 질문이다. 민주당 등 4당(黨)이 지난 4월 말 공수처 신설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국회 공전으로 논의는 정체 상태지만 여권 의지는 강하고 반대 야당은 소수다. 검찰도 내놓고 반대하지 않는다. 현 여권의 입법 시도가 20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이번엔 과거 어느 때보다 법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논란은 다시 불붙고 있다. 이대로 가면 공수처가 '정권의 칼'이 되고 '통제받지 않는 괴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는 법조계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실제 공수처법 곳곳에 악용 위험이 큰 조항들이 도사리고 있다.
◇'공수처장 중립성' 야당 때보다 후퇴한 법안 낸 與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 전담 수사 기구다. 정권으로부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 확보가 생명이다. 이는 결국 공수처장 임명권을 누가 갖느냐로 귀결된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린 법안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가 선정한 후보 둘 중 한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법무부장관·법원행정처장·변협회장 등 당연직 3명에 여야(與野) 추천 2명씩 총 7명이 추천위를 구성하고 이 중 2명이 반대하면 추천받을 수 없도록 했다. 야당에 '거부권'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결국 정치적 타협에 의해 나눠 먹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대통령 뜻대로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헌법학자 허영 교수는 "대통령 편 사람들이 다수가 돼 추천하고 복수 후보 중 골라 임명하면 대통령이 실질적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종민 변호사는 "정치 중립이 생명인 특별 수사 기구의 추천위 구성이 완전히 정치화된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민주당은 야당이던 2016년 낸 법안에선 '추천위 단수 추천→국회 청문회→대통령 임명' 방식으로 공수처장을 뽑자고 했다. 야당 때는 '단수 추천'이었다가 여당이 되자 '복수 추천'으로 바뀐 것이다. 재작년 법무부안도 국회가 후보 1명을 선출해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임명만 하는 것이었다. 고려대 장영수 교수는 "중립성 보장이 명백히 후퇴했다. 대통령이 선택하게 하는 것과 아닌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산 권력' 수사한다더니…
공수처는 검찰이 대통령 눈치를 살피느라 수사하지 않는 '산 권력' 비리 수사 기구라고 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최고위층 권력자들에 대한 특별 사정 기관"이라는 문재인 대통령 말로도 알 수 있다.
공수처 신설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5일 민주당이 국회 의안과에 법안 제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국회 충돌 모습. /이덕훈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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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 법안에는 수사 대상이 현직(7000명)뿐 아니라 퇴직 연한 제한 없이 '퇴직 공직자 포함'으로 돼 있다. 과거 나온 법안들이나 재작년 법무부안에도 없던 부분이다. 이는 수사 대상 무한 확대를 뜻한다. 예컨대 공수처가 '1억원 뇌물 수수 혐의'를 수사한다면 공소시효 15년을 적용해 퇴직 15년 지난 공직자까지 수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됐을까. 민주당안을 낸 백혜련 의원은 "우리는 문제 있다며 반대했는데 바른미래당에서 한사코 주장해 넣은 것"이라고 했다. 패스트트랙에 올리기 위해 타협했다는 것이다.
'전직 포함'이 되면 왜 문제가 될까.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김경수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성공 가능성을 보고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는데 현직보다 전직 수사가 단서도 많고 증거 수집도 더 쉽다"고 했다. 수사기관 생리상 현직보다 전직을 표적 삼기 쉽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권 입김이 결부되면 공수처가 '전 정권 적폐 청산 도구'가 될 수 있고 검찰과 다를 게 없어진다는 것이다. 장영수 교수는 "인원이 60~70명에 불과한 공수처가 수만명을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일단 만들어놓고 나중에 규모를 크게 늘리겠다는 의도 같다"고 했다.
◇직권남용 무기로 법원 장악하나
공수처가 수사하는 범죄에는 뇌물죄, 정치자금 부정수수죄는 물론 직권남용·직무유기, 공무상 비밀누설, 국회 위증 등 수십 가지 공무원 범죄가 포함된다. 바른미래당 법안에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까지 들어 있다. 김종민 변호사는 "직권남용이 가장 문제다. 검찰이 적폐 수사를 하면서 직권남용 처벌을 남용한 것처럼 특정 정치 세력이 공수처에 고소·고발을 하면 그걸 빌미로 무제한 수사를 벌일 수 있다"고 했다.
직권남용 고소·고발은 작년 14만건을 넘었다. 그 수사에 가장 노출되기 쉬운 집단은 판검사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판사의 재판이나 검사의 수사 결과를 문제 삼아 고소·진정을 넣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사법 농단' 수사 역시 직권남용이 주된 혐의였다. 대검 반부패부장을 지낸 강찬우 변호사는 "공수처는 아예 공식화된 판사 수사 기구"라며 "정권이 공수처를 장악하면 법원을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공수처 기소 대상에서 국회의원 등이 빠지고 판검사와 경찰 간부만 남게 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공수처가 검찰 사건을 넘겨받을 수 있게 한 부분도 악용될 수 있다. 검찰 간부는 "예컨대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같은 경우 공수처가 사건을 넘겨받아 깔아뭉개면 방법이 없다"며 "청와대나 권력층 수사를 합법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라고 했다.
◇'조사 업무'도 경력, 정권 코드 인물 진입 통로 되나
공수처는 '특별 수사'를 담당한다. 수사 영역 중 가장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공수처 검사나 수사관은 당연히 검증된 수사 전문가들로 채워야 하겠지만 그렇게 돼 있지 않다. 법안은 공수처 검사나 수사관은 일정 기간 이상 변호사로 일했거나 조사·수사·재판 업무 종사 경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 전문가가 아니어도 공수처 진입이 가능한 구조다. 특히 '조사 업무 경력'이 왜 들어갔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검사장은 "조사는 수사와 무관한 데다 의미 자체가 모호하다"며 "이렇게 해놓으면 인권위 조사나 과거사위 조사도 조사 경력으로 주장할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야당 일각에선 이와 관련해 '공수처가 민변 검찰청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김종민 변호사는 "정권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인사들로 공수처가 출범하면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보호막 역할을 하거나 수사를 핑계로 끊임없이 정치적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대못 박기'라는 것이다.
"견제받지 않는 독립 기관 공수처,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
공수처는 입법·행정·사법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기구라고 한다. 그러나 '헌법상 이게 가능하냐'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황정근 변호사는 "공수처의 수사·기소·공소 유지 기능은 헌법상 전형적인 행정부 기능"이라며 "헌법상 근거가 없는 독립 기관은 국가인권위가 유일한데 인권위는 그 설립이 유엔 기본 준칙에 따른 것이어서 공수처와 경우가 다르다"고 했다.
국가기관은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해야 하는데 독립 기구로 만들면서 견제 장치가 느슨해진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안을 보면 공수처장은 국회 출석을 거부할 수 있고, 공수처 직원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불이익 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검찰은 정기 인사로 보직 순환이 이뤄지는 데 반해 공수처 검사나 수사관은 한 번 임용되고 나면 인사이동이 없어서 '붙박이' 특수부 검사나 마찬가지 권력을 쥔다. 공수처 비리는 검찰이 수사하게 돼 있다.
그러나 검찰 간부는 "검찰 입장에서 공수처는 상왕(上王) 격인데 한번 째려볼 수나 있겠나"고 했다.
이는 결국 위헌 논란과 이어진다. 허영 교수는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또 하나의 옥상옥(屋上屋) 검찰 기관을 만들면서 통제 방법도 없다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돼 위헌"이라고 했다.
[이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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