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로 농장 초토화… “2년 안에 백신 상용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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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누엘 산체스 비스카이노 박사는 40년 이상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 운영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표준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스페인 마드리드 수의대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 최초의 ASF 백신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 ASF 연구지원금 1천만유로(약 133억원) 지원 대상자로도 확정됐다. 그는 “멧돼지한테는 들판에 백신을 던져놓고 먹게 하는데, 10개 이상 먹었을 때도 부작용이 없는지 테스트하는 과정이 남았다”면서 “1년6개월~2년 안에 백신 상용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아시아 각국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지면서 그는 중국과 한국 등 각국 정부를 자문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 5월 말 도드람양돈농협 초대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났다.
중국, 돼지에게 돼지 피 먹여 창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중국에서 창궐할 수 있었나.
40년 이상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연구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퍼진 경우는 처음이다. 7개월 만에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놀라운 속도다. 중국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파라다이스다. ASF 바이러스는 피를 통해 전파된다. 중국 농장에서는 도축장의 피를 받아와 돼지 사료로 먹이는 관습이 있다. 많은 농장에서 남은 음식물(잔반)을 돼지들한테 먹인다. 말하자면, 감염된 돼지고기와 감염된 돼지 피를 농장 돼지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먹고 있었던 셈이다. 많은 돼지가 이렇게 ASF에 오염된 채 도축장으로 실려온다. 오염된 차량을 통해서도 바이러스가 또 확산됐다.
중국의 발병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나.
ASF는 예측 가능한 바이러스다. 전파 경로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4~5년 뒤 ASF가 퍼질 것이란 논문을 2014년에 발표했다. 어떤 경로로 유입될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러시아의 돼지와 돈육제품 수입이 위험한 바이러스 유입 경로라고 판단했다. 아프리카 동부와 선박 교역을 통해 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도 짚었다. 창문이 여러 개 깨진 게 보인다면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엄중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중국 정부에 경고했지만,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중국이 ASF를 극복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돼지한테 도축장의 피나 남은 음식물을 먹이는 중국 관습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러시아처럼 ASF를 토착 전염병으로 안고 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만성적인 돼지고기 생산비 상승 요인이 될 것이다. 중국의 ASF 토착화는 전세계 양돈 지도를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한국이 지금 위기를 잘 이겨낸다면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다음으로 위험한 나라는 어디인가.
캄보디아와 인접한 타이가 가장 위험하다. 한국이 그다음이다. 한국은 북한 접경지역의 멧돼지를 조심해야 한다. 휴전선 철책만으론 충분치 않다. 멧돼지는 강인하고 수영도 잘한다. 멧돼지 사체도 위험하다. 파리나 쥐가 파먹은 뒤, 농장으로 들어와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이 염려된다. 막대한 중국 교역 물량도 위험하다.
공항은 어느 정도 통제될 것이다. 그러나 선박으로 오가는 화물과 사람이 너무 많다. 완전한 통제가 어렵다. 중국 사람들은 배 안에서 밥을 해먹기도 한다. 미국도 위험하다. 중국 교역 물량이 많은 워싱턴, 댈러스, 휴스턴 등 5개 공항을 통한 유입 가능성이 크다고 지난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남미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식품 등 구호물자를 많이 받는 베네수엘라, 그리고 중국인이 많이 사는 페루가 위험하다.
“첫 발견 농장주 지체 없이 신고해야”
중국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국경으로 바이러스가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발병했다 하면 농장주의 역할, 곧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 농장주라면 누구라도 최초 신고자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를 생각해서 바로 신고해야 한다. 두 가지 정도 의심 징후가 나타날 땐 더 미루면 안 된다. 유럽연합에서는 신고하지 않은 농장주를 엄격히 처벌한다. 최초 감염 농장에서 의심 증상을 확인하는 데, 잠복기를 포함해 5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 5일은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는 데 아주 긴 시간이다. 농장주가 잠시 침묵한다면 순식간에 10~20개 농장으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간다.
한국이 ASF 유입을 막을 수 있을까.
한국은 감염 위험이 매우 큰 나라다. 여러 위험 요소를 하나하나 제거한다면 ASF를 저지할 수 있겠지만 미래를 장담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 농장은 멧돼지에 굉장히 취약하다. 이중 펜스도 없다. 멧돼지 방역 수준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멧돼지가 그렇게도 위험한가.
멧돼지한테 농장은 나이트클럽처럼 매력적인 곳이다. 맛있는 음식이 있고 암퇘지도 많다. 펜스 하나는 쉽게 뚫고 들어온다. 이중 펜스 없이는 멧돼지를 통한 바이러스 전염을 막을 수 없다. 한국은 물과 산이 많아, 멧돼지가 살 곳이 널려 있다. 멧돼지 영역에 돼지 농장이 있어선 안 된다. 죽은 멧돼지를 본다면 꼭 신고해야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자연환경에서 대단히 안정적으로 오래 살아간다. 사체 한 마리를 방치했다가, 상상 못할 피해를 볼 수 있다. 피 한 방울만으로 농장 전체가 초토화될 수 있다. 멧돼지 사냥꾼도 아주 위험한 매개체다. 접경지역부터 멧돼지 개체수를 효과적으로 빨리 줄여야 한다.
파리의 위험성은.
ASF는 공기 전파가 안 된다. 구제역보다는 전염성이 덜하다. 다만 피를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피 한 방울에 바이러스 수백만 개가 들어 있다. 출혈이 있을 때 파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사체를 부검할 때도 파리가 접근할 수 없는 격리된 공간에서 해야 하고, 사체를 버릴 때도 철제 통에 밀봉해서 넣어 약품 처리해야 한다. 파리의 행동반경이 2㎞에서 10㎞에 이른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도살 처분 매뉴얼은 구제역과 어떻게 달라야 하나.
도살 처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혈액이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몰할 때도 그 점에 신경 써야 한다. 구제역처럼 돼지 배를 가른 뒤에 묻어선 안 된다. 발생 농장의 최소 1㎞ 반경(구제역은 500m)은 도살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사전 훈련을 충분히 하는 게 필요하다.
“인간 전염 안 되고 먹어도 무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의 초기 증상은 어떠한가.
41도까지 열이 오르고, 귀나 배가 붉게 변한다. 오한이 드니까 서로 붙어 지내려고 한다. 사체를 부검해보면, 비장이 굉장히 커져 있고, 림프샘도 부풀어 있다. 그중 두 가지 증상만 보이면 곧바로 신고해야 한다. 돼지들이 처음부터 한꺼번에 쓰러지지는 않는다. 네댓 마리가 열이 나면서 앓다가 시일이 지나면서 폭발적으로 퍼진다.
사람을 통해 전파되는 일은 없나. 사람한테 위험하진 않나.
그런 전파 사례는 아직 없다. 사람한테 해도 없다. 사람이 바이러스를 먹더라도, 위산 때문에 죽는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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