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기소 첫 재판…재판 거래·개입 혐의 모두 부인
“수사 아닌 사찰” 원색 비난…박병대·고영한, 양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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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이 기소 4개월여 만에 열린 첫 정식 재판에서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서 소설을 쓴 것” “수사가 아니라 사찰”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검찰을 비판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박병대(62)·고영한(63)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피고인으로 나온 재판인데도 양 전 대법원장에게 “송구하다” “죄송하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회 공판에서 “모든 것은 근거가 없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 같은 이야기”라며 재판 거래·개입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관 생활을 42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 봤다. 용두사미”라며 검찰을 향해 날선 말을 이어갔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 맨 첫머리에 흡사 피고인들이 엄청난 반역죄나 행한 듯이 아주 거창한 거대담론으로 시작하지만, 공소장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재판 개입은 어디 갔는지 없고 심의관들에게 몇 가지 문건을 작성하게 했다는 것이 직권남용이라고 끝을 낸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내 취임 첫날부터 퇴임한 마지막 날까지 모든 직무행위를 샅샅이 뒤져서 그중에 뭔가 법에 어긋나는 것이 없는지를 찾아내기 위한 수사였다”며 “이게 과연 수사인가.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주장과 달리 최근 공범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나온 전·현직 법관들 중 검찰 때 진술을 뒤집은 사례는 거의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월에도 검찰을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공소장을 만들어낸 ‘조물주’에 비유하면서 보석해달라고 했지만 재판부는 보석 청구를 기각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공범으로 기소돼 법정에 나온 박 전 처장과 고 전 처장도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처장은 “재판이 진행되면 그동안 오해나 과장이 있었던 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고 전 처장은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조직 위상 강화와 안정적인 조직 운영을 위해 여러 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며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있을지라도 형사범죄에 이를 정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심경을 표하기도 했다. 박 전 처장은 “(제가) 처장으로서 행정처를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해 대법원장님께서 구속까지 돼 이 고초를 겪게 되신 것 아닌가 싶어 송구스럽다”고 했다. 고 전 처장도 “대법원장님을 제가 잘못 보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통상적인 재판에서 문제 되지 않는 재판 진행 절차를 두고 사사건건 공방이 이뤄지는 바람에 재판이 지나치게 지연될 우려도 나온다. 당장 이날도 검찰이 공소사실 요지를 낭독하면서 입증계획을 함께 설명하자 양 전 대법원장 측이 형사소송법에 맞지 않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검찰은 피고인이 변호인보다 먼저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를 밝혀야 된다며 맞대응했다. 증인신문 순서와 증거 제시 방법 등을 놓고도 공방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원래는 오후에 서류증거 조사를 하기로 했지만 진행되지 못하고 재판이 끝났다. 검찰은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중복되거나 심리와 관련이 없는,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많다”며 “검찰과 사법기능에 근거 없는 모욕 수준의 주장들”이라며 재판장의 신속한 진행을 촉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은 8월 만료된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원 등 시민 30여명이 방청석에서 이날 재판을 지켜봤다. 이들은 공정한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감시한다는 차원에서 옷에 ‘두눈부릅’이라는 스티커를 붙였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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