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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양승태, 檢 향해 작심발언.."공소장, 소설가가 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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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1회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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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이 첫 정식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어느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자문을 받아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라며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첫 공판에서 “법적인 측면에서 허점과 결점이 너무 많아서 결국 공소전체를 위법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과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해 담담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그는 무려 30분 가까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의견을 말했다.

■"40여년 법관생활, 이런 공소장 처음봐"
양 전 대법원장은 “무려 80명이 넘는 검사가 동원돼 8개월이 넘는 수사를 한 끝에 300페이지가 넘는 공소장을 하나 창작했다”며 “법관생활을 40여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봤다”고 꼬집었다. 이어 “찾아오는 여러 동료 법률가들도 공소장을 보고서 ‘어떻게 이런 공소장이 다 있느냐’며 한결같이 입 맞춰 말한다”며 “(검찰이) 법원의 재판절차나 법관의 자세나 이런 측면에 관해 너무나 아는 게 없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이 너무 과장됐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 맨 첫머리는 흡사 피고인들이 엄청난 반역죄나 행한 듯이 아주 거창한 거대담론으로 시작한다”며 “재판으로 온갖 거래행위를 하고, 있을 수 없는 재판거래를 획책한 것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며 모든 것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줄거리를 만들어내다가 제일 마지막 공소사실을 축약하는 결론부부에 이르러선 재판거래는 어디 갔는지 없다"며 "겨우 휘하 심의관들에게 몇 가지 문건과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던 것이 직권남용이라고 끝을 낸다”고 말했다.

검찰이 자신에게 ‘재판거래’라는 프레임을 씌웠음에도 공소사실에는 겨우 문건 작성에 대한 직권남용만이 남았다는 취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거래를 했다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중에 실제 조사를 해보니 재판거래라고 할 만한 부분은 나타나지 않아서 하나 골라 재판거래인 듯이 포장했다”며 “그것도 재판에 개입한 흔적이 별로 없으니 결국 나중에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끝을 낸다.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용두사미도 이런 용두사미가 없다. 용을 그리려다 뱀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고 검찰을 비꼬았다.

또 공소사실에 ‘~등’이라는 표현이 많은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람이나 행위가 둘 이상이라는 점을 뜻하지만, 피고인 측에선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의 표현이 많다고 할 정도가 아니라 온통 이런 표현들”이라며 “마치 권투를 하는데, 상대방의 눈을 가리게 하고 이쪽에서는 두 세 사람이 때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수사기록 보고 깜짝 놀라..이건 사찰"
양 전 대법원장은 18만쪽에 이르는 검찰의 수사기록 중 일부만 보고도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사람의 진술조서나 피의자 심문조서를 보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추측성 진술로 온 조서가 뒤덮혀 있다”며 “의견을 제시하라는 검사의 독촉이나 재촉에 못이겨 교묘한 유도심문에 영합하는 진술이 대부분인 것을 행간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수사가 정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법관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당하면서 검찰조서가 얼마나 경계해야 하고, 신빙성이 적은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어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깜짝놀란 것은 이번 사건 수사가 공소장에 기재된 어떤 범죄행위에 대한 통상적인 수사가 아니라 내 취임 첫날부터 퇴임한 날까지 모든 직무행위를 샅샅이 뒤져 법에 어긋나는 것이 없는 가를 찾아내기 위한 수수였다는 게 곳곳에서 느껴졌다”며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어떤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처벌거리를 찾아내기 위한 수사는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수사”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는 민주정치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법원에 대해 이토록 잔인한 수사를 한 사례가 대한민국 밖에 어디 또 있는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진술이 끝나자 검찰 측에서 “반박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 반박할 기회를 준다면 저에게도 다시 반박할 기회를 달라”고 날카롭게 반응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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