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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韓日 외교회담 열자마자 '징용 판결' 정면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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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교부 대변인의 "日기업, 강제징용 판결 이행하라" 촉구에

고노 日외상 "사안의 중대성 모르고 양국 관계 어렵게 할 발언"

한·일 외교 당국이 23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문제를 두고 정면 충돌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이 "일본 기업이 우리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하자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이 발언을 콕 집어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3개월 만에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외교가에서는 "양국이 대화를 시작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견은 거의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 이행하라" 對 "사안 중대성 몰라"

김인철 대변인은 고노 외무상이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나서라고 요구한 데 대해 이날 정례 브리핑(오후 2시 30분)에서 "일본 기업이 우리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의 기본 입장을 설명하는 형식이긴 했지만 이례적으로 고노 외상 발언에 대한 비판조로 강제징용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지금까지 외교부는 "사법부 판결에 행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입장 표명을 극도로 삼가왔다. 일본 정부가 중재위 설치 요청에 이어 문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는 등 '외교 결례' 논란을 무릅쓰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자 맞불을 놓은 모양새다.

그러자 고노 외무상이 이날 오후 9시(한국 시각) 파리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반박에 나섰다. 그는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대변인의 발언은)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발언"이라며 "이런 발언이 일·한 관계를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강경화 장관이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를 축하하며 덕담을 건넨 직후였다.

이날 회담은 시종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일본 측은 중재위 설치를 압박하고, 우리 정부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은 당초 예정(50분)보다 긴 80분 동안 진행됐다. 외교 소식통은 "양측이 대화 테이블에 앉기 전에 일부러 상대에 대한 공격으로 회담의 주도권을 쥐려 한 측면도 있다"며 "그래도 대화의 물꼬가 트였으니 다른 층위에서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사회적 갈등 관리를 담당하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이 강제징용 피해자 측과 접촉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별한 임무를 갖고 만난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사법·행정 분리론'을 강조하며 거리를 두던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본 NHK는 한국 정부가 피해자 측에 압류한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 절차를 연기할 수 있는지를 타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이날 보도했다.

◇日 언론 "韓 '징용 재단' 설립 가능성"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날 한·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서 대법원 판결을 받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이 배상(賠償)하는 것을 전제로,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보상하는 해결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이 방법이 일본 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배상명령 청구를 멈출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측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모든 개인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작다. 또 한국 정부는 1965년 기본 협정 체결 후와, 2005년 이해찬 당시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민관위원회 결정에 따라 두 차례 보상한 적이 있다. 신문은 한국 정부가 재단을 만들어 보상할 경우 이전의 보상액과 새로운 보상액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이 같은 방식을 주장해왔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국 정부와 한·일 양국의 관련 기업이 참여하는 3자 기금으로 보상하는 방식 등 원만한 해결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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