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 의혹에 대해 조사했던 검찰과거사위원회, '장자연 리스트' 핵심 의혹 진상 규명 제대로 못한 채 수사권고 어렵다는 결론 내려 / 공소시효, 증거 부족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조사 결과 기대했던 시민들 실망한 모습 / 조사단이 강제수사 권한 없이 시작한데다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이어서 진상규명 쉽지 않았을 것이란 점은 예견된 부분 / 수사받는 이들의 비협조, 증거인멸, 말 맞추기 등도 예상할 수 있었던 대목 / 이번 조사 '시간낭비' '헛발질'로 평가절하해선 안돼 / 사건 당시 검경 수사 미진했단 점을 확인한 것은 성과 중 하나 / 연예기획사 접대 관행, 사업행태 폭로한 건 눈 여겨 볼만한 대목
이번에도 공소시효, 증거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적지 않은데요.
조사단이 애초 강제수사 권한 없이 시작한 데다, 이미 10년이 지난 일이어서 진상규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부분입니다.
수사를 받는 이들의 비협조, 증거인멸 등도 일정 부분 예상할 수 있었던 대목이었는데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각오하고 사건을 다시 규명하려 한 만큼 더 치밀한 준비와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조사를 '시간낭비' '헛발질'로 평가절하할 순 없습니다. 사건 당시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성과 중 하나입니다. 설령 재수사까진 가지 못해도 관계자에 대한 추가조치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비록 실체 확인은 못 했지만 조사단이 "장자연 문건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 것도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실체 확인 여부를 떠나 당시 연예기획사들의 접대 관행이나 사업행태를 폭로한 사건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가 20일 고(故) 장자연 씨 사망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검·경이 부실하게 수사했고, 조선일보가 수사 과정에 외압을 행사한 사실도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나 핵심 의혹인 장씨에 대한 술접대·성상납 강요 등은 공소시효 등의 사유로 수사권고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요.
장씨가 친필로 자신의 피해 사례를 언급한 문건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지만, 가해 남성들을 이름을 목록화했다는 '장자연 리스트' 존재 여부는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봤습니다.
◆과거사위 "장자연, 소속사와 불합리한 계약으로 술접대 등 강요받았다"
과거사위는 이날 오후 2시 정부과천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장자연 사건' 최종심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과거사위는 지난 13일 대검찰청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조사단)에서 13개월간의 조사 내용을 담은 '장자연 보고서'를 제출받아 이에 대한 검토와 논의를 해왔는데요.
'장자연 사건'은 장씨가 2009년 3월 기업인과 유력 언론사 관계자,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폭로한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입니다.
당시 수사 결과 장씨가 지목한 이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사건이 온전히 규명되지 못한 채 묻혔다는 비판이 제기됐는데요. 이에 조사단이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작년 4월 2일부터 13개월 넘게 이 사건을 새롭게 살펴봤습니다.
과거사위는 장씨가 친필 문건을 통해 주장한 술접대 행위 및 폭행·협박 등의 피해 사례는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피해 사례를 기재한 내용 외에 가해 남성들의 명단이 기재된 이른바 '리스트'가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누가 리스트를 작성했는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기재한 것인지, 리스트에 구체적으로 누가 기재됐는지에 대한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장자연 리스트' 의혹 진상 규명 불가능한 이유
과거사위는 장씨가 소속사와의 불합리한 계약에 근거해 술접대 등을 강요받은 여러 정황을 사실로 확인했습니다.
과거사위는 "기획사 대표가 소속 배우지망생 또는 신인 연기자에 대한 지배적인 권력을 폭력적으로 행사했고, 이는 신인 연기자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한 주요 요인"이라고 규정했는데요.
과거사위는 술접대·성접대 강요 의혹, 장자연 문건 속 '조선일보 방사장' 의혹 등과 관련해 검사의 사건 처리에 여러 문제가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과거사위는 "술접대 강요가 있었다고 볼 만한 여러 사정이 있었음에도 막연히 장자연 문건의 내용이 모호하고 동료가 직접적인 폭행·협박을 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했다"며 "이는 수사미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문건에 언급된 '조선일보 방사장'과 관련해서는 "(일정에 적힌) '조선일보 사장 오찬' 스케줄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무관하다는 점에 치중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며 "'방사장'이 누구인지, 장자연이 호소한 피해 사실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장씨의 수첩·다이어리·명함 등 주요 증거들이 압수수색에서 누락되고, 장씨 휴대전화 통화 내역 원본 및 디지털포렌식 분석 결과가 기록에서 빠진 점 등도 부실 수사의 근거로 지적됐는데요.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경찰청장과 경기청장을 찾아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조사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한 점도 사실로 확인했다고 과거사위는 밝혔습니다.
◆처벌 가능성 남은 특수강간·강간치상 혐의 "충분한 사실·증거 확인 안돼"
반면 장씨에 대한 술접대·성상납 강요 의혹 중 유일하게 처벌 가능성이 남은 특수강간이나 강간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에 즉각 착수할 정도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사위는 "과거 수사 과정에서 전혀 제기되지 않았던 사항이고 사실인 경우 그 혐의가 매우 중대하다"면서도 "(증언자인) 윤지오 씨 등의 진술만으로는 성폭행이 실제 있었는지와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을 알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사위는 추가 조사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간 제기됐던 강요나 성매매 알선 등의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라며 "수사가 개시되려면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가 인정돼야 하지만 2인 이상이 공모·합동했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했는지 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는 장씨 소속사 대표 김모씨가 이종걸 의원 명예훼손 사건에서 위증한 혐의에 대해서만 수사를 개시해달라고 권고했는데요.
과거사위는 "조사단이 총 84명의 진술을 청취하는 등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지만 통화내역 원본, 디지털포렌식 복구자료 등을 확인할 수 없었고 주요 의혹 관련자들이 면담을 거부해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위원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성폭행 피해 증거의 사후적 발견에 대비한 기록의 보존 △디지털 증거의 원본성 확보를 위한 제도 마련 △압수수색 등 증거확보 및 보존 과정에서 공정성 확보 방안 마련 △수사기관 종사자의 증거은폐 행위에 대한 법왜곡죄 입법 추진 △검찰공무원 간의 사건청탁 방지 제도 마련 등을 검찰에 권고했습니다.
◆과거사위 "윤지오 진술만으로는 장씨 정확한 성폭행 여부 등 알 수 없어"…의혹 관련자 면담 거부해 조사 한계
장자연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꼽혔던 윤씨 증언을 놓고 신빙성 논란이 빚어진 점도 진상조사단의 재조사 동력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입니다.
윤씨는 장씨가 성접대 남성들의 이름을 기록한 ‘장자연 리스트’를 직접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데요.
장씨 사망 이후 줄곧 증인으로 나서 왔던 윤씨는 이번 진상조사단의 조사에도 적극 협조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장씨의 술에 약을 탔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하면서 난관이었던 공소시효 돌파구도 여는 듯 했습니다.
윤씨의 책 출간을 도왔던 작가 김수민씨와 ‘장자연 리스트’를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언론인 등이 윤씨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을 문제 삼으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하는지 여부에 대해선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장씨의 성폭행 피해 의혹을 제기했던 윤씨 진술과 관련해서도 “이중적인 추정에 근거한 진술(술에 약을 탔을 것이라는 1차 추정, 자신이 떠난 후 성폭행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2차 추정)이라는 점에서 성폭행의 직접적인 증거로 삼기 어렵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나마 과거사위가 장씨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가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명예훼손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한 혐의에 대해 진상조사단의 요청대로 검찰에 수사개시를 권고하면서 그나마 성과를 거두게 됐다.
앞서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5월 윤씨의 과거 증언을 토대로 술접대 자리에서 장씨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직 기자 조모씨를 재판에 넘기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윤지오 "장씨 술에 약을 탔을 것"…조사단 "이중적인 추정에 근거한 진술, 직접 증거로 인정 어려워"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경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과거사위 진상조사 결과에 "일부 인사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한 것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조선일보는 입장문을 내고 "이 부장은 '장자연 사건' 수사를 전후해 조 전 청장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와 이동한 현 조선뉴스프레스 대표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조 전 청장을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고, 민사 소송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는데요.
조선일보는 강 전 청장이 이 부장으로부터 수사 외압을 받았다는 내용도 부정했습니다. "이 부장이 '장자연 사건' 수사 당시 강 전 청장과 면담했지만, 수사 결과를 신속히 발표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뿐"이라며 "이는 방 사장에 대한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 일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방 사장과 조선일보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조선일보는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러나 당시 강 전 청장은 신속한 수사 결과 발표 요청을 거절하고 검·경은 4개월간 수사를 벌인 뒤 방 사장과 '장자연 사건'이 아무런 관련 없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조선일보는 과거사위에 "일부 인사의 일방적 주장과 억측에 근거해 마치 조선일보가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것처럼 단정적으로 발표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사실을 바로잡고 조선일보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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