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3기 신도시 발표를 위해 브리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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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강선마을이 1억 넘게 떨어졌다고요? 그런 매물은 나온 적도 없고 거래된 적도 없어요. 여기 부동산 하는 사람들 그 가짜뉴스 때문에 난리났어요.”
경기 일산 서구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에 1억원 넘게 떨어진 아파트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일산 동구의 중개업소에도 사실 확인을 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지난 5월 7일 고양 창릉 등을 택지개발지역으로 지정한 정부의 3기 신도시 계획 발표 이후 일산지역 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발표 전에도 해당 지역 부동산은 하락세였으나 폭락과는 거리가 먼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일부 경제지 등은 3기 신도시 정책에 반발하는 주민의 입을 빌려 일산신도시 등 1·2기 신도시에 연일 ‘사망선고’를 내리고 있다. ‘집값 폭락설’을 비롯한 가짜뉴스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이 끼어들면서 3기 신도시 정책은 부동산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책은 사라지고 쟁점만 남은 것이다.
‘1억 폭락’ 가짜뉴스 주민 반발 부채질
택지를 개발하는 신도시 대책은 주민 반발을 부른다. 대책을 반대하는 이유는 지역 특성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보면 재산권 침해문제로 귀결된다. 신축주택 공급으로 인한 집값 하락과 택지개발을 위한 정부의 토지 강제수용에 따른 반발이다. 남양주 왕숙과 인천 계양·하남 교산 지구들의 반발은 강제수용에 속한다.
일산신도시 주민들의 반발은 어디에 해당할까. 일산 지역 주민들은 교통 인프라 부족과 기업 유치 무산으로 자족 기능이 없는 상황에서 인근에 신도시가 들어설 경우 도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른바 ‘베드타운’ 현상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자족 기능과 도시 경쟁력은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3기 신도시 반대 집단행동을 주도하고 있는 일산신도시연합회가 예상한 3기 신도시 시나리오를 보면 반발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일산신도시연합회의 첫 집회 공지문에 따르면 고양 창릉지구에 3만8000가구 추가 공급으로 현재 고양시에 예정된 입주물량은 9만500가구다. 입주물량 증가는 큰 폭의 아파트값 하락을 부르고, 이렇게 되면 외국인 유입이 증가하고 슬럼화가 진행돼 치안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는 “해당 지역 주민이 반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집값 하락”이라며 “입지가 더 좋은 창릉에 새 아파트가 들어오면 소유 중인 오래된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일산 아파트 ‘1억원 폭락’과 같은 가짜뉴스는 주민들의 집값 하락 공포심을 자극해 반발을 부채질한다. 3기 신도시 반대 주민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서는 일산 집값 폭락 소식 공유를 시작으로 일산 내 대기업 외부 이전, 롯데·삼성 본사 매각, 가상화폐를 통한 북한 지원 소식과 같은 가짜뉴스가 돈다. 노무현 정부에서 70조원의 예산으로 추진하려던 4대강 사업을 이명박 정부가 22조로 공사를 진행해 예산낭비를 막았다는 황당한 대화도 오간다.
고양시 일산서구 한 아파트 단지에 신도시 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반기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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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문재인 정부를 ‘세월호로 선동질해서 내란을 일으킨 세력’으로 규정하고 세월호 유족이 정부를 협박해 수십억 원을 뜯고 자녀들을 의대에 특례입학시켰다는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퍼붓는다. 가짜뉴스를 통한 정부·여당에 대한 비토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 지지 호소로 이어지고, 대화방은 정치를 둘러싼 소모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정치에서도 ‘일산신도시 사망설’은 야당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시의원들은 ‘일산신도시 사망’ 플래카드를 내걸고 3기 신도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3기 신도시 정책을 환영한다는 이재준 고양시장(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고양 정무부시장이 공개적으로 3기 신도시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지역 정치권에 혼란을 키우고 있다. 이봉운 고양시 정무부시장은 “고양시장이 일방적으로 중앙정부에 따라가다보니 1기 신도시 주민들은 허탈감에 빠지게 됐다”며 “이런 방식의 행정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시의원들 철회 요구
3기 신도시가 가짜뉴스와 정치권의 쟁점 소재로 소비되면서 부동산정책에 대한 논의는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정부가 3기 신도시를 통해 공급하게 될 주택은 모두 30만가구에 이른다. 서울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공급책을 택한 것이다. 정부 예측과 달리 9·13대책 이후 다주택자들이 시중에 집을 매물로 내놓지 않자 불안한 부동산시장에 물량 공급을 밀어넣은 셈이다. 급등세는 멈췄지만 여전히 불안한 부동산시장을 잡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1989년 200만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주택 공급사업이 진행되면서 1990년대에는 집값 안정이 유지됐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도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주택을 공급하는 시기와 방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주택 공급 물량은 이전 정부와 달리 적지 않은 수준을 유지했다. 2017년과 2018년 입주물량은 30만가구에 달했다. 지난 10년(2007~2016년)간 평균 입주물량인 19만5000가구보다 많다. 이는 제2차 장기주거종합계획에서 추정한 2018~2022년 수도권 주택수요 21만가구를 상회하는 물량이다. 지난 5월 7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향후 주택시장 여건에 따라 언제든지 추가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 지금도 수도권 주택 공급 물량은 적지 않은 수준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도 3기 신도시 정책의 성공 여부를 가를 변수다. 3기 신도시 건설이 완료되는 10년 뒤, 인구가 줄면서 주택수요 감소가 심화되면 수도권 주택 물량은 되레 넘칠 수 있다. 미분양 해소를 위해 분양 촉진을 위한 규제완화 카드를 꺼내들 경우 다시 투기세력이 살아날 수 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택지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정책은 민간분양 중심 위주로 짜여진 정책”이라며 “집값 안정보다는 건설경기 부양과 연동되는 시장정책에 가깝다”고 말했다.
3기 신도시가 장기적으로 국토 균형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 경기 침체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신도시 추가 조성은 신도시 쏠림현상 가속화를 불러올 수 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장기적인 정책으로 써야 할 신도시 카드를 단기 시장 조절을 위해 너무 쉽게 쓰고 있다”며 “보유세 강화와 같은 부동산 근본정책을 세우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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