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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두산 베어스의 정수빈은 롯데 자이언츠 투수 구승민의 투구에 의해 갈비뼈 골절 및 폐에 피가 고이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례적으로 감독들이 주도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발단은 '몸에 맞는 공'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 선수단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열린 경기 중 양 팀 감독이 설전을 펼친 뒤 벤치클리어링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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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지난달 27일, 삼성 라이온즈의 외국인 투수 맥과이어는 상대 타자인 LG 트윈스 유강남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진 후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한국식 인사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선수가 한 행동이라 그런지 화제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다소 지나친 행동이 아니었냐는 의견도 있었다. 역시, 발단은 '몸에 맞는 공'이었다.
야구에서 투수가 던진 공(투구한 공)이 스윙 없이 타자의 몸이나 유니폼 또는 보호장구에 맞는 경우, 타자는 해당 시점의 볼카운트 여부와 관계없이 1루까지 진루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몸에 맞는 공', 소위 '사구(死球)' 또는 '데드볼'로 지칭되는 야구 규칙 중 하나에 대한 정의이다.
※ '사구' 또는 '데드볼'은 현대 야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다. 일본 야구에서 오역해서 쓰는 단어가 우리 야구에 들어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공식적인 용어는 '몸에 맞는 볼(HBP·Hit By Pitch)'이다.
'몸에 맞는 볼'은 투수가 야구의 기본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발상으로부터 출발한다. 투구의 목적은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이다. 아웃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타자가 공을 칠 수 있게끔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며, 치기 어려운 위치의 공(볼)을 적절하게 섞어야 한다. 하지만, 치기 어려운 위치의 공에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타자를 맞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타자의 몸이 반드시 신체적인 몸만을 의미하지 않다는 점이다. 타자가 입고 있는 유니폼이나 보호장구 또한 광의의 몸에 포함된다. 때문에 물리적 피해 없이 유니폼에 스치기만 해도 이 규칙은 적용된다.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몸에 맞는 공'이 무상으로 진루할 수 있는 행운의 하나로 치부될 때도 꽤 있다.
사실, 일반 팬들은 수십 년간 야구라는 스포츠에 특화되어 운동해온 선수들이 투수의 공을 피하지 못하고 맞는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투수의 공을 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날아오는 공을 쳐서 멀리 보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체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선수들은 이에 대해 타자의 두 발(또는 한 발)을 나무 뿌리로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발이 고정된 상태에서 날아오는 공을 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프로 수준에서 투수의 공은 최소 120㎞/h 이상, 평균적으로는 140㎞/h 이상의 속도로 날아온다. 실질적인 타자와 투수 간의 거리가 18m 이하 정도임을 감안하면 타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0.44초 이하인데, 타자가 날아오는 공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0.19초임을 감안하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0.25초 이하로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다. 어찌 보면 타자가 피해낸다는 것이 엄청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몸에 맞는 공' 은 매우 위험하다. 둘레 23㎝, 무게 140g 정도의 작은 야구공에 투수의 물리력이 동반되어 140㎞/h 이상의 속도가 발생하면, 수십 t의 압력이 생겨난다. 이러한 공이 인간의 뼈와 정통으로 충돌한다면, 뼈가 부러지거나, 심지어 산산조각이 나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실수로라도 '몸에 맞는 공'이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투수가 일부러 타자의 몸에 맞히거나, 그럴 의도를 가지고 투구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소위 빈볼(bean ball)내지, 빈볼성 투구이다. 빈볼은 통상 양 팀 간의 비매너로 인한 감정 싸움의 일환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빈볼은 야구의 고유의 문화 또는 불문율로 인식되어 있을 수 있는 일로 용납되곤 한다.
그러나 이유 여하와 고의성 여부와 관계없이 '몸에 맞는 공'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크고 작은 신체 부상은 물론이고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때로는 선수생명, 또 아주 가끔은 실제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스포츠는 그리고 각각의 스포츠 종목들은 독특한 문화가 있다. 그러한 문화들은 가끔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과는 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는 존중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상해를 입히고,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끼치는 경우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몸에 맞는 공'이 의도되어서는 안 되며, '死球'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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