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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경향신문 '베이스볼 라운지'

[베이스볼 라운지]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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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말은 힘이 세다. 선언은 메시지이자 목표다. 생각은 말을 통해 구체화되고 무게를 얻는다. 야구의 말도 다르지 않다. 시즌을 앞두고 세운 여러 숫자들은 목표가 되고 동기 부여가 된다.

SK 투수 강지광은 투수에서 타자로, 다시 투수로 제 역할을 바꿨다. 히어로즈에서 SK로 이적해 다시 투수가 됐다. 방망이를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인천고 후배들에게 타격 관련 장비들을 모두 물려줄 때도 가슴 한구석에 미련이 남았다. 공 던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배팅 훈련장에 들어가 방망이를 들었다.

강지광은 시속 155㎞를 쉽게 던진다. 투수는 구속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다. 강지광은 “투수는 특별한 포지션이다. (김)광현이 형을 보고 있으면 새삼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강지광은 “광현이 형은 말에 실패가 없다”고 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목표가 돼 성공으로 이어지면 말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강지광이 투수와 타자의 갈림길 가운데서 흔들릴 때 이를 잡아준 것도 ‘말’이었다. 강지광은 “다들 믿지 않겠지만 기도를 하다 ‘마운드가 너의 자리’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말은 힘이 됐고, 강지광은 1승1패, 2홀드를 기록 중이다. 2군에 내려갔다 온 뒤 최근 6경기에서는 35타자를 맞아 볼넷을 2개밖에 주지 않았다.

NC 이동욱 감독은 거꾸로 말을 거둬들였다. 수비 코치 시절 누구보다 말하기를 좋아했던 인물이었다. 2019시즌을 앞두고 감독이 됐고, “감독은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자리라는 걸 매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말’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감독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나도 모르게 ‘번트 띄우지 말아야지’라고 말하면, 팀 전체가 번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번트의 목표는 주자의 진루인데, 감독의 한마디 때문에 번트의 목표가 띄우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이 감독은 “팀 전체를 향한 말은 ‘잘한다’ ‘좋다’는 말 외에는 가능한 아끼고 있다. 필요한 말이 있으면 코칭스태프에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감독의 말은 선이고, 규칙이고, 팀을 가두는 틀이 될 수 있다.

LG 김현수는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LG 류중일 감독은 “김현수 경기 중에 진짜 말 많데이”라며 웃는다. 더그아웃에서는 물론이고 외야 수비 나가서도 떠든다. 투수교체 때 야수들이 모이면 수비 위치, 범위는 물론이고 타석의 내용까지 대화의 범위가 한도 끝도 없다. LG 김용의는 김현수를 두고 “잔소리 대마왕”이라고 평가했다. 김현수의 ‘말’이 LG의 분위기를 바꿨다. 일종의 전염이다. 김현수가 떠드니 다른 선수들도 떠들 수 있다. LG가 지난 2일 8연승을 했을 때 김현수는 “선수들이 자유롭게 자기 표현을 하는 게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LG의 한 코치는 “솔직히 LG는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분위기가 많았다. 서로 얘기가 많지 않다. 경기 중 실수가 나오면 실수한 선수는 고개 숙이고, 다른 선수는 애써 모른 척하는 분위기였다. 그게 서로를 위해 주는 거라고 여겼다”면서 “지금은 다르다. 실수를 하면 혼나든 격려받든, 미안하다고 얘기하든 어떻게든 풀고 가는 게 다음 플레이에 좋다. 그걸 김현수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말의 힘이다. 지난해 LG는 8연승 뒤 8연패를 하면서 흔들렸다. 올해는 그 흐름을 다시 뒤집을 수 있는 ‘말의 힘’을 가졌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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