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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홍혜민의 B:TV] “잘하는 MC가 없어서”…비겁한 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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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왼쪽부터 차례로) 전현무, 박나래, 유세윤 등이 최근 다양한 예능에서 MC로 활약 중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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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선택의 폭이 너무 없다고 생각해요.”

이는 지난 11일 열린 JTBC ‘슈퍼밴드’ 제작발표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당시 제작진에게는 “지금까지 다양한 음악 예능 MC로 활약해왔고, 현재도 JTBC에서 ‘스테이지K’ MC를 맡고 있는 전현무를 굳이 MC로 발탁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전해졌다.

실제로 전현무는 현재 JTBC의 금요일 예능 ‘슈퍼밴드’와 일요일 예능 ‘스테이지K’에서 MC를 맡고 있다. 한 명의 MC가 비슷한 시기, 비슷한 포맷의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는 허다하다지만, 이처럼 같은 시기, 같은 방송사에서 동일한 인물이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유사한 기조의 프로그램의 출연이 거듭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시감까지 감수한 섭외 이유에 궁금증이 집중됐다.

이에 마이크를 든 것은 제작진이 아닌 윤상이었다. 제작진이 직접 답하기엔 다소 민감한 질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는지, 혹은 MC 전현무에 대한 두터운 신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대답해도 되나”라며 입을 연 윤상은 “우선 (MC) 선택의 폭이 너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윤상은 “음악 프로그램을 녹화할 때 MC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음악적으로 그 분위기를 오롯이 느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MC가 정말 없다”며 “그런데 현무 씨는 음악의 감동을 정말 잘 느낀다. 그게 (MC가) 겹치더라도 무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덧붙였다. 제작진 역시 전현무의 섭외 이유에 대한 윤상의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윤상과 제작진이 극찬했듯, 전현무는 앞서 ‘히든싱어’ ‘불후의 명곡’ ‘엠넷 보이스 키즈’ ‘K팝스타’ ‘판타스틱 듀오’ ‘힛 더 스테이지’ ‘팬텀싱어’ ‘노래의 탄생’ 등에서 MC로 활약해 온 명실상부 국내 톱클래스 ‘음악 예능 전문 MC’다. 그가 거쳐 온 수많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이 증명하듯, 음악 예능에 있어서 전현무는 독보적으로 안정적인 진행능력은 물론현장에 함께하는 청중과의 능숙한 소통능력 역시 갖추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정된 제작비를 들여 최대의 효율을 내야 하는 제작진의 입장에서 ‘음악 경연’에 최적화 된 전현무는 늘 1순위로 러브콜을 보내게 되는 메인 MC 재목이 된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보장된 진행력과 소통 능력까지 갖춘 MC가 탐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안정적인 선택에 의존하다보니 점차 예능판이 일부의 특정 MC들로 꾸려진다는 점에 있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이 비단 전현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 새롭게 론칭하는 연애 관련 프로그램의 여성 MC 자리에 한혜진 또는 박나래가 빠지는 법이 없으며, ‘너목보’ ‘트로트 엑스’ ‘퍼펙트 싱어’ ‘골든 탬버린’ ‘더 콜’ 등을 비롯해 현재 MBC ‘다시 쓰는 차트쇼-지금 1위는’에서 활약해 온 유세윤 역시 전현무 못지않은 음악 예능 단골 MC다.

한 장르의 프로그램에 오랜 시간 출연하며 쌓아온 그들의 전문성은 분명히 프로그램의 퀄리티에 일조한다. 이를 부정하거나,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줄곧 지적받고 있는 익숙한 얼굴들에서 비롯된 기시감의 문제는 아직까진 이들의 진행력과 ‘믿고 보는’ 예능감으로 어느 정도 절충이 가능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출연, 섭외 관행이 아쉬운 가장 큰 이유는 현재보단 미래에 대한 우려에서 오는 것이다.

지금이야 특정 분야에 강세를 보이는 ‘완성형 MC’들에 의존해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간다 쳐도, 이 같은 흐름이 어느 순간 예능가의 MC 기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아 육성을 해야 할 시점에 육성을 외면하고 기존의 부장, 과장급 사내 경력자들에 의존하며 ‘안전 선택’만 택한다면 과연 그 회사의 미래가 밝을까. 같은 맥락에서 보면 ‘MC 기근 현상’의 도래에 대한 우려가 마냥 ‘잘 나가는 MC들에 딴지를 거는’ 기우만은 아니라는 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만큼 잘 하는 MC가 없다”고 말하는 대신, “기대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는 MC를 발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제작진이 필요할 때다. 고인 물에 발전은 없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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