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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린 꿈을 꾼 다음 날엔 기분이 우울합니다. 화장실 갔다가 뒤 안 닦고 나온 것처럼 찜찜하기도 하죠. 우리는 살면서 소중한 것들을 만납니다. 저도 평생 함께하고 싶은 귀한 것들이 있죠. 그 목록엔 친구도 있고, 특별한 날 먹었던 칼국수 한 그릇도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을 때 방향등이 되어 준 책도 있지요. 이런 것들이 모여 저라는 사람을 구성합니다.
서울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에 있는 술집 ‘을지 오비(OB) 베어’도 제겐 소중한 공간입니다. 성마른 여름이 일찍 찾아오면 으레 그 집에 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회포를 풀었죠. 함께 잔을 부딪친 친구는 인생의 소중한 한때를 나눈 동지가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집이 곧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을지로가 ‘힙지로’(힙+을지로)라고 불릴 만큼 근사한 지역이 된 데는 39년간 한 자리를 지킨 이 집의 공이 큽니다.
지난해 9월, 건물주는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나가라며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합니다. 주인 강호신(59)씨는 “임대료를 두 배 더 주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집의 창업주는 강효근(92)씨입니다. 호신씨의 부친이죠. 이 집 벽엔 낡았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연이 오롯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시절, 지하철 근무 노동자들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오전 10시께 이곳에서 맥주와 노가리구이를 먹으며 피곤을 풀었다고 해요. 당시 맥주 한잔 가격은 380원. 호신씨는 “아버지는 손님이 늘어도 가게를 넓히지 말라고 하셨다. 돈보다는 맛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역사를 지키고 싶다.” 그의 목소리엔 결연한 의지가 묻어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도 39년 장기 영업한 이집에겐 별 도움이 안 되더군요.
이번 주 ESC는 사라지면 아쉬운, 낡은 것들을 소개합니다. 기계인쇄 대신 활자판을 만들어 책 출간하는 공방부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제본’ 책을 만드는 곳까지 말입니다. 프로스포츠 전 종목 최초 여성 우승 감독인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도 만났습니다. ‘외유내강’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이더군요.
따뜻한 이번 주말, ‘을지 오비(OB) 베어’에 가 맥주 한잔하시면 어떠실지요.
박미향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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