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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이스볼 트래커]정우영 박동희 류중일…고의보크부터 끝내기보크까지 ‘보크가 뭐길래'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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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이스볼 트래커]정우영 박동희 류중일…고의보크부터 끝내기보크까지 ‘보크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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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잠실구장. 5-5 동점인 8회초 2사 3루. LG의 우완 사이드암 신인 투수 정우영(20)은 5번타자 김헌곤을 상대하고 있었다. 전날까지 프로 데뷔 후 7경기에서 11.1이닝 동안 무실점 행진.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정우영은 그러나 너무나도 허무하게 프로 첫 실점을 하고 말았다. 0B-1S에서 2구째를 던지려고 했지만 그만 보크를 범하고 만 것. 그것도 어이없는 보크였다. 왼발을 감았다 풀면서 스트라이드하는 과정에서 발 뒤꿈치가 땅에 걸려 당황한 나머지 손에서 공을 놓지 못했다. 3루주자가 득점하면서 LG는 5-6으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정우영으로선 프로 데뷔 첫 실점에, 첫 패전까지 기록하는 아픈 밤이었다.

사실 이날 공을 던지지 못해 보크를 범한 것은 정우영만이 아니었다. NC 배재환(24)도 멀리 광주에서 같은 실수를 했다. 1-1 동점으로 진행되던 8회말 2사 1·2루. 이명기를 상대하며 5구째를 던지려던 순간 역시 손에서 공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배재환의 보크에 대해서는 큰 이슈가 없었다. 2사 2·3루에서 7구 승부 끝에 이명기를 1루수 앞 땅볼로 잡아내 무사히 위기를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날 잠실 LG 덕아웃의 류중일 감독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나온 예상치 못한 방식의 보크. 투수가 손에서 공을 놓지 못해 결승점을 헌납하자 산전수전 다 겪은 감독도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류중일 감독의 낯빛에는 28년 전의 그 일이 오버랩됐다. 야구사에 남아 있는 역사적 보크의 순간. 그 당시에도 류중일은 치열했던 승부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보크의 역사와 추억들을 추적해본다.




●1991년 준PO 3차전 박동희의 보크와 류중일


1991년 3전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 무대. 롯데와 삼성은 2차전까지 1승1패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9월 25일 이어진 대구 3차전. 1회초 롯데가 2점을 먼저 뽑자 1회말 삼성 1번타자 류중일은 좌월 솔로홈런으로 포스트시즌 최초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이어 3회에 문제의 장면이 벌어졌다. 1사 3루. 삼성 류중일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롯데 강속구 투수 박동희(고인)는 투구 동작을 이어가다 손이 오그라들며 공을 던지지 못하면서 보크를 범하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1990년 ‘제2의 선동열’이라는 기대 속에 입단한 뒤 이렇다 할 성장을 보여주지 못해 ‘슈퍼 베이비’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은 박동희는 마운드 위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맞은 편 삼성의 3루주자 김종갑은 만세를 부르며 홈으로 달려 들어왔고, 타석의 류중일과 삼성 벤치의 김성근 감독은 쾌재를 불렀다. 2-2 동점.

삼성은 이 기세를 탔다. 6회말 롯데 공필성의 실책과 3번타자 신경식의 적시타로 3-2로 역전에 성공했다. 여기서 이기는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는 상황. 벼랑 끝에 몰린 롯데는 물러서지 않았다. 롯데 강병철 감독은 8회말 대타 조성옥(고인) 카드를 꺼내들었고 조성옥은 삼성 재일교포 잠수함 투수 김성길을 상대로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극적인 동점 솔로홈런을 날렸다.

승부는 김성길과 박동희가 연장 13회까지 던지는 혈투 끝에 결국 3-3 무승부로 끝났다. 3전2선승제로 예정돼 있던 준PO가 1승1무1패로 사상 최초로 4차전 승부로 넘어가게 됐다.


세찬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진행된 4차전에서 류중일은 사상 최초이자 아직도 깨지지 않는 포스트시즌 4연속경기 홈런을 뽑아내며 삼성이 플레이오프 티켓을 잡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1991년 한 시즌 내내 5개의 홈런을 뽑아냈던 류중일은 그해 가을 괴력을 발휘했다.

가정이지만, 박동희의 보크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롯데가 3차전 승리를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올라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28년의 세월이 흘렀다. 손에서 공이 빠지지 않아 보크를 범한 정우영의 모습을 보고 류중일 감독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을까. 박동희만큼이나 정우영 역시 팬들에게 진한 보크의 추억을 남겼다.





●장명부부터 문경찬까지, 끝내기 보크의 추억


야구 역사가 깊어지면서 수없이 많은 보크 사례가 나오고 있다. 그 중 기록과 기억에 남을 만한 보크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선 끝내기 보크의 역사다.

KIA 투수 문경찬은 올 시즌 개막 후 3월 26일 광주 한화전에서 7-13으로 크게 뒤진 9회말 2사후 상대가 마무리투수 정우람을 투입하자 타자 황대인 대타로 타석에 나서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끝내기 보크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7월 27일 대구 삼성전. KIA가 11회초 2점을 뽑으며 10-8로 앞설 때만 해도 KIA의 승리 분위기였다. 그러나 11회말 삼성이 추격을 시작해 9-10으로 따라붙고 1사 만루 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박해민이 인필드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났다. 이어 구자욱 타석 때 문경찬의 제구가 흔들리면서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오며 밀어내기로 10-10 동점. 계속된 2사 만루서 문경찬은 이원석 타석 때 두 손을 모으며 투구동작에 들어가는 듯하다 갑자기 중심발(오른발)을 빼는 바람에 보크를 선언 당했다. 끝내기 보크였다. 끝내기 보크는 KBO리그 통산 5번째. 1996년 9월 4일 잠실 현대-LG전에서 현대 정명원이 역대 4번째로 기록한 뒤 22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었다.




<역대 끝내기 보크 사례>


①1986년 7월 26일 잠실구장 빙그레 장명부(MBC전)

②1989년 9월 12일 대전구장 해태 이강철(빙그레전)

③1993년 5월 23일 잠실구장 쌍방울 강길용(OB전)

④1996년 9월 4일 잠실구장 현대 정명원(LG전)

⑤2018년 7월 27일 대구구장 KIA 문경찬(삼성전)

사상 최초의 끝내기 보크는 장명부가 보유하고 있다. 그것도 ‘고의 보크’였다. 1983년 삼미에서 30승을 올렸던 ‘너구리’는 급격히 내리막길을 타면서 1986년 신생팀 빙그레에 둥지를 틀었다. 7월 26일 잠실 MBC전. 6-6 동점인 9회말 무사 1·2루에서 2루수와 짜고 속임수(은닉구)로 2루주자를 잡았다. 장명부는 공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세트포지션에 들어갔고, 실제 공을 갖고 있던 2루수가 리드를 하던 2루 주자를 태그했다. 그러나 야구규칙에는 ‘투수가 공을 갖지 않고 투수판을 밟거나 걸쳐 섰을 때’ 보크로 규정하고 있다. 보크가 선언되면서 주자가 2·3루가 되자, 장명부는 고의4구로 만루를 만든 뒤 김재박 타석 때 고의 보크를 저지르며 팀의 패배를 불렀다. 심판에게 항의하듯 왼발을 홈으로 향한 채 일부러 3루에 견제구를 던졌다. 당시 빙그레는 14연패 중이었다.

2011년 잠실구장에서는 보크가 돼야할 상황이 오심으로 끝내기 승부가 되는 일도 있었다. 6월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LG전. 한화가 5-6으로 1점차 뒤진 상황에서 2사 3루 마지막 찬스를 이어갔다. 이때 한화의 3루 대주자 정원석은 LG 투수 임찬규가 자신을 의식하고 있지 않자 틈을 노려 단독 홈스틸을 감행했다. 임찬규는 당황한 나머지 와인드업 자세에서 갑자기 점프를 하며 중심발을 투수판에서 풀고 홈으로 던졌고(송구), 3루주자 정원석이 포수 조인성에게 태그아웃됐다. 심판들 중 누구도 임찬규의 보크 동작을 보지 못해 한화가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한대화 감독이 항의했지만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결국 KBO는 해당 경기의 심판에 대해 9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KBO 보크 기록들

한 시즌 팀 최다 보크 기록은 12개. 1991년 쌍방울과 1999년 두산이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 시즌 내내 팀투수가 한 번도 보크를 범하지 않은 적도 8차례나 있다. 해태는 1984년 사상 최초로 보크 0개의 역사를 쓴 뒤 1998년에도 무보크 진기록을 만들었다. 한화는 빙그레 시절이던 1992년과 1996년 보크가 없었다. 두산은 2001년, 현대는 2006년, 넥센은 2012년, 롯데는 2013년 마지막으로 무보크 시즌을 만들었다.

1경기 팀 최다 보크는 KBO리그 원년 개막전으로 기록돼 있다. 1982년 3월 27일 MBC가 2개, 삼성이 1개를 범했다. MBC 선발투수 이길환(고인)은 2회에 2개의 보크를 저질러 역대 1경기와 1이닝 최다보크 기록 최초 보유자로 등록돼 있다. 역대 1경기 2보크는 23명, 1이닝 2보크는 12차례 나왔다.

한 시즌 개인 최다 보크는 4개로, 1982년 삼미 박경호를 시작으로 1989년 태평양 정명원, 1991년 쌍방울 강길용, 1993년 삼성 박충식, 1999년 한화 한용덕, 2000년 두산 파머, 2012년 삼성 탈보트, 2013년 두산 진야곱, 2015년 한화 탈보트, 2016년 삼성 폴란데까지 10차례 발생했다. 그 중 탈보트는 삼성 시절과 한화 시절에 2차례나 포함됐다.

●보크가 뭐길래

보크(balk). 투수의 반칙 투구행위다. 베이스에 주자가 있을 때에만 성립하는 규칙이다. 이때 모든 주자는 한 베이스씩 진루한다. 보크 관련 규정만 크게 13가지 항목을 정해놓았을 정도로 다양하다. 세부항목까지 더해지면 더 복잡하다. 간단히 설명하면 ‘투수가 상대 타자나 주자를 속이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보면 된다.

야구규칙에 정의된 보크의 종류들을 살펴보자.

▲(1) 투수판에 중심발(축족)을 대고 있는 투수가 투구와 관련된 동작을 일으키다가 투구를 중지하였을 때

▲(2)투수판에 중심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1루 또는 3루에 송구하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 송구하지 않았을 때(주자가 있는 2루에는 그 베이스 쪽으로 똑바로 발을 내디디면 던지는 시늉만 해도 보크는 아니지만 1루와 3루, 타자에게는 던지는 시늉에 그치면 보크다).

▲(3)투수판을 딛고 있는 투수가 베이스에 송구하기 전에 발을 똑바로 그 베이스 쪽으로 내딛지 않았을 때

▲(4)투수판에 중심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주자가 없는 베이스에 송구하거나 송구하는 시늉을 했을 때

▲(5)투수가 반칙투구를 했을 때→타자가 타석 안에서 충분한 자세를 갖추기 전에 투구(퀵피치)하면 보크다. 주자가 없으면 볼이다.

▲(6)투수가 타자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투구했을 때

▲(7)투수가 투수판을 밟지 않고 투구와 관련된 동작을 취했을 때

▲(8)투수가 불필요하게 경기를 지연했을 때

▲(9)투수가 공을 갖지 않고 투수판을 밟거나 걸쳐 섰을 때, 또는 투수판에서 떨어져 투구에 관련된 시늉을 했을 때

▲(10)투수가 정규의 투구자세를 취한 후 실제로 투구하거나 베이스에 송구하지 않고 공에서 한쪽 손을 떼었을 때

▲(11)투수판에 중심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고의 여부에 관계없이 공을 떨어뜨렸을 때

▲(12)고의4구를 진행 중인 투수가 포수석 밖에 나가 있는 포수에게 투구했을 때(자동 고의4구 도입으로 앞으로 이런 장면은 보기 어려워졌다).

▲(13)투수가 세트포지션으로 투구할 때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투구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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