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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자들, 정장은 10만원짜리… 신발은 100만원짜리

조선비즈 이성훈 기자;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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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자들, 정장은 10만원짜리… 신발은 100만원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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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 남성관. 구찌맨즈·프라다옴므·살바토레페라가모옴므 등 명품 매장엔 퇴근길 직장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중년층뿐 아니라 청바지와 점퍼 차림의 20·30대 젊은 직장인들도 많다. 명품 로고가 박힌 스니커즈(단화)와 가방 등에 눈길을 준다. 반면 같은 층 남성 정장 매장은 한산하다. 봄 정기 세일을 하루 앞둔 28일엔 세일 가격에 옷을 판매했지만, 찾는 이들이 드물었다. 한 신사복 매장 직원은 "4~5년 전만 해도 1~2월 입사 시즌엔 정장을 2~3벌씩 한 번에 사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세일을 해도 찾는 사람이 드물다"며 "명품 가방이나 신발을 입사 선물로 주고받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자율 복장 도입과 소비 양극화가 남성 패션 시장의 명암을 갈라놓고 있다. '남성 직장인들의 교복'으로 불리던 정장 시장이 고전하는 사이, 명품들이 남성 전문 매장을 경쟁적으로 내고 있다. 정장을 사지 않는 남성들이 명품 시계와 신발, 가방 등 액세서리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에서 남성 명품의 매출은 전년 대비 22% 늘었지만, 남성 정장은 3.2% 성장에 그쳤다.

명품 남성 매장 늘고, 정장 브랜드 줄고

백화점들은 최근 경쟁적으로 남성을 겨냥한 명품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9일 부산 본점 지하 1층에 루이비통 남성 전문 매장을 연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여는 첫 루이비통 남성 매장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압구정 본점에 전혀 다른 콘셉트의 남성 편집 매장 두 곳을 한꺼번에 열었다. 무역센터점과 판교점에선 남성 전문관을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해 서울 본점과 강남점에 구찌맨과 디올옴므, 발렌시아가맨 등을 개점했다. 한화갤러리아는 루이비통·구찌에 이어 에뜨로·이세이미야케·디올까지 남성 매장을 분리해 운영 중이다.

남성 쇼핑족들의 지갑이 명품 시장을 향해 활짝 열리고 있다. 큰 사진은 버버리 모델이 한껏 차려입은 모습. 구찌, 프라다의 가방과 루이비통의 신발(왼쪽 위부터) 등이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롯데백화점

남성 쇼핑족들의 지갑이 명품 시장을 향해 활짝 열리고 있다. 큰 사진은 버버리 모델이 한껏 차려입은 모습. 구찌, 프라다의 가방과 루이비통의 신발(왼쪽 위부터) 등이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롯데백화점



반면 '남성 정장' 시장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16년 남성 정장 브랜드 '엠비오' 사업을 22년 만에 접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이탈리아 남성복 '빨질레리' 라이선스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LF의 남성복 브랜드 '일꼬르소'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철수하고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전환했다. 2017년에는 1세대 남성복 '타운젠트'를 접었다. 코오롱FnC도 '지오투'의 정장 판매를 접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11년 6조8668억원 규모였던 국내 남성복 시장은 지난해 4조995억원으로 40.3% 감소했다. 전체 의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19.1%에서 지난해 9.3%로 쪼그라들었다.

명품 시계·신발에 눈길





남성 정장 매출이 줄고 명품 시장이 커진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의 자율 복장 확산이다. 최근엔 보수적인 금융권도 자율 복장을 시행 중이다. 삼성패션연구소는 1998년부터 매년 상·하반기 서울 시청·삼성역·여의도에서 직장인 옷차림을 조사했다. 2007년엔 정장과 캐주얼 비중이 7대3이었지만, 지난해엔 4대6으로 뒤집어졌다. 상당수는 정장 구매비를 아낀 돈으로 명품을 구매한다. 3년 차 직장인 김지석(32)씨는 "면바지에 개성 있는 명품 신발을 신는 것이 유행"이라고 했다.

불황으로 인한 소비 양극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한 벌에 50만원 안팎 하는 중간 가격 명품을 구매하는 대신 젊은 직장인들은 10만~20만원대의 저가 정장을 선호한다. 2년 차 직장인 김진호(28)씨는 "온라인몰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판매하는 2만9900원짜리 정장 바지를 샀다"며 "정장도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산다"고 말했다.

남성의 명품 구매 증가세는 여성을 앞서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 지난해 전체 명품 매출액은 전년 대비 18.5% 늘었지만, 남성 명품은 22% 증가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남성 명품 중에선 시계와 신발, 가방, 지갑이 특히 많이 팔린다"며 "정장보다 명품 액세서리로 멋을 연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명품의 가격은 신발 100만~150만원, 가방 200만~300만원 선이다. 패션 칼럼니스트 황의건씨는 "예전엔 돈이 많은 중년 남성들이 명품을 주로 소비했지만, 최근엔 유행에 민감한 젊은 남성들까지 명품 소비에 가세했다"고 말했다.




이성훈 기자(inout@chosun.com);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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