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노총·금속노조 법률원 등이 5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를 철회하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조건 없이 비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요구를 하기 위해 6일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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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초고속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 세계가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처럼 노사정 전반에서 미래지향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민주노총은 6일 총파업을 감행하는 등 시대와 동떨어진 나 홀로 행보를 보이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5일 노동계에 따르면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의 '일의 미래 세계위원회'를 필두로 네덜란드(사회경제위원회 산하 일의 미래 작업그룹)와 덴마크(산업 4.0 위원회), 독일(노동 4.0)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4차 산업혁명 진전에 따른 고용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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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최근 들어 이 같은 '4차 노동혁명' 논의를 본격화해 경사노위 산하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는 이날 전병유 위원장(한신대 교수) 주재 기자회견을 열고 디지털 전환에 대한 노사정의 기본 인식과 정책에 관한 기본합의문을 발표했다. 디지털 전환에 대비한 다양한 노사정 협업 모델 구축과 평생직업 교육체계 혁신, 고용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자리 이동 지원, AI와 빅데이터 등 지능화 신산업 육성과 스마트공장의 효과적 도입을 위한 융합적 공동조사·연구 체계 마련 등을 골자로 한다. 산업 간 융합과 플랫폼 경제 같은 신산업 출현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완충하는 장치를 미리 마련해 현대판 러다이트운동(1811∼1817년 영국 중북부 직물공업지대에서 일어났던 기계 파괴운동)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ILO도 노동에 영향을 주는 최종 결정은 인간이 내리는 인간주도(human-in-command) 접근법을 채택하는 내용을 포함한 '일의 미래 보고서'를 지난 1월 22일 발간했다.
정진성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도 보고서 발간에 참여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과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ILO 보고서에 대한 노사정 포럼을 개최한다. ILO는 오는 6월 열리는 설립 100주년 총회에서 이 보고서 내용을 기반으로 100주년 선언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한국노총도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화가 산업 현장에 미치는 영향과 노동계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월 내부회의를 시작으로 산업별 영향 파악을 본격화했다. 한국노총은 2017년 독일을 방문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독일 노조와 정부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총고용 감소와 불안정한 노동이 증가할 우려가 있어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6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을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총파업을 감행한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체계 이원화를 '노동법 개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상생형 일자리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 같은 정부 산업정책 철회도 총파업의 명분이다. 총파업은 일시적으로 업무를 중단하는 형태로 이뤄지며 파업 참가 인원은 많게는 4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민주노총 주축인 금속노조 중에서도 핵심 조직인 현대·기아차지부가 사실상 파업을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반쪽짜리 투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지난 4일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이번 총파업을 '확대간부파업'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기아차지부 역시 확대간부파업을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확대간부파업은 노조 전임자와 대의원 등 간부들만 참여하는 것으로, 집회는 해도 생산라인의 중단을 수반하지는 않아 사실상 파업으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파업을 강행하는 민주노총에 대해 노동조합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전제로 한 노동시장 유연화, 일명 '안정유연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노사정의 각종 노동정책뿐 아니라 외교·안보, 규제개혁, 내년 총선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이슈에 '사회 대변혁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파의 목소리에 묻히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사정 갈등이 점차 진정세를 보이면서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정책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성희 고용부 노동시장정책관은 "최근 이슈가 된 플랫폼 노동에 대해서는 지난해 말 종사자 규모와 현재 근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맡기는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에 앞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상반기 중 용역 결과가 나오면 이를 기반으로 대책과 추가적인 정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움직인 대표적인 나라는 스웨덴이다. 2017년 스웨덴 정부는 자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플랫폼 노동자 현황과 노동 환경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노동 가능 연령에 해당하는 인구 중 4%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구직을 한 경험이 있었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송지원 스웨덴 스톡홀롬 경제대학교 박사는 "플랫폼 노동자 중 70%는 학생 대출 및 보조금, 실업급여 등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며 "스웨덴 정부는 새로운 노동형태가 등장하자 이를 스웨덴 경제에 안착시키기 위해 사회적 파트너들과 정책 제안서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활발히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석우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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