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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선을 넘는 녀석들2' 김영옥, 광복과 전쟁… 그리고 2000년 이산가족 상봉까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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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사진=MBC 선을 넘는 녀석들2 캡처


[헤럴드POP=장민혜 기자]배우 김영옥이 가슴 아픈 가족사를 밝혔다.

23일 오후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2: 한반도 편'(이하 선을 넘는 녀석들2)에서는 교동도에서 멤버들과 만난 김영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교동도로 간 설민석, 전현무, 다니엘, 유병재의 모습이 공개됐다. 교동도 대룡시장서 멤버들은 호떡을 맛봤다. 전현무는 "양귀비도 호떡을 좋아했다고 하더라"라고 입을 열었다. 전현무는 "제가 '수요미식회' 출신 아니냐. 양귀비도 호떡을 좋아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설민석은 "제가 그 프로그램 좋아한다. 그 프로그램에서 보던 분이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으니 신기하다"라고 전했다.

유병재는 "회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어느 장소로 가서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네 사람은 약속 장소로 갔다. 네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건 배우 김영옥이었다. 김영옥은 "여기가 실향민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다. 옛날 쌍화차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전현무는 "현재 활동하는 여배우 중에 최고령이라고 들었다"라고 입을 열었다. 김영옥은 "현재 활동하는 여배우 중에 최고령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강연을 통해 설민석을 알고 있다. 얼굴이 작네"라고 말했다. 김영옥은 전현무를 보며 "처음엔 왜 이리 인기가 많은 줄 몰랐는데 보다 보니 사회를 잘 보더라"라고 칭찬했다.

김영옥은 "광복 당시 8세였다. 그때 해방이 됐지. 일제 치하에서 기억 난다. 여자들도 위안부로 간다는 걸 알고 간 게 아니지 않나. 우리가 못 살고 낙후돼 있으니까 일본에서 간호사, 선생님 시켜준다 꼬셔서 데려간 거다. 그런 거에 걸려든 사람이 많다. 위안부로 끌려간다고 알았으면 누가 끌려갔겠냐. 우린 그런 세월을 살았다"라고 말했다.

김영옥은 "어려서 본 걸 없지만 사람들이 소리 치고, 라디오에서 일제 항복 선언이 나오던 게 기억 난다. 나가니까 서대문 사이에 다들 만세 부르고 왔다 갔다 하고 있더라. 해방됐다고 하고"라고 회상했다.

김영옥은 "해방된 지 5년 만에 전쟁이 나지 않았나. 그때가 내 나이 열네 살이었다. 우리집은 피란 가지 않았다. 인민군도 봤다. 이틀 사흘 안에 꼴보기 흉한 걸 봐서 밥도 못 먹고 그랬다. 그때 21살, 18살 오빠가 있었다. 인민군이라는 이름에 잡혀가기 적절한 나이였다. 징집을 피하기 위해 천장에 숨어 지냈다. 그랬더니 두 오빠가 지켰다. 큰 오빠가 연대 영문과 2학년이어는데 수재였다. 하루는 오빠 친구가 오빠를 부르러 왔다. 우리 엄마가 없다고 하니까 오빠 친구는 '징집 당하는데 지금 안 가면 제적당한다'라고 전하더라. 오빠는 바보 같이 그 상태로 뛰어 나와서 학교로 갔다. 그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엄마는 맨날 울었다. 일주일 만에 소식이 와서 어머니와 작은 오빠만 보러 갔다. 얼굴도 담벼락이 높아서 뛰어 올라가서 봤다더라.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라고 털어놨다.

김영옥은 "국군이 입성한다니까 인민 의용군에 있는 큰오빠 걱정이 되더라. 우리 엄마는 '전쟁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겠지' 하더라. 저 말이 맞길 바랐다. 국군 들어오고 작은 오빠는 국군으로 나갔다. '태극기 휘날리며' 집안이 된 거다. 국군인 오빠의 부상 소식이 들려왔다. 둘째 오빠는 살아서 돌아왔다. 여름에 오빠 등목을 시켜주며 엉엉 울더라. 나도 돌아서서 울었다. 작은 오빠는 집안 기둥 노릇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라고 가족사를 밝혔다.

김영옥은 "2000년 이산 가족 상봉 때 첫째 오빠를 다시 만나게 됐다. 21살 꽃다운 나이 오빠는 미제 윗도리에 멋있고 든든했는데 그 얼굴이 아니더라. 자기는 성인으로 군에 갔지만, 우린 애들이었지 않나. 다들 노인이 됐지. 2000년에 만나서 실제로 만난 건 1~2시간이었다. 부모님은 큰아들 소식을 못 들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살았다. 달리 살았던 게 아프다. 묘하더라. 처음에는 원망과 반가움이었는데 이튿날 되니 안타깝더라. 버스로 떠날 때 많이 슬펐다. 그러고 끝이지"라고 털어놨다.

김영옥은 "편지 하나 왕래할 수 없고 기가 막힌 세상에 전화 한 통 할 수 없이 만들어 놔.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식하고 형제는 조금 다르다.우리는 오빠로서 그리워했지만 어머니 마음 같지는 않은 거 같다. 우리 어머니는 오빠가 그렇게 되고 불공을 매일 드렸다. 나한테도 '너도 외워'라고 하더라. 늘 마음속에 돌아가실 때까지 그러셨다. 작은 오빠는 '큰오빠 살았다고 할까'라고 하더라. 그럴 정도로 만감이 교차했다"라고 전했다. 설민석은 김영옥의 이야기에 눈물을 보였다. 전현무는 "살아있는 이야기는 처음 배운다. 우리가 전쟁을 배울 때 주입식으로 외우기에만 급급했다. 이산가족이 생기는 과정을 생생하게 처음 듣는다. 너무 어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영옥은 "시골은 가족 모두가 몰살 당한 경우도 있고 서울에서도 몇 집 걸러 하나씩은 잃어버린 가족이 많은 집이다. 서울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누구라도 당한 집이 너무 많다.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라고 전했다.

전현무는 "들으면 들을수록 전쟁이 왜 일어나지 말아야 하며, 어리석은 행위인지 절감할 수 있게 되는 거 같다. 뭐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전쟁을 했으며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거 같다"라고 황당해했다.다니엘은 "선생님 말씀 듣고 생각 난 게 동독과 서독 분단 당시 60세 이상은 동독에서 서독으로 보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영옥은 "전쟁은 나지 않았으면 핟나. 전쟁이 나서 통일하면 자멸 행위라고 본다. 어떻게 통일해야 하는지 잘들 해 봐라. 젊은이들이 해야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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