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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인터뷰] 이장희, 사라졌던 노병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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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포크계의 거장 이장희가 3월 LG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선보인다. 서울에서 팬들을 만나는 것은 무려 6년 만이다. 사진|스타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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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짧고 굵게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졌던 노병이 돌아왔다. 지금은 '울릉천국' 전도사로 불리지만 그에 앞서 한국 대중음악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살아있는 전설 이장희(72)다.

이장희는 한국 포크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번안곡 위주의 활동이 주였던 7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싱어송라이터였다.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의 자작곡을 발표하며 번안곡이 주를 이루던 당대 포크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그는, 70년대 젊은이의 마음을 흔든 시대의 아이콘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공식 활동 기간은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단 4년에 불과했다. 7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면서였다. 말 그대로 '연루'였기에, 결과적으로 그는 대마초에서 자유로웠지만 당시 시대 분위기상 음악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DJ, 프로듀서로 활발히 활동한 천생 '음악가' 이장희는 그렇게 음악을 접고 홀연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이장희는 미주 한인 최초의 라디오방송인 LA 라디오코리아대표 등 다양한 사업을 성공시키며 미국 내 한인 사회에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잡았다.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우연히 찾은 울릉도에 매료돼 자신의 사업을 정리하고 2004년부터 울릉도에 정착해 지금까지 15년째 생활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방송가의 무수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이장희는 이따금씩 들어오는 지인 요청에 '하는 수 없이' 출연하는 것 외엔 이렇다 할 노출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자신조차 완벽하게 떠났다고 생각했던 음악은,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 있었고 다시 그를 대중 곁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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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민' 이장희가 다시 기타를 잡았다. 이번에는 '울릉천국'에서 함께 하는 음악지기 강근식, 조원익과 함께다. 사진|스타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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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다시 기타를 잡은 이장희는 오는 3월 서울에서 단독 콘서트 '나 그대에게'를 열고 팬들을 만난다. 서울에서 선보이는 공연은 무려 6년 만. 공연을 앞두고 서울 정동 달개비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를 만난 이장희는 "다시 기타를 잡고 나서 비로소 '아 내가 정말 음악을 좋아했구나' 느끼게 됐다"며 "80세까지 노래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이야기했다.

본격적으로 다시 기타를 잡게 된 계기는 지난해 5월 울릉도에 '울릉천국 아트센터'를 개관하면서다. 그는 경상북도의 제안으로 울릉군 자신의 집 앞뜰인 울릉천국 부지 일부를 기증, 아트센터를 건립하는 데 힘을 보탰다. 개관 기념 상설공연도 성황리에 마쳤다.

"생각보다 공연이 잘 됐어요. 극장 운영이 힘든 일인데 관광객들이 오셔서 하게 됐죠. 5월 개관 공연에 이어 7월부터 한달 반 공연을 했습니다. 울릉도에 오는 분들 대부분은 2박3일 일정으로 오세요. 오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사는 곳이 울릉도 번화가에서 1시간은 가야 해요. 버스 하나 밖에 없는데, 나 좋다고 와주시는 분들이 참. 고맙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찾아와줘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의 음악 여정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울릉도를 넘어 이제는 장소를 '전국구'로 넓힌다. 3월 8, 9일 이틀간 LG아트센터를 시작으로 광주, 부산, 대구에서도 '나 그대에게' 콘서트를 진행한다.

울릉도 공연을 함께 한 오랜 음악 친구인 기타리스트 강근식, 베이시스트 조원익은 이번 '나 그대에게' 단독 콘서트에서도 함께 합을 맞춘다. 이들은 우리나라 1세대 세션인 동방의 빛 멤버이기도 하다. 반백년에 걸친 오랜 시간 함께 하는 '지우'에 대해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음악 하는 친구들이 왜 좋냐면, 음악은 대화가 필요 없는 정서의 교류인 것 같아요. 다른 걸로 표현하지 못하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죠. 또 이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좋았던 것은 셋 다 술을 좋아하거든요 하하. 끝나고 나면 석양에 술 한 잔 먹고 하면서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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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대중음악계를 떠난 고희의 이장희. 솔잎을 먹는 송충이처럼, 4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는 80세까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사진 |스타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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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근식은 이장희와의 오랜 인연을 소개하며 "스무살 팔팔할 때 음악 이야기로 밤을 새고, LP 판 밤새 들으며 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대마초 파동 이후 서로 떨어져 다른 일도 하다가 다시 뭉쳐 음악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원익 역시 "이장희와는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사이다. 이후 군대 다녀와 이장희가 '그건 너' 음반 만들 때 동방의 빛을 같이 시작하게 됐다. 이후 각자 생활하다 10년 전 이장희의 권유로 울릉도에 갔다가 자연이 좋아 울릉도에 계속 살고 다시 음악도 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타이틀은 이장희의 히트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에서 떠온 '나 그대에게'다. 그는 "때로는 너무 단조롭지 않나 싶기도 한데, 가장 많이 사랑받은 곡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시고,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노래한 곡인데 나이 들수록 그 곡에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이어 이어 "이번 공연에서 많은 분들이 오시면 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공연 타이틀로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두운 시대의 청춘을 아름다운 노랫말로 승화시켜 시대의 아픔을 위로했던 이장희. 이제는 고희(古稀)를 넘어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지만, 그의 가슴은 여전히 뛰고 있다.

"예전에 노래할 땐 제가 다 작사, 작곡했어요. 한 시대를 이끌고 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역이던 시절도 있었고. 나름 한국의 첫 싱어송라이터였죠. 나름 그런 재능을 가졌었는데, 지금 하고 싶은 건 인생의 황혼에 선 마음을 노래하고 싶어요. 황혼이라는 게 어떤 느낌이냐면, 붉게 타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하면서도 쓸쓸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아주 복잡다단한 감정이죠. 이런 마음을 노래하고 싶어요. 노래 만드는 게 내 주특기였는데, 왜 못하나 싶기도 하네요 하하."

반가운 소식은, 그렇게 오랜 쉼표를 뒤로 하고 다시 시작된 이장희의 음악 여정에 마침표는 당분간 없을 전망이란 것이다.

"처음 사람들에게 각광 받았을 때 스스로 어줍잖다고 느꼈어요. 오랜 시간 노래 안 하다 콘서트 하게 됐는데 지금은 노래가 좋아졌어요. 아 내가 노래를 정말 좋아했구나 싶은 거죠. 지금은 더 나이 먹어서도, 80세까지도 계속 노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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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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