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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월드컵? 베트남 아직 톱레벨 아냐" 돌아온 박항서는 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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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박항서 감독이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인천공항 | 김현기기자


[인천공항=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반응이 좋네요.”

대한민국이 잠들고 있을 29일 새벽 4시30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취재진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2005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귀국 이후 이 새벽 베트남에서 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웃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입국장에 들어선 여행객들도 “누가 들어오나”라고 궁금증을 표시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오~” 하는 탄성 속에서 카메라 앞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박항서 매직’으로 한국과 베트남 양국을 모두 빛낸 인물,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었다. 올해 첫 대회인 UAE 아시안컵에서 예상밖 ‘8강 기적’을 이룬 박 감독은 아시안컵 이후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사흘 정도 머무른 뒤 설날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날 귀국했다. “이른 시간에 고맙다”며 기자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눈 박 감독은 여유 있는 미소와 차분한 답변으로 국민들께 인사했다.

매직이 신화와 기적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 U-23 아시아선수권 준우승,아시안게임 4강,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을 일궈냈던 박 감독은 아시아 최고 권위 대회인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8강에 올라 베트남 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일본과 준준결승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정신으로 0-1 석패, 지는 순간에서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떠났다. 사실 박 감독이나 베트남이나 이번 대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시아 강호들과 격돌이어서 조별리그 통과도 어려웠고, 스즈키컵 강행군으로 베트남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행운이 많이 따랐다”며 웃은 뒤 “새해 들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시안컵도 생각했던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8강까지 갔다. 베트남 내에서 반응이 좋다. 올해도 시작은 좋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아시안컵은 준비 기간도 짧았고, 또 막상 초반 2패를 당하니까 베트남에서 비판 여론이 많았다. 이기니까 조용해졌다. 언론은 다 그런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웃었다.

베트남은 첫 경기에서 지난 대회 4강에 올랐던 이라크에 2-3으로 역전패했다. 이란전은 0-2로 완패했다. 이후 예멘을 2-0으로 누르고 경고가 두 장 적어 16강 막차를 타더니 16강전에서 중동의 복병 요르단을 승부차기 끝에 누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박 감독은 “스즈키컵에 올인했고 그러다보니 선수들 동기부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어떤 메시지를 던져도 반응이 느렸다”며 “예멘을 이기고 극적으로 16강에 가면서 분위기가 살아났다. 다행이다”고 이번 대회를 전체적으로 돌아봤다.

모처럼 푹 쉬고 내달 중순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박 감독은 3월 두 대회를 준비한다. 하나는 2020년 U-23 아시아선수권 예선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과 수도 하노이에서 벌이는 AFF-EAFF 챔피언스트로피다. 우선 U-23 아시아선수권 예선에선 인도네시아,브루나이보다 성적이 좋아야 도쿄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을 겸해 태국에서 열리는 내년 1월 U-23 아시아선수권 본선에 갈 수 있다. 한국전은 A매치 평가전 성격이지만 허투루 치를 수 없다. 박 감독은 “응우옌 꽝하이 등 7~8명이 U-23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 같이 있어 복잡하다”며 “한국에서 손흥민 등 해외파가 오겠나. 안 온다. 그래도 베트남에선 한국이나 일본 이란과 같은 팀과 친선 경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에 쓰지 않았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나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시기는 유동적이지만 박 감독은 국가대표팀에 전념하고, U-23 대표팀은 내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박 감독은 “두 대표팀을 함께하다보니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다. 선택과 집중 차원”이라고 했다. 이미 복수의 국내 지도자들이 베트남 U-23 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올라 있다.

아시안컵 성적까지 나면서 베트남에선 박 감독에게 또 다른 기대를 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에도 한 번 가보자는 것이다. 오는 9월부터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이 열린다. 그러나 박 감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월드컵 본선행까지 노리기엔 아직 베트남 축구가 더 발전해야 한다. 박 감독은 “월드컵 물어보는 베트남 기자들에게 ‘너는 준비됐나’라고 반문한다”며 “이번에 8강 갔다고 우리가 아시아 톱레벨에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베트남 정치권 인사들도 한 번씩 ‘모시고’ 싶어하는 VIP다. 박 감독은 그런 위상을 베트남 축구 발전에 할애하고 있다. 그는 “고위 관게자나 언론을 통해 ‘우리가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10~15살 어린 선수들에게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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