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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닭·쌀 답지했다…조리장 없는 박항서호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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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조리장 없이 아시안컵 출전

베트남 국민들 선수단에 음식 보내

박항서 향한 베트남식 애정표현

인생처럼 드라마틱한 16강행

한국기자들 친동생처럼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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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민들이 조리장 없이 아시안컵 치르는 베트남축구대표팀에 보내준 음식들. [VTV 쾅피엣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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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쌀, 레몬. 베트남에서 아랍에미리트로 음식이 답지했다. 조리장 없이 아시안컵을 치르는 박항서호를 향해서다.

박항서(60)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축구대표팀은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요르단과 2019 아시안컵 16강전을 치른다.

19일 기자회견 도중 베트남 기자는 박 감독에게 "베트남 국민들이 선수단에게 음식을 보내줬는데 기분이 어떤가"라고 물었다. 알고보니 베트남은 조리장 없이 대회에 참가했고, 국민들이 행여 선수들 입에 중동음식이 맞지 않을까 우려해 현지음식을 보낸 것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은 조리장 2명을 데려온 반면,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은 베트남은 조리장과 동행하지 못했다. 베트남은 공무원 월급이 약 30만원 정도고, 지난해 베트남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2385달러(약 264만원)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들이 박항서호를 사랑하는 마음은 돈으로 책정할 수 없었다. 베트남 VTV 쾅피엣 기자는 "베트남축구대표팀에 요리사가 없어 팬들이 음식을 보내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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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요르단과 16강 경기를 하루 앞둔 19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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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우리팀이 중동에 오랫동안 나와있는데, 베트남 국민들이 음식까지 신경써주서 감사하다. 이 음식이 당장 승패로 직결되지 않겠지만, 우리 선수들이 식사하는데 도움이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 베트남 국민들의 사랑이 동기부여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아시아 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 당시 카퍼레이드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5시간 넘게 도로 위에 있다보니 허기가 진 박 감독은 "배가 고프네"라고 말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러자 베트남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팬들이 버스 위로 치킨, 햄버거, 캔맥주, 옥수수를 던졌다. 박 감독은 "감기몸살 때문에 기진맥진했는데,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나에 대한 베트남 애정 표현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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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1차전 이라크와 경기에서 2-3으로 역전패를 당한 뒤 아쉬움에 물병을 걷어차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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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에게 2019 아시안컵은 자신의 인생 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중동의 강호' 이라크에 2-3 역전패를 당한 뒤 물병을 걷어차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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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과 케이로스 이란 감독이 12일 아시안컵 2차전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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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에서 아시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가장 높은 29위 이란에 0-2로 졌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도발했지만, 박 감독은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신경전에 휘말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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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1차전 이라크와 경기에서 응우옌 콩 푸엉의 두번째 골에 환호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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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지난 17일 3차전에서 예멘을 2-0으로 꺾고 조3위(1승2패)를 기록했다. 이번대회는 조3위 중 상위 4팀에 16강행 티켓이 주어진다.

E조 레바논이 지난 18일 북한을 4-1로 대파하면서, 베트남은 레바논과 승점, 골득실, 다득점까지 동률을 이뤘다. 옐로카드가 2개 더 적어 페어플레이 점수로 16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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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선수들이 지난 18일 레바논-북한전을 숙소 복도에서 지켜본 뒤 서로를 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베트남은 이날 극적으로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베트남 선수 소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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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사인 DJ매니지먼트의 이동준 대표는 "감독님과 선수들이 숙소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 레바논-북한전을 지켜봤다. 16강행이 확정된 뒤 선수들은 끌어안고 환호했고, 감독님은 조용히 방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3차전을 마친 뒤 알 아인에서 베트남 선수들을 한국식당에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북한식당밖에 없어서 결국 시내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베트남은 지난해 12월 '동남아시아 월드컵' 스즈키컵에서 우승했지만, 아시아 최강 24개국이 모인 아시안컵에서 16강에 오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도전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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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감독이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요르단과 2019 아시안컵 16강을 하루 앞둔 19일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한국기자들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두바이=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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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기간 중 박 감독은 한국취재진을 친한동생들처럼 챙겼다. 지난 8일 이라크전 후 한국기자들에게 질문기회가 돌아가지 않자, 박 감독이 조직위 직원에게 질문 기회를 주라고 이야기했다.

지난 18일 두바이 훈련장에서 한국 취재진을 보더니 "다른 나라 경기에 뭐 이리 관심이 많나. 허허. 인사만 하고 갈게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19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국민들이 베트남을 '제2의 우리팀'처럼 응원하고 있다'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박 감독은 "전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지만 조국은 대한민국 입니다. 항상 대한민국에서 응원해주셔서 책임감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바레인과 16강전을 하는데, 좋은 선수들이 포진해있고, 벤투란 유명한 감독이 잘 조련하고 있습니다. 이번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낼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응원했다.

박 감독은 단상에서 내려와 한국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먼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두바이=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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