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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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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집 찾아다니는 젊은이들 “나는 옥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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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식당 ‘···옥’으로 끝나는 곳 많아 붙여진 이름
복고 열풍과 함께 탄생··· 을지로·종로 등 옛 도심에서 활발하게 활동

조선일보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 평양냉면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옥동자들이 특히 즐겨 먹는 음식이다./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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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개업한 평양냉면 명가 ‘우래옥’ 김지억(87) 전무가 "저것 좀 보라"고 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앉아있었다. 이들은 왼손에는 숟가락을, 오른손에는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숟가락으로 냉면 육수를 조금 뜨더니 젓가락으로 면을 조금 집어 도르륵 말아 숟가락에 얹어 입에 넣었다. 마치 이탈리아 파스타를 먹는 듯한 모습이었다. 김 전무는 "냉면은 면을 육수와 함께 마시듯 먹으며 목으로 맛을 느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이들은 ‘옥동자’라고 불린다. 잘 생긴 남자아이를 뜻하는 ‘옥동자(玉童子)’가 아니라 집 옥(屋)자를 쓰는 ‘옥동자(屋童子)’다. 역사가 긴 식당 중 상호가 ‘···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이들이 즐겨 찾는 오래된 식당들 중에선 ‘관’ ‘회관’ ‘식당’ ‘집’으로 끝나는 곳들도 많다.

옥동자들은 몇 년째 불고 있는 복고(retro) 열풍과 함께 태어났다. 서울 을지로 4가에 있는 1952년 문 연 유서 깊은 설렁탕집 ‘문화옥’ 주인 이순자(79)씨는 "젊은 손님들이 주말에는 더 많다"며 "우리집은 원래 중장년층이 대부분인데 3년쯤 전부터 젊은층이 늘었다"고 했다.

윗세대에게는 낡고 오래된 식당이지만, 젊은 세대에겐 오히려 ‘힙’하게 인식된다. 오래된 것(retro)을 새롭게(new) 즐기는 ‘뉴트로(newtro)’ 현상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문화옥에서 만난 직장인 이창현(31)씨는 "새로 오픈한 맛집보다 오래된 식당 사진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좋아요’가 훨씬 많이 붙고 친구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했다.

끊임없이 나타나고 금방 사라지는 맛집과 유행에 질리고 피로감을 느껴 옥동자가 된 이들도 상당수다. 주말마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닌다는 대학원생 박한별(27)씨는 "새 ‘핫플(핫 플레이스(hot place)의 줄임말)’이라며 몰리는 식당·카페 중에서 일 년 넘게 인기를 유지하는 곳이 얼마나 되느냐"며 "다시 찾아갔을 때 폐업한 곳들을 여럿 경험하면서 다시 가고싶지 않아졌다"고 했다.

오래된 식당이야말로 진짜 맛집이라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프리랜서 작가 백문영(31)씨는 "소셜네트워크(SNS)에서 화제가 된 맛집이라길래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수십 년 세월의 시험을 견뎌냈다는 건 미쉐린 가이드보다 더 확실한 인증"이라고 했다.

옥동자들의 주 활동영역은 구(舊)도심이다. 노포(老鋪)들이 이 지역에 밀집했기 때문이다.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이 2012년 발간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에는 50년 넘게 장사하는 전국 식당 100곳이 수록됐다. 이중 서울의 28곳을 구(區)별로 분석해보니 중구 13곳, 종로구 5곳, 마포구 3곳, 동대문구·영등포구·성북구 각 2곳, 강남구 1곳으로 강북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사대문 안’이라고 부르는 옛 도심 지역에 몰려있다. 유일하게 강남에 위치한 ‘한일관’은 종로 1가 피맛골에 있다가 이 일대가 재개발되자 2008년 강남구 신사동으로 옮겼다.

옥동자들은 올 초부터 본격화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가 철거에 불안해하고 있다. 평양냉면집 ‘을지면옥’, 양대창집 ‘양미옥’ 등 많은 노포가 재정비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옥동자들은 "재개발을 당장 중단하고 제대로 된 도시재생을 위해 이 일대를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지정해야 한다"는 일대 상인과 장인, 예술가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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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자들이 즐겨 찾는 맛집 중에선 설렁탕, 갈비탕, 곰탕 등 탕반음식을 내는 곳이 많다. 사진은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울산 ‘언양곰탕’./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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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을 파스타처럼 먹듯, 옥동자들은 전통 음식을 새롭게 즐기는 방식을 개발·도입하고 있다. 동시에 노포들도 옥동자들이 늘어나자 기존 서비스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을지로 3가 ‘조선옥’(1937년 개업)에서는 주방에서 연탄불에 구운 갈비구이를 전처럼 식탁에 바로 놓고 자르지 않는다. 이에 앞서 종업원이 갈비가 담긴 접시를 들고 살짝 앞으로 기울여 손님이 사진 찍을 수 있게 해준다. 종업원은 "갈비를 내려놓으려 하면 ‘잠깐만요, 사진 좀 찍을게요’라는 젊은 손님이 하도 많아 이렇게 해드린다"고 설명했다.

음식평론가 강지영씨는 "냉면을 파스타처럼 먹는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고 문제될 것도 없다"며 "하지만 왜 면과 육수를 함께 마시듯 먹는지, 음식에 담긴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도록 설명해줄 필요는 있다"고 했다. "영국서도 30년 전만해도 파스타를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먹었어요. 하지만 이탈리아 식문화에 대한 교육이 신문과 방송, 잡지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이뤄지면서 이제는 그런 사람 없죠.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오래된 식당을 찾는 것도 하나의 유행으로 얼마 있지 않아 끝나고 말거예요. 반대로 교육만 잘 된다면 오래된 식당들이 신세대와 구세대가 공감하는 교감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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