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레이크 골프장에 있는 박항서 감독 환영 포스터. 성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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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서쪽으로 36km 거리에 있는 킹스 아일랜드 골프장에 가는 길에선 군인들의 행렬을 가끔 볼 수 있었다. 베트남군은 지난 세기 프랑스군과 미군, 중국군을 차례로 물리쳤다. 내가 베트남 골프장들을 여행하게 된 건 켄 번스의 18시간짜리 대작 다큐멘터리 ‘베트남전쟁’을 보고 나서다.
이념으로 갈린 남북의 대치와 미국, 중국 등 주위 열강의 이해관계 속에서 치러진 베트남전은 매우 흥미로웠다.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상황과도 흡사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정글 속 인도차이나 반도를 종단하는 길을 뚫어 군수 물자를 남쪽 게릴라들에게 전했던 호치민 트레일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골프 코스를 여행하는 호치민 골프 트레일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미국 P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베트남 전쟁.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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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여행지를 다낭으로 잡은 것도 그래서였다. 1965년 미군 지상군이 처음 들어가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도시가 다낭이다. 한국의 해병대인 청룡 부대도 다낭 부근에 주둔했다. 양쪽 모두 많은 피를 흘렸다. 축구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이 되고, 다낭은 한국인이 찾는 주요관광지가 됐다. 시간은 상처를 아물게 했다. 한반도 전쟁의 상처는 언제 치유될까.
킹스 아일랜드 골프장에 들어가려면 동모 호수를 건너는 배를 타야 한다. 보트에는 코스 설계자인 잭 니클라우스의 이름과 그의 로고인 황금 곰이 붙어 있다. 언뜻 봤을 때는 몰랐는데 잭 니클라우스 다음에 ‘Ⅱ’가 붙어 있다. 잭 니클라우스가 아니고 그의 아들인 니클라우스 2세가 만들었다는 얘기다.
선착장에 나와서 일행을 반긴 캐디는 한국인인 것을 알게 되자 “박항서가 여기 왔다 갔다”면서 핸드폰을 열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또 다른 캐디도 박항서와의 추억을 핸드폰에 간직하고 있었다. 캐디들은 “박항서 감독의 타수는 90대이며 매너도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등 전설적 코스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새로 지은 코스들이 오래된 코스 보다 낫다. 베트남은 골프 붐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새 코스들이다. 킹스 아일랜드의 3개 코스 중 지난해 개장한 킹스 코스가 가장 어리다. 잭 니클라우스가 아니라 그의 아들이 만들었지만, 혹은 아버지의 스탭들이 만들었겠지만, 도전적이고 다양한 색깔을 가졌다.
킹스 아일랜드 골프장의 킹스 코스. 성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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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아일랜드를 방문한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라운드 후 클럽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다가 한국 골퍼 2명이 태국의 강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변을 당한 그들을 애도했다. 골프장 밖으로 나오는 보트를 탈 때 동모 호수의 물결이 들어올 때 보다 훨씬 높게 출렁거린다고 느껴졌다.
#스카이 레이크
역시 하노이 인근에 스카이 레이크 골프장이 있다. 랭킹으로 보면 높지만 스카이 레이크는 ‘철수’ ‘영희’ 같은 개성 없는 이름이어서인지 큰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날씨는 우중충했고, 클럽하우스 인근 풀들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첫 인상도 좋지 않았다.
스카이 레이크 골프장. 성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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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프장 장민석 과장은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 베트남 현지에서 엄청난 한류열풍을 불어온 박항서 감독님께 비공개로 명예 회원증 수여식을 했다. 박 감독님은 현지에 있는 많은 한인들과도 가까이 지내시며 많은 존경과 감사를 받고 계신다”고 했다.
스카이 레이크 골프장은 한국인이 경영한다. 2016년 KLPGA 이벤트 대회인 한국투자증권 챔피언십도 개최했다. 퍼블릭인 스카이 코스가 7311야드, 프라이빗인 레이크 코스가 7557야드로 웅장하다.
스카이는 훌륭한 코스였다. 땅을 아끼지 않고 써서 각 홀들이 나무에 둘러쌓여 포근한 느낌이 나면서도 장쾌했다. 벙커 뒤에 숨은 깃대는 자꾸 도전하라고 유혹을 걸어왔다. 하롱베이처럼 석회암이 용식되어 생기는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도 가끔 배경으로 등장했다.
레이크 코스는 한 결 더 나았다. 넓은 홀 좁은 홀, 짧은 홀 긴 홀들이 리듬감 있게 나왔다. 특히 땅이 아름다웠다. 페어웨이가 파도 치는 바다처럼 굴곡이 있다. 해가 기울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페어웨이는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레이크 코스. [스카이 레이크 골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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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가 누구인지 알아봤더니 한국인 안문환씨였다. 그를 만난 적은 없다. 안양, 나인브릿지 등에서 일한 김국종 3M 골프경영연구소장은 “안문환씨는 강원 춘천에 골퍼들의 무릉도원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산요수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경기 침체로 인해 사업이 어려워져 동남아로 떠났다”고 했다.
산요수는 현재 라비에벨 골프장이 됐다. 라비에벨 올드 코스 등 그가 남긴 골프장에 대한 평가는 꽤 높다. 한국에서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한 그가 동남아에서 또 다른 박항서가 되기를 바란다.
베트남은 활력이 넘친다. 골프계도 그렇다. 한국인들이 큰 역할을 한다. 한국인 골프장 이용객도 많지만 골프 코스도 여럿 만들었다. 하노이 인근에만 해도 스카이 레이크 이외에도 반찌, 피닉스 54 골프장을 한국인이 운영한다. 다들 명문 코스라 부유한 현지인들도 많이 이용한다.
하노이=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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