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因은 ‘뇌출혈’, 몸엔 무수한 상처
주민들 "아동학대 신고했었는데…"
새해 첫날이엇던 지난 1일 오후 3시 44분, 경기도 의정부소방서에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 현장은 비좁은 빌라였다. 안방 한 가운데 4살배기 아이가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은 심폐소생술도 포기했다. 아이의 몸은 차게 식어, 이미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 어머니 이모(34)씨는 "새벽에 아이가 대소변을 못가려 화장실에 들어가라 지시했는데, 아침에 ‘쿵’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의식이 없었다"고 경찰에 증언했지만 경찰 생각은 달랐다. 볼수록 아이의 몸엔 ‘수상한 상처’가 많았다. "아이가 4살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왜소하더군요. 다리엔 화상과 체벌받은 자국이 남아 있고, 온몸 곳곳에 멍자국과 상처가 있었습니다. 머리는 온통 부어 있었구요." 한금중(53) 경기 의정부경찰서 형사과장은 "학대가 있었겠다 싶어, 최소 ‘과실치상’으로 보고 이씨를 긴급체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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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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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부검 결과 드러난 아이의 사인은 '후두부 손상으로 인한 뇌출혈'. 어머니 이씨는 계속된 추궁에 울음을 터뜨리며 "후라이팬으로 뒷통수를 3회 톡톡 쳤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가 평소에도 축 늘어져 자, 잠에 든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한파에 4시간 노출된 4살 女兒... 직접사인은 ‘뇌출혈’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를 화장실에 가둔 시간은 1일 새벽 3시. 아이가 쓰러진 시각은 아침 7시쯤이다. 아이가 숨진 1일 새벽, 의정부의 기온은 영하 13도에 이르렀다. 체감기온은 영하 20도를 밑돌았다. 4살 여자아이가 최소 4시간 동안 한파 속에 노출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발견 당시 아이가 오줌 싼 축축한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며 "소변이 묻어 축축한 옷이 아이의 체온을 더욱 빠르게 앗아갔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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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아이가 쓰러지자, 신고 대신 온수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이씨는 오후가 되도록 아이가 미동이 없어, 그제서야 119에 신고를 했다. 응급실에 실려가야 할 아이는 그렇게 집 한 가운데서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아이의 최초 사인을 저체온증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도착한 1차 부검 소견은 ‘뇌출혈’을 사인으로 지목했다. "안면 전면과 후두부에 혈종(내출혈로 인한 핏멍울)이 다수 발견 돼 사망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소견이 도착했습니다. 후두부 뿐 아니라 얼굴 전체에 출혈이 엄청났어요. 절대 넘어져서 생길 수는 없는 상처였습니다." 경찰의 말이다.
이씨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아이를 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는 "잘못했다"면서도 "아이들끼리 투닥거림이 많아 모든 상처가 폭행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라며 "가벼운 훈육과 체벌은 있었지만 학대하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親父 모두 다른 세 남매, 지속적인 아동학대 시달린듯
이씨의 가정사는 복잡했다. 숨진 아이 위론 9살 언니와 6살 오빠가 있었지만, 두 아이 친부는 달랐다. 숨진 아이는 이씨가 두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딸이다. 이씨는 두번째 남편과 지난해 11월 이혼했다고 한다. 이혼 후엔 "두번째 남편이 아이들을 때린다"며 경찰에 접근 금지를 요청하고, 세 남매를 홀로 키웠다.
그러나 아이들을 학대한 건 전(前)남편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아동학대 의심을 받아, 경기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관찰 대상’ 목록에 올라 있었다. 2017년 5월21일에는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접수돼, 법원의 피해아동보호명령에 따라 세 자녀가 아동보호시설에서 1년을 보냈다. 하지만 이씨가 양육의지를 보여, 결국 남매들은 원가정으로 복귀하게 됐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이웃들은 "평소에도 가끔 ‘악’하는 비명이 들리고, 아이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인근 주민의 신고도 있었다. 경기북부아동전문기관은 사고 전날인 지난해 12월 31일 가정방문을 시도했지만, 이씨가 만남을 미뤘다. 다음날 아이는 목숨을 잃었다.
경기 의정부지법 정우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오후 "도주우려가 있다"며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 과장은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더니, "쉽지 않은 문제"라며 말문을 열었다. "일단 아동보호시설로 옮겨졌습니다. 당장은 외조모가 키운다고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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