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박항서 감독 “인기는 바람과 같은 것”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인터뷰

“베트남 축구 더 오를 곳 남아 있어

난 아직 배고프다, 아무 데도 안 가”

베트남과 계약 기간 1년 남아

아시안컵에서도 다시 도전할 것

“요즘 그런 이야기 제법 들어요. 2002년 히딩크 감독님처럼 정상에 올랐을 때 깔끔하게 물러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분들의 조언이라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우리(베트남)는 아직 더 올라갈 곳이 남아 있는데. 허허허.”

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2018년 한 해 영광의 발자취는 모두 ‘어제 내린 눈’이었다. 1월 23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그리고 12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 컵 우승까지. 내디딘 걸음마다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를 썼지만, 그는 “이젠 다 지난 일”이라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중앙일보

2018년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승승장구한 박항서 감독은 ’평범하게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하노이 시내의 베트남 축구대표팀 숙소 호텔에 엄지를 치켜든 박항서 감독. [하노이=송지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1일 베트남 하노이의 축구대표팀 숙소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박 감독은 “스즈키 컵에서 우승한 뒤 딱 하루만 쉬었다. 코치들에게도 ‘긴장이 풀어지면 안 되니 축배는 나중에 들자’고 주문했다”면서 “아시안컵 본선(내년 1월5일 개막)이 눈앞이다. 지금은 오직 그것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년은 ‘지도자 박항서’의 인생 물줄기를 바꾼 해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 때만 해도 성공을 예감한 이는 드물었다. 축구계 관계자들도 ‘예순을 바라보는 노장의 마지막 도전’쯤으로 여겼다. 박 감독은 그러나 ‘동남아시아’라는 낯선 무대에 진출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던졌고, 큰 성공을 거뒀다. 지도자로서 승승장구하며 명예를 드높인 건 물론 한국과 베트남의 정치·외교적 거리를 좁히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중앙일보

박항서 감독이 직접 공을 차며 베트남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 27일 발표한 ‘올해(2018) 최고의 인물’ 여론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4%포인트)에서 박 감독은 16.7%의 지지를 받아 문재인 대통령(25.0%)에 이어 전체 2위에 올랐다. K팝 그룹 방탄소년단(9.9%),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9.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5.6%) 등 올 한해 뜨거운 주목을 받은 국내·외 인사를 제쳤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성공한 비결로 ‘기본에 충실한 원칙주의’를 꼽았다. 그는 “많은 분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과 비법, 특효약을 찾느라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내가 거둔 성과는 가장 평범하게, 기본부터 철저히 챙긴 결과물”이라고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힘들어하는 한국의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또한 “성공으로 가는 로열 로드(royal road)를 찾느라 귀한 시간을 허비 말라”는 냉철한 충고였다.

성패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로는 ‘효율성’을 꼽았다. 박 감독은 베트남 감독을 맡은 이후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72·네덜란드) 감독에게 배운 분업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코칭스태프 각자에게 대표팀 업무를 합리적으로 배분한 뒤 감독은 ▶업무 진행 확인 ▶적절한 통제 ▶내부 갈등 관리 및 수습 등의 역할에 전념하는 방식으로 팀을 이끌었다.

중앙일보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이 21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왼쪽)로부터 우호훈장을 받고 있다. [사진 베트남 정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 감독은 “일사불란한 팀 분위기가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와 이영진(55) 수석코치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운다. 크게는 스즈키 컵이나 아시안컵 같은 중요한 대회의 목표 설정에서부터 작게는 당장 내일 훈련 프로그램을 가지고도 자주 툭탁거린다”며 “단결력이란 의사결정 과정에서 모두가 ‘예스(yes)’를 외치는 게 아니다. 각자 의견이 달라도 ‘팀을 위한 고민의 결과’로 서로 존중하고, 일단 결론이 정해지면 최선을 다해 따르는 것”이라 말했다.

이영진 수석코치는 “코치가 늘 감독이 원하는 답을 들려줄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면서 “어차피 최종 결정은 감독의 몫이지만, 그 전에 코치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최대한 듣는 게 박항서 감독의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왼쪽) 감독과 함께 수석코치로 호흡을 맞췄던 박항서 감독.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박 감독은 ‘국민 영웅’이다. 베트남 대표팀에 기업들의 격려금이 쇄도하고, 광고 촬영 제의가 줄을 잇는다. 가는 곳마다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를 외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베트남 현지에 박항서 감독의 고향(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을 방문하는 여행 프로그램이 등장했을 정도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인데도, 어떻게들 알았는지 사인과 사진 촬영을 원하는 현지 팬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러나 박 감독은 귀찮은 표정이라곤 없이 일일이 팬들의 요청에 응했다. 박 감독은 “인기는 바람과 같다. 갑자기 몰려왔다가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진다”면서 “나에 대한 높은 관심 또한 지금 당장에라도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2002년에 같은 경험을 해봤기에 특별한 감흥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이른바 ‘박항서 신드롬’을 관리하는 이유는 베트남 축구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2002년을 기점으로 모든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듯 베트남 축구에도 2018년이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박항서가 다른 나라 또는 리그로 터전을 옮길지 모른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자 박 감독은 “나는 (베트남을) 떠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베트남 축구에 이바지할 부분이 아직 남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박 감독은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베트남 축구협회와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남았다. 계약은 약속이다. 나에게 기회를 준 베트남과의 신뢰를 저버릴 순 없다”면서 “나는 아직 배고프고, 베트남 축구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노이=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