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독일 월드컵 예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응원단. 박진업기자 |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벤투호’의 아시안컵 최종 모의고사 상대 사우디아라비아는 한때 중동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강자였다. 1980~1990년대 전성기를 누렸는데 이 기간 아시안컵에서만 세 차례 우승(1984, 1988, 1996)을 차지했다. 특히 1988 카타르 대회에서는 한국과 결승에서 만나 승부차기 접전 끝에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또 1994 미국 월드컵에 참가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사우디 축구의 부흥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에 0-4 패배, 2002 한일 월드컵 독일전 0-8 패배, 2006 독일 월드컵 우크라이나전 0-4 패배 등 국제 무대에서 굴욕의 역사를 이어갔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예전의 위상을 찾지 못했다. 사우디 축구가 2000년대 변방으로 밀려난 건 이전까지 큰 버팀목이 됐던 ‘오일머니’가 독이 됐다. 자국 선수가 유럽 등 축구 선진리그로 진출하지 않고도 자국리그에서 큰 연봉으로 만족감을 누렸다. 갈수록 현대 축구 흐름에 뒤처졌다. 전술이 다변화한 시대에도 여전히 개인전술에 의존했고 피지컬에서 약점을 보였다.
하지만 사우디 축구는 최근 몇 년 사이 쇄신의 길을 걷고 있다. 국가대표, 클럽마다 능력 있는 외국인 지도자 수혈에 나섰고 사우디 정부가 직접 나서 지난 6월 러시아 월드컵을 6개월여 앞두고 스페인 라리가와 제휴 계약을 맺는 등 현대 축구에 녹아들기 위해 애썼다. 축구광으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격수 파하드 알 무왈라드가 레반테, 미드필더 야히야 알 셰흐리가 레가네스, 중앙 미드필더 살렘 알 다우사리가 비야레알로 각각 임대 이적해 경쟁력을 쌓게 했다. 물론 단기 임대에 불과했기에 출전 시간도 적었고 월드컵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순 없었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감독을 두 번이나 바꾸는 중동 특유의 조급한 행정으로 빈축을 샀고 그 결과 홈팀 러시아와 개막전에서 0-5 대패를 당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출신 후안 안토니오 피치 감독(스페인 국적) 체제에서 사우디 A대표팀은 조금씩 자리매김했다. 월드컵 두 번째 상대인 우루과이전에서 0-1 석패한 데 이어 모하메드 살라가 골을 넣은 이집트와 최종전에서 연달아 두 골을 넣으며 2-1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이 승리는 사우디가 1994년 대회 이후 무려 2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서 거둔 쾌거다.
한국이 독일전 승리 이후 A대표팀이 부흥하고 U-23 대표팀의 아시안게임 우승 등 호재가 겹친 것처럼 사우디도 그랬다. 피치 감독 체제에서 경쟁력이 입혀지면서 이후 볼리비아전(2-2 무), 브라질전(0-2 패)에서 나름대로 선전한 데 이어 최근 이라크(1-1 무), 예멘(1-0 승), 요르단(1-1 무)을 상대로 무패를 기록했다. 또 지난달 U-19 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에서 한국을 꺾고 우승하는 등 모처럼 연령별 대회까지 접수했다.
경계 대상 1순위는 전방을 책임지는 알 무왈라드다. 1994년생 만 24세에 불과하고 키 167㎝ 단신인 그는 이전까지 ‘조커’로 뛰었으나 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표 공격수로 거듭났다. 작은 키에도 빠른 발과 기민한 움직임, 대포알 같은 슛으로 과거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저메인 데포를 연상케 한다. 지난달 21일 요르단전에서도 골 맛을 본 그는 자국리그 알 이티하드에서 올 시즌 현재까지 11경기 7골을 터뜨렸다. 최근 3경기 연속골로 기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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