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4강전 한국-베트남의 경기가 29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베트남 응원단이 박항서 감독을 응원하고 있다. 2018. 8. 29.취 재 일 : 2018-08-29취재기자 : 최승섭출 처 : 스포츠서울 |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스스로는 영웅이 아니라고 하지만 베트남도, 한국도 그에게 열광하고 있다.
지난해 9월이었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엔 큰 화제가 아니었다. 베트남 내에서도 처음에는 박 감독을 냉소적으로 봤다. 선수 시절을 화려하게 보낸 것도 아니고 지도자로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국내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정점을 지난 50대 후반의 지도자가 아시아 축구에서 변방인 베트남을 맡았다는 소식이 큰 이슈가 되긴 어려웠다.
박 감독을 향한 인식은 베트남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달라졌다. 베트남이 이 대회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박 감독에게 열광했고 한국에서도 점차 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박 감독은 이어진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베트남을 4강으로 인도하며 국민적인 영웅에 등극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감독의 활약상이 전 국민적인 이슈가 된 것은 아니었다. 스포츠에 관심 있는 대중을 중심으로 화제가 됐을 뿐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11월 개막한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이었다. 베트남은 조별리그, 토너먼트를 거쳐 무패 행진을 달리며 우승 기대감을 높였다. U-23 선수들이 출전했던 챔피언십, 아시안게임과 달리 A대표팀이 나선 대회였고 10년 동안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도 가장 기대가 큰 무대였다. 여기에 국내에서 베트남 경기를 생중계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결국 지난 15일 결승전 2차전 TV 시청률이 21.9%(SBS 18.1%, SBS스포츠 3.8%·닐슨코리아)에 달하는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국내 포털의 많이 본 뉴스도 박 감독 소식으로 가득했다. 단순한 관심 수준이 아니라 ‘현상’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했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마저 박 감독 신화를 자세하게 알 정도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이야기가 알려졌다.
단순히 체육계에서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이 스즈키컵 우승을 달성하자 SNS를 통해 축전을 보냈다. 경제, 사회, 문화계에서도 박 감독의 성공과 리더십을 주목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박 감독의 성공신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조명하며 원인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도 의미가 있었지만 그보다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가 순식간에 베트남과 한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더 흥미로웠다.
박 감독을 통해 베트남과 한국은 더 가까워졌다. 결승 2차전이 열린 미딩 국립경기장 주변은 박 감독의 얼굴과 태극기로 넘실거렸다. 베트남은 원래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였는데 박 감독으로 인해 호감도가 더 올라갔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몸에 걸치고 다니는 풍경이 익숙해질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지 교민들도 입 모아 박 감독 덕분에 베트남의 한국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증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박 감독을 ‘외교관’이라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감독은 “나는 그냥 축구 지도자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이미 그는 감독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
한국의 체육 지도자가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 감독 케이스처럼 선전 이상의 의미를 남긴 인물을 찾긴 어렵다. 게다가 박 감독은 내리막길을 걷던 노장이었다. 프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후 실업 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베트남으로 향했다가 대박을 터뜨렸다. 박 감독이 체육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존재감을 과시했던 2018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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