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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악동, 크라잉넛

조선일보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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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악동, 크라잉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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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8집 앨범 '리모델링' 내
함께한 세월 23년, 평균 나이 마흔둘. 어깨에 힘 들어가는 중후한 수식어다. 정작 그 주인공 록밴드 크라잉넛은 한결같다. 1995년 서울 홍대 앞 클럽 '드럭'에서 '닥치고 말 달리자'를 외치던 '철없는 악동'의 모습으로 늘 시곗바늘을 돌린다. 최근 낸 8집 '리모델링'의 '내 인생 마지막 토요일'도 폐업 직전 술집의 탁자 위를 술병과 함께 나뒹굴듯이 불렀다. "부어라/ 마셔라/ 춤을 춰라/ 우리의 인생이 여기까지인 듯~."

신보‘리모델링’을 발매한 록밴드 크라잉넛.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윤식·김인수·이상혁·한경록·이상면. /장련성 객원기자

신보‘리모델링’을 발매한 록밴드 크라잉넛.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윤식·김인수·이상혁·한경록·이상면. /장련성 객원기자


최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박윤식(보컬)·한경록(베이스)·이상면(기타)·이상혁(드럼)·김인수(아코디언)는 "악동이면 젊게 봐주는 거니 고맙다. 어차피 우리 노래는 근엄하게 부르면 더 이상하다"며 웃었다. 이들은 그간 멤버 교체 한번 없이 '말 달리자' '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등 히트곡을 꾸준히 내고 '펑크록은 인기 없다'는 국내 정서를 깨며 '조선펑크록의 대가'란 장난스러운 자화자찬까지 인정받게 했다.

그간 몇몇은 결혼하고 학부모가 됐으며 주량도 줄고 배도 좀 나왔다. 이번 신보가 나오기까지 5년이나 걸린 것도 이상면은 "가정을 위해 돈도 벌어야 하니 행사도 많이 뛰고 스트레스도 받고. 약간 침체기였다"고 했다. 김인수도 "채찍질을 조금 하면 말이 빨리 달리지만 많이 하면 죽는다"며 "히힝~" 소리와 함께 설명을 보탰다.

그만큼 "예전처럼 재미만 추구하기보단 좀 전투적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한경록은 "그간 세상이 많이 바뀐 걸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카세트테이프·CD만 듣고 PC 통신만 있었어요. 요샌 다들 유튜브 보느라 휴대폰만 쳐다봐요. 이쯤 변했으면 음악적으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싶었죠."

그간 봐온 홍대 앞 거리의 변화에 쓴소리도 냈다. 김인수는 "요새 길거리 공연은 기타도 아닌 아이폰, 심지어 반주 기계를 끌고 다니며 즉석 노래방을 차려서 유행가만 부른다. 홍대 거리 음악 문화의 저항 정신은 끝났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혁은 "하루 자고 나면 계속 가게가 사라지고 마천루가 들어선다. 사람들은 다 쫓겨나고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했다. 다 부수고 갈아엎는 '재건축'이 아닌 깁고 때우는 '리모델링'이 이번 앨범명이 된 이유다. 박윤식은 "지금 홍대처럼 다 새로 짓기보단 좋은 건 보존하며 현대적인 걸 더해가는 게 좋다"고 했다.

자신들 음악의 뼈대였던 펑크를 기본으로 삼되 재즈 셔플리듬에 폴카, 샹송 등 총 12곡에 8~9가지 장르를 섞었다. 하나둘 클럽들이 사라져가는 홍대 앞 풍경을 그린 '이방인'에서는 "막 몰아친 태풍 현장에서 방송하는 리포터처럼" 랩도 해보고, '심장의 노래'는 아이리시 느낌의 백파이프, 시타르 등 온갖 소리를 내려고 처음 가상 악기도 써봤다. 그러나 "지상파 3사 방송 금지를 받았다"는 '똥이 밀려와'의 "아 아까 쌌는데 또 와"를 들으면 결국 "여전히 하고 싶은 걸 했다"는 한경록의 말이 이번 신보에 가장 잘 어울려 보인다.


초·중·고교를 함께 다닌 박윤식과 한경록, 쌍둥이 형제인 이상면·상혁은 1976년생 동갑이고 김인수는 두 살 위. 동년배로 여전히 백원 단위까지 모든 수익을 쪼개 나누는 이들은 앞으로도 한참을 하고 싶은 대로 함께 노래할 작정이다. "죽고 나서도 아마 저승의 한 호텔에서 또 공연 뛰고 있겠죠 뭐." 이승에서는 오는 27일 서울 서교동 브이홀에서 새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연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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