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 기자] 요즘 TV 속 예능과 교양 프로들에는 온통 맛집 풍년이다. 아예 맛집 소개만을 전문으로 하거나 맛 대결을 펼치는 장면도 곧잘 등장한다. 와중에 개인 채널과 블로그까지 먹방, 맛집 순례에 가세한지 오래다. 맛집?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부족한게 분명하다. 대한민국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 도대체 이렇게 많은 진짜 맛집들이 있기는 한 것일까.
보릿고개의 아픈 기억을 벗어나 끼니 걱정이 겨우 사라지던 시절에는 맛집 탐방이란 말 자체가 욕 먹을 짓이었다. 배부른게 장땡이고 먹여주면 땡큐였거늘. 양은 도시락 하얀 밥 위에 달걀부침, 밀가루 소시지 몇 점이면 세상 부러울게 없었다.
2000년대 들어 주 5일 근무가 시작되고 일 보다는 삶의 질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잡으면서 세상은 바뀐다. TV들은 맛집 프로를 방영하기 시작했고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잘되는 듯 하면 바로 따라하고 베끼면서 붐을 이루는 게 우리네 TV 프로의 특성이다.
당시에는 '찾아라 맛있는 TV' '맛대맛' 등 맛 프로들이 속출했고 'VJ특공대' '생생정보통' 등 대다수 정보 프로에서도 맛집 소개를 주요 코너로 다뤘다. TV에서 한 번 전파를 탄 맛집들은 한동안 줄을 서 기다릴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기 마련이다. 이는 대다수 음식점들이 맛집 프로 출연을 물색하고 이를 가게 홍보에 이용하는 연결 고리로 이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시청자에게 강력 추천할만한 맛집의 숫자란 애시당초 제한적인데 맛집 프로는 많고 방송 횟수가 길어지면서 가짜(?)들이 속출했다. 협찬이란 명목의 허울좋은 광고 아닌 광고까지 "나도 한 입만"을 외쳤다. 이 전통는 몇몇 양심없는 파워블로거로 이어져 지금은 유튜브와 인스타에서 활개치는 중이다.
이후 스토리는 안봐도 뻔하다. 함량 미달의 맛집, 식사와 편의 제공을 자청한 맛집,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힌 맛집 등이 버젓이 진짜 맛있는 맛집으로 둔갑해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
진짜 맛있는 집들은 TV 맛집 촬영이나 블로거 접대에 비협조적이다. TV에 안나가도 손님이 차고 넘치는데다, 까다롭고 복잡한 촬영 주문 사항들을 바쁜 영업시간에 들어주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TV 맛집 소개들은 갈수록 부실해지고 엉뚱한 맛집 등장으로 시청자 항의가 잇따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또 하나, 맛집 소개도 사실을 강조하는 다큐적 특성을 갖고 있는데 재미와 사실의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맛집 방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갖 조작과 설정이 끼어든다.
실제 대다수 맛 프로에는 "정말 끝내준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음식점 손님들이 꼭 등장한다. 한 테이블 손님들이 모두 합창으로 식당 자랑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진짜 다큐라면 불가능한 일이고 시청자들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네' 인정하고 보는 부분이다.
식당 주인들의 오버 연기도 대단하다. 손님 주문을 받자마자 차를 타고 멀리 강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민물생선집 이야기에 물을 뿜었던 적이 있다. 음식이 늦게 나올 때 "주인은 고기 잡으러 갔나?" 우스갯 소리를 나누던 기억이 떠올랐다. 상 차림 전에 뒷편 텃밭에서 쌈채소를 따오는 장면은 귀여운 수준이다.
한정된 가격 안에서 온갖 한약재와 비싼 과일 등 식재료를 듬뿍듬뿍 사용하고 손님에게 푸짐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들이 맛집 소개의 세상 안에는 널려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하다면서 코 묻은 돈 다 뺏어가는 디즈니랜드가 바로 그곳이다.
최근에는 예전의 맛집 '쇼쇼쇼'를 벗어나려는 양심적인 프로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맛집을 감별하는 시청자 안목이 높아지고 엄격해진 게 그 배경일 터. 쏟아지는 맛집 블로그와 프로들에서 가짜와 광고를 골라내는 소비자 기술도 일취월장하는 중이다. 그래도 진정한 맛집 밥상의 원조를 꼽는다면 SBS '잘먹고 잘사는 법-양희은의 시골밥상'이 아니었을까. 고향집 어머니가 따뜻한 밥 한끼를 뚝딱 차리고, 먹성좋은 양희은이 후딱 그릇을 비울 때야말로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아쉽게도 좋은 프로는 단명하는 법이다. /mcgwire@osen.co.kr
<사진>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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