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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좋은 시즌을 놓치지 않으려 무모한 경쟁을 하다 보니 다 같이 망한 셈이죠."
지난 추석 연휴 때 한국영화 3편끼리 '혈투'를 벌인 것을 놓고 한 중견 영화 제작자가 내놓은 관전평이다. 실제로 지난달 19일 동시 개봉한 '안시성' '명당' '협상'은 개봉 4주째에도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안시성'은 지난 11일 기준 누적 관객 528만명을 기록했다. 220억원이 투입된 이 작품의 손익분기점은 579만명. 아직 50만명 이상이 찾아야 하지만, 하루 관객은 1만여명에 불과하다.
극장 전체 관객이 하루 25만명을 넘지 못할 정도로 극장가가 확연한 비수기에 접어든 데다, 오는 18일 '퍼스트맨' 등 신작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둬 손익분기점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안시성' |
이미 박스오피스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명당'과 '협상'은 각각 207만명과 195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쳐 극장 관객만으로는 손익분기점(300만명)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들 작품에는 각각 약 120억 원이 투입됐다. 이들 3편보다 한주 앞서 개봉한 '물괴'는 최종 스코어 72만명을 기록하며 추석 경쟁에서 일찌감치 중도 탈락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골라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제작비 100억∼200억대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상황은 한국영화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영화인들은 입을 모은다. 영화계 인사는 "1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본전도 못 건진다면 누가 한국영화에 투자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명당' |
특히 한국영화 3편 모두 나름의 완성도와 재미를 지닌 작품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한 영화인은 "'협상'의 경우 추석 시즌이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개봉했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다. 30년 경력의 한 영화 제작자는 "최근 10년간 통계를 보면 추석이 낀 주부터 개천절 연휴까지 통상 1천50만∼1천150만명 정도가 들었다"면서 "애초 100억∼200억 원대 영화 3편을 동시에 소화할 수 없는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공급과잉이 부른 '참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19일부터 10월 3일까지 관객 수는 1천231만명. 이 기간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공포영화 '더 넌', '서치' 등도 가세해 관객을 나눠 가졌다.
'협상' |
투자배급사와 제작사들은 통상 두 달 정도 영화에 대한 인지도·선호도·관람 의향·경쟁작 상황 등을 조사해 개봉 시기를 정한다. 그러나 각각의 지표가 엇갈리거나, 경쟁 영화보다 지표가 떨어지더라도 역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는 개봉을 밀어붙이기도 한다. 지난해 설 연휴 때 '공조'가 '더 킹'을, 추석 때는 '범죄도시'가 '남한산성'을 앞선 것처럼 흥행 역전을 노리는 셈이다.
돈이 많이 들어간 만큼, 경쟁이 치열하더라도 관객이 몰리는 시기에 개봉해 빠른 속도로 제작비를 회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작용했다. 대형배급사 관계자는 "비수기에 독야청청 1등을 하지 못할 바에는 성수기 때 2등 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2등 전략'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추석 시즌뿐 아니라 여름철에 한국영화 대작이 몰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성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원 객원연구원은 올해 '여름 극장가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영화가 대작화되면서 짧은 기간 최대한 많은 관객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주요 배급사들이 여름 성수기를 나눠 가지는 배급 전략으로 리스크는 줄이고 수익은 극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계 인사는 "과열 경쟁은 시장을 교란하고, 결국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상생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성수기뿐만 아니라 비수기에도 한국영화가 안정적으로 배급될 수 있게 참신한 소재의 중급 영화들도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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