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산업 중에서 외식 자영업 '폐업률 가장 높아'…5곳 중 4곳 5년내 문닫아
9월 외식산업통계 발표 '최악'…개입사업자 대출 잔액은 사상 최고 수준
서울 중구 음식점 밀집 지역. 한 점포가 폐업한 뒤 임대 공고문을 부착한 모습. |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규모는 작았지만 착실하게 잘 다녔는데 하루아침에 쫓기다시피 회사를 나오게 됐습니다.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막막했죠. 퇴직금과 대출 1억원을 더해 작은 고깃집을 차렸습니다. 식당 창업은 갈 곳 없는 저에게 '마지막 일자리'였고, 우리 가족에게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습니다. 집에서 아이만 보던 아내도 사람을 고용하면 인건비가 많이 나가니 일손을 거들겠다고 나섰고, 열심히 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만만치 않네요. 빚은 늘었고 식당은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주위에선 비난도 합니다. 자영업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왜 식당을 차렸냐는 비난이죠. 회사서 나와 혼자가 됐을 때 나 같은 사람도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은 그런 나라였다면, 장사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영업은 서민에게는 생계수단이에요."
최근 운영하던 작은 고깃집을 폐업한 서 모씨(52)는 창업과 폐업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울부짖었다. 대한민국 자영업자 570만명. 알록달록한 가판을 달고, 전국 골목 곳곳에 자리한 상가에서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전 산업 중에서 폐업률이 가장 높은 외식 자영업자들의 비명은 서 씨의 절규와 똑같다.
서 씨는 "50이 넘은 나이라 다른 회사로 재취업이 힘들어 마지막 생계수단으로 창업을 선택한 것"이라며 "처음 장사를 시작한 후 3개월은 매출이 괜찮았지만, 인근에 다른 고깃집과 백반집이 들어서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손님이 한명도 없는 날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수요는 한정적인데, 식당이 많아진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었다"며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인데, 서민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고 경쟁하고 결국 나 같은 서민은 패배해 문을 닫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식당을 차릴 당시 냉장고와 각종 식기 등에 2000만원을 투자했는데, 중고업자에게 판매하니 손에 남은 것은 100만원 남짓.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인 그는 "다시 밑천이 생기면 장사를 해야하지 않겠냐"면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또 자영업에 도전할 수 밖에 없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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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대비 음식점 폐업률 91.9%= 서 씨치럼 폐업을 하는 자영업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국세청이 매년 발표하는 국세통계연보에 의하면, 2017년 국내 총 음식점 수가 72만1979개. 이중 신규 창업한 음식점이 18만1304개, 폐업한 음식점이 16만6751개로 나타나 연간 신규 창업 대비 음식점 폐업률이 91.9%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1년간 음식점의 신규 창업 대비 폐업률이 2007년 95.2%로 최고점에 이르고, 2012년 94.5%를 기점으로 90% 안팎에서 움직였다.
결국 요즘 화두인 음식점 10곳이 문 열 때 9곳이 닫았다는 것은 국내 음식점업의 오래된 취약점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음식점의 5년 생존율은 17.9%로 집계됐다. 즉 5곳 중 4곳은 개업 5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제조업 생존율(38.4%)과 비교해보면 절반 수준이다.
임대료와 인건비, 원자재 폭등 등이 폐업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광명에서 백박집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인건비도 문제인데 곡류, 채소류, 수산물, 축산물 등 안 오른 것도 없다"며 "그렇다고 임대료가 하락하는지, 그야말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산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최 모씨는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일하고 있는데, 봉급생활자보다 더 못 번다"며 "그들 눈에는 임대료, 카드수수료, 인건비, 원재료값 상승 등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년엔 최저임금이 더 오르는데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사치"라고 하소연했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생계형 자영업 뛰어 들어= 이 같은 현실에도 수많은 이들이 식당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원인에 대한 시각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우선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많은 기업의 도산과 구조 조정으로 인해 명예퇴직자와 정리해고자가 대거 발생, 이들이 식당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인구 5192만명에 72만1979개의 음식점이 있어 음식점 1곳당 인구수는 약 72명에 해당한다.
이 상황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기가 도래해 이들마저도 식당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1958년~1971년 사이에 연간 100만 명씩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50대 인구가 2011년에 700만명을 넘어섰고, 2023년에는 846만명으로 최고치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상황은 여기서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 취업마저도 싶지 않아, 젊은 이들마저 식당 창업으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청년층 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마지막 탈출구인 생계형 자영업으로 뛰어들고 있다"며 "그리고 쉽게 자영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자영업은 마지막 일자리,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우리나라의 자영업은 서민들의 생계 수단으로 등장한 것으로, 죽을 수는 없고 살아야 된다는 차원에서 생긴 구조다 보니 근본적으로 과다 경쟁 체제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결국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따른 생계형 자영업 창업자가 많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빚에만 의지하면서 개입사업자 대출 잔액은 사장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은행권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302조1000억원)은 2월 이후 5개월 연속 2조원 이상 증가했다. 지난 5월에는 대출 잔액이 사상 처음 300조원을 넘어섰다.
◆외식산업 경기지표 '최악'= 외식 자영업자들은 앞으로 상황이 더 힘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수의 '바로미터'인 외식산업 경기지표는 모든 부분에서 악화일로다. 특히 전통시장의 음식점업 경기동향지수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30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외식산업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음식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내 음식점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의 시장경기동향은 각각 52.1, 34.4로 집계됐다. 지난 5월 72.0, 60.8에서 6월 57.8, 50.9로 하락한 이후 7월에는 30 수준까지 하락한 것이다. 100 초과이면 호전이지만 100 미만이면 악화다. 전통시장 동향지수가 30대 수준인 것은 통계가 공개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 역시 밝지 않다. 전 산업의 경기전망지수는 80.9으로 집계됐다. 지난 4월 86.6에서 5월 86.3, 6월 85.3으로 계속 하락세다. 숙막 및 음식점업은 75.0다. 100미만이면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향후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얘기다.
식업경기지수 역시 위축된 상황이다. 외식업경기지수는 지난 7월 68.98로 집계됐다. 지난 3월 69.45에서 하락한 후 4개월째 동결이다. 외식업경기지수는 50~150을 기준으로 100이 초과하면 성장, 100 미만은 위축을 의미한다. 서용희 외식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극심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외식업체가 폐업, 전업을 고려하는 상황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종로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이 모씨는 "정부는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과 세무조사 유예 정책 등 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펼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게 우리의 목소리"라며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자영업자 수의 증가·뒤따르는 과다 경쟁 구조로 인한 자영업의 몰락,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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