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음식점 밀집 지역. 한 점포가 폐업한 뒤 임대 공고문을 부착한 모습. |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최근 운영하던 작은 고깃집을 폐업한 서 모씨(52). 잘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 바람이 불며 쫓기다시피 나온 그는 퇴직금과 대출 1억원을 더해 지난해 1월 작은 고깃집을 차렸습니다. 집에서 아이만 보던 아내도 의기투합해 열심히 한번 잘 살아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절대 쉽게 도전한 창업이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식당 창업은 갈 곳 없는 그에게 '마지막 일자리'였고, 그의 가족에게 '유일한 생계수단'이었습니다.
50이 넘은 나이라 다른 회사로 재취업은 힘들 것이라 판단해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3개월의 시간을 투자해 전국 곳곳의 고깃집을 다니며 맛을 보는 등 시장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시간동안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해 아이와 아내에게 지금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는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윽고 다시 말을 이어간 그는 처음 장사를 시작한 후 3개월은 매출이 괜찮았다고 합니다. 많은 수익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월세와 관리비, 원재료 등 모든 비용을 제하고, 손에 가져가는 돈이 월 평균 200만원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인근에 다른 고깃집과 백반집 등이 들어서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수요는 한정적인데, 식당이 많아진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출은 급격하기 줄기 시작했습니다.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하루에 10만원을 벌 때도 많았고, 손님이 한명도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월세를 내고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빛은 점점 더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후회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폐업을 결심했습니다. 식당을 차릴 당시 냉장고와 각종 식기 등에 2000만원을 투자했는데, 중고업자에게 판매하니 손에 남은 것은 100만원 남짓. 씁쓸한 웃음만이 나왔습니다. 다시 장사를 할 생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말합니다. 잘 모르겠다고. 밑천은 없지만, 밑천이 생기면 장사 밖에 답이 없지 않느냐고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또 자영업에 도전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영업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습니다. 너무나 쉽게 뛰어들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너무 장사를 쉽게 본다는 것이죠. 실제 더본코리아의 대표 백종원 씨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 '골목식당'을 보면 이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을 통해 절대 장사가 쉽지 않고,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뛰어들면 가혹한 시련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 씨를 비난하는 이도 많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자영업 공화국인 나라에서 왜 식당을 차렸냐는 비난이죠. 그런데 서 씨의 말에 기자도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식당 뿐이었습니다. 권고사직으로 회사서 나와 혼자가 됐을 때 나 같은 사람도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은 그런 나라였다면, 장사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 많아요. 물론 장사를 쉽게 생각에서 뛰어드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장사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고, 제 가족을 지킬 수 없는 가장도 많다는 사실에 주목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자영업은 서민에겐 생계 수단이에요."
서 씨의 말을 요약하자면, 결국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따른 생계형 자영업 창업이 많다는 뜻입니다.
국세청이 매년 발표하는 국세통계연보에 의하면, 2017년 국내 총 음식점 수가 72만1979개입니다. 이중 신규 창업한 음식점이 18만1304개, 폐업한 음식점이 16만6751개로 나타나 연간 신규 창업 대비 음식점 폐업률이 91.9%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닙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1년간 음식점의 신규 창업 대비 폐업률이 2007년 95.2%로 최고점에 이르고, 2012년 94.5%를 기점으로 90% 안팎에서 움직였습니다.
결국 요즘 화두인 음식점 10곳이 문 열 때 9곳이 닫았다는 것은 국내 음식점업의 오래된 취약점입니다. 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음식점의 5년 생존율은 17.9%로 집계됐습니다. 즉 5곳 중 4곳은 개업 5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얘기죠. 같은 기간 제조업 생존율(38.4%)과 비교해보면 절반 수준입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제1차 최저임금 인상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사실상 사형 선고"라며 "정치권과 정부가 자영업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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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식당을 열어 성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지표는 대한민국에서 식당을 차리는 것은 '미친짓'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수많은 이들이 식당 창업의 길로 들어섭니다. 대체 왜 일까요?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적으로 비슷합니다. 우선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많은 기업의 도산과 구조 조정으로 인해 명예퇴직자와 정리해고자가 대거 발생, 이들이 식당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인구 5192만명에 72만1979개의 음식점이 있어 음식점 1곳당 인구수는 약 72명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극심한 공급과잉 상황인 것이죠.
이 상황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기가 도래해 이들마저도 식당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1958년~1971년 사이에 연간 100만 명씩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50대 인구가 2011년에 700만명을 넘어섰고, 2023년에는 846만명으로 최고치에 이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6일 발표한 '7월 신설법인 동향'에도 한국 경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가 담겨 있죠.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창업에 나서면서 60대 창업 증가율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여기서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 취업마저도 싶지 않아, 젊은 이들마저 식당 창업으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청년층 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마지막 탈출구인 생계형 자영업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쉽게 자영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자영업은 마지막 일자리, 생계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우리나라의 자영업은 서민들의 생계 수단으로 등장한 것으로, 죽을 수는 없고 살아야 된다는 차원에서 생긴 구조다 보니 근본적으로 과다 경쟁 체제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한민국의 자영업자 570만명에 이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비중은 약 25%로, 선진국과 비교하면 2~3배나 높습니다.
경쟁에서 밀려나 문을 닫은 자영업자의 수가 지난해 90만8076명. 정부는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과 세무조사 유예 정책 등 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펼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게 이들의 목소리입니다.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자영업자 수의 증가. 뒤따르는 과다 경쟁 구조로 인한 자영업의 몰락.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확실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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