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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고양, 한준 기자] “한국은 치열했고 역동적이었다. 그래서 그 경기 속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콤팩트한 블록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국의 강점을 막고자 했는데 경기 내내 해내기 어려웠다. 한국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로날드 곤살레스 코스타리카 감독 대행이 평가한 한국 대표팀의 강점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하면서 추구한다고 밝힌 철학과 일치했다. 치열하고, 역동적인 축구. 공격적인 축구. 7일 고향종합운동장에서 나온 스코어는 완승을 의미하는 2-0이었다.
“물론 첫 경기는 모두가 열심히 뛴다. 지난 감독님 때도 그랬다”는 기성용의 말처럼,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이영표 KBS 해설위원의 “아직은 새 감독과 허니문 기간”이라는 설명처럼 과장해서는 안 되겠지만, 첫 경기 만에 벤투 감독의 색깔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벤투 감독은 코스타리카전을 마친 뒤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역습이 잘됐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수비도 좋았고, 전환해서 역습할 때 좋은 장면도 나왔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가 볼을 갖고 뒤에서 빌드업하면서 우리가 볼 점유하면서 창출할 때, 선수들이 우리가 요구한 부분을 잘 해줬다. 그래서 우리가 공격 기회에서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역습이 잘됐지만, 역습이 아니라 점유와 지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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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하면서 빠른 축구, 벤투 감독이 공간을 만드는 법
볼을 소유하는 축구는 지공이 되기 마련이다. 한 팀이 공을 오래 쥐면 다른 한 팀은 물러 서서 상대를 끌어올린 뒤 배후 공간으로 역습한다. 공을 쥔 쪽은 상대 밀집 수비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속도감 있는 경기를 하기 어려워진다. 소유하면서 속도감을 내는 것이 현대 축구의 전술적 화두다. 그런 점에서 벤투 감독은 소유와 지배를 기반으로 속도감 있는 축구를 위한 ‘공간 공략’을 강조했다.
벤투 감독은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마자 라커룸으로 가기 전에 벤치에 있던 수비수 김민재를 붙잡고 꽤 긴 시간 메시지를 전달했다. 격정적으로 주문한 것은 “공을 받으면 상대 쪽 사이드에 빈 공간이 나오면 때리라”는 것이었다.
“감독님이 상대 뒤 공간에 패스 많이 하라고 해서 그런 패스를 많이 했다.” (김민재)
벤투 감독의 지시가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간 김민재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경기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은 전반 1분 홍철의 크로스에 이은 이재성의 슈팅, 전반 6분 이용의 크로스에 이은 지동원의 문전 쇄도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풀백이 전진해 전방 스리톱에 키패스를 보냈다.
이후 한국의 공격은 홍철이 높이 올라오기 전에 왼쪽 측면 전방 공간에 곧바로 로빙 패스를 보내고, 이용도 오른쪽 전방 배후로 패스를 찔러 넣는 등 직선적 패스가 빈번했다. 풀백이 올라가면 좌우로 벌려 빌드업한 김영권, 장현수 등 두 센터백도 마찬가지로 중원을 생략한 긴 패스를 공격진에 보냈다. 기성용, 정우영 등 두 중앙 미드필더는 대각선으로 사이드를 흔드는 패스를 통해 코스타리카 밀집 수비를 흔들고자 했다.
공격수 지동원은 벤투 감독의 축구에 대해 “점유하는 걸 일단 좋아하시고 너무 급하게 가는 걸 원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직선적 패스로 전진하지만, 무리한 패스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으로 공을 소유하고 빌드업을 하다 한번에 때려 놓는 패스로 기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공격수들이 다양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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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을 만드는 원톱, 공간에 때려 놓는 후방 빌드업
원톱 지동원은 측면으로 자주 빠졌고, 좌우 날개로 선 손흥민과 이재성은 전후좌우로 수시로 이동했다. 남태희도 2선 중앙에서 전방 좌우 측면으로 빠져들며 스위칭 플레이를 했다. 지동원은 “빈 공간 찾아가라고 하셨다. 상대 수비 라인을 깊게 서게 앞에서 움직여주라고 하셨다”고 했다.
벤투 감독도 원톱 지동원을 유연하게 쓴 것이 자신의 전술적 방향이 맞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원톱 공격수가 가운데 자기 자리만 지키는 게 아니라 많은 움직임 통해서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벤투)
벤투 감독은 1기 소집 명단을 구성할 때 “여러 포지션을 볼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격진이든 수비진이든 두 세 자리를 볼 수 있어야 경기 중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역동적인 경기를 할 수 있다.
“재미있다. 지루한 경기도 있고, 재미있는 경기가 있는데 이런 경기는 모두 열심히 뛰고 동료를 위해 열심히 뛰는 게 보였다. 90분을 뛰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재밌었다. 이런 축구를 계속 하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한 팀이 돼야 한다. 오늘 같은 정신력, 뛰는 양이 있다면 선수들이 잘 인지하면 잘 할 수 있다.” (손흥민)
“볼 소유나 공격할 때 세밀하게, 수비할 때는 다같이 하는 것을 원했다. 크게 특별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훈련 때 한 것을 잘했다. 감독님이 공격할 때 빠르게 세밀하게 하는 것을 원한다.” (기성용)
역동적인 경기를 위해선 선수 간의 자리 이동이 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많이 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빨라야 한다. 상대의 템포를 잡아 먹으며 이동해야 내려선 상대 조직의 틈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틈을 파고 들어 골을 만들기 위해선 기술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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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드 체인지, 쇼트 카운터, 개인기 마무리
기술 있는 선수들을 활용하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이 공간은 활발한 사이드 체인지를 통해 상대 블록을 헐겁게 만들고, 상대가 전진하도록 유도하거나, 상대가 공격할 때 앞에서 끊어 쇼트카운터로 습격해야 한다.
“가운데는 밀집되어 있기에 사이드로 보내서 세밀한 플레이 만들어가는 게 현대축구의 전술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기성용)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참가 선수를 기반으로 선발 명단을 짠 벤투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로 지동원, 공격형 미드필더로 남태희를 택했다. 두 선수 모두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기술과 결정력으로 인정 받아 일찌감치 유럽 무대에 입성했다. 지동원은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에서 주가를 높인 뒤 분데스리가에 자리잡았고, 남태희는 현재 카타르 알두하일에서 뛰지만 프랑스 발랑시엔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다.
벤투 감독은 특정 선수에 대한 칭찬도, 비판도 아끼는 편이지만 두 선수의 기용이 자신의 기호를 뜻하는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는 월드컵 멤버에 지동원, 남태희가 새로 들어간 것이 본인이 원하는 선수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묻자 “선수 선발 같은 경우 우리가 항상 원하는 것에 있어서 최대한의 능력치 발휘할 수 있는 선수 선발해서 출전시킨다. 앞으로도 그런 생각 갖고 선수 선발하고 기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심각한 얼굴로 경기를 보던 벤투 감독. 손흥민의 페널티킥이 골 포스트를 때리고 이재성이 밀어 넣어 선제골을 넣었을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벤투 감독은 지동원의 후반 3분 바이시클킥 시도에 박수를 쳤고, 후반 33분 남태희의 돌파에 이은 슈팅이 추가골로 이어지자 주먹을 불끈 쥐며 만족감을 표했다.
곤살레스 대행은 “한국 강점을 막고자 했는데 경기 내내 해내기 어려웠다. 한 골은 페널티킥이었고, 또 한 골은 막을 수 있었는데, 개인 능력에서 당했다”고 했다. 번호를 착각한 탓인지 손흥민 외에 인상 깊었던 선수로 9번 지동원과 6번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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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은 주세종의 번호인데 뛰지 않았다. 16번 기성용을 말하는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는데, 기술적으로 대단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점으로 보면 8번 남태희의 번호를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 골을 개인능력을 통한 골이라고 언급한 점에서도 가능성이 높다.
공격은 기술 좋은 선수, 여러 위치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두고, 이들에게 빠르고 직선적인 패스를 연결해 기회를 제공했다. 수비는 협업이고, 공격진부터 시작된다. 공격 기점을 높여 습격하는 점은 개인 능력이 아닌 팀 조직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공격형 미드필더 남태희는 벤투 감독이 지난 4일 간의 훈련에서 강조한 것이 오히려 수비였다고 했다.
“소집하고 나서부터 수비 조직적 훈련을 강조했고, 그런 훈련을 많이 했다. 수비 형태, 조직적 부분에서 강조를 많이 하시고 그에 대해 훈련을 많이 했다. 선수들도 그 점을 신경 썼고, 오늘 그런 부분이 많이 나왔다.” (남태희)
벤투 감독은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한다. 그가 선발한 선수, 투입한 선수를 보면 수비 전문가는 없다. 공격부터 수비까지, 심지어 골키퍼 포지션까지 공을 잘 다루고 공격력을 갖춘 선수로 구성했다. 하지만 공격을 잘 하기 위해선 수비도 잘해야 한다. 신체조건이 아닌 적극성과 호전성을 기반으로 협력 수비로 공을 빼앗아 빠르게 전개하고, 기술로 마무리한다. 벤투 감독이 원하는 속도감 있는 점유 축구의 작동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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