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4강 신화’ 이루고 귀국
월급 2500만원 … 인니 감독 8분의 1
현지 기업 광고모델 요청 잇따라
민간외교관 칭찬에 “축구밖에 몰라”
“11월 동남아 축구대회서 우승할 것”
베트남을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강에 올려놓은 박항서 감독이 금의환향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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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선 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억양에서 박 감독의 고향인 경남 산청 사투리가 묻어났다.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이 6일 오전 금의환향했다.
입국시간이 이른 아침인데도 취재진 30여명이 몰렸고, 도착 장면을 생중계한 방송사도 있었다. 수행원 하나 없이 백팩을 매고 여행 가방을 끌고 등장한 박 감독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베트남 축구 박항서 감독이 6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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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4강에 올려놓았다. 베트남 축구 사상 처음이다. 국내 팬들은 박 감독에게 베트남 대표 음식 쌀국수와 거스 히딩크 감독을 합성한 ‘쌀딩크’란 별명을 붙였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거둔 작은 성적 때문에 히딩크 감독님과 비교하는데 부담스럽다”면서도 “선수들과 함께 베트남 축구에 발자취를 남긴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광고모델로도 인기가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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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박카스도 베트남에서 인기다. |
박항서 감독이 K리그 감독 시절 벤치에서 졸고있는듯한 모습. 베트남 감독 초창기엔 슬리핑 원이란 조롱을 받았다. [SPOTV 캡처] |
박항서 감독이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처음 맡았을 때만 해도 현지에서조차 “한국 3부리그 감독(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이 말이 되냐”며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이동준 대표는 “감독 지원자가 300명에 달했다. 박 감독님은 베트남축구협회 임원 면접 때 손을 머리 위에 대고는 ‘난 키가 작아 베트남 선수들 비애를 잘 안다. 작지만 빠르고 기동력 있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임원들이 크게 웃으며 ‘당신 축구를 이해하겠다’고 호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베트남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약 1m65㎝인데, 박 감독은 선수 시절 정확히 같은 키로 악바리 같은 플레이를 펼쳤다.
박항서 감독은 선수들에게 우리는 베트남이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심어줬다. 이 말은 베트남 최고 유행어가 됐다. [유투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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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람들은 보통 오전 5시 기상해 6시쯤 출근한다. 박항서 감독은 이런 아침형 생활패턴에 맞춰 훈련 시간을 앞당겼다. 또 낮잠 자는 베트남 문화를 인정했다. 선수들에게는 오리고기, 우유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권했다. 쌀국수를 먹지 못하게 했다는 일각의 얘기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베트남 선수들도 식사 시간에 여느 젊은이들처럼 휴대폰만 쳐다봤다. 박 감독은 식사 시간에 휴대폰을 보는 대신 서로 대화를 나누게 했다. 이동준 대표는 “박 감독님이 ‘오케이?’라고 선창하면 선수들도 ‘오케이’라고 하면서 잘 따랐다”고 말했다.
베트남과 태국은 한국과 일본처럼 서로 앙숙이다. 베트남은 지난해 12월 태국을 2-1로 꺾었다. 10년 만의 승리였다. 이어 지난 1월에는 아시아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에서 4강 신화까지, ‘항서매직’이 이어졌다.
박항서 감독이 선수의 발을 직접 마사지하는 영상이 공개돼 현지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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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부상자를 확인하러 의무실에 자주 간다. 의무진이 한두 명밖에 없어 손이 모자라다 보니 도운 것뿐”이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키는 어퍼컷 세리머니에 대해서도 “연출하거나 그런 성격이 못 된다. 어느 순간 느낌이 온대로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현지에 등장한 박 감독 실물크기 세움 간판.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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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언론들은 계약 기간이 2020년까지인 박항서 감독이 ‘적은 돈을 받으면서 헌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 감독의 월급은 2만2000달러(2500만원)로, 루이스 밀라(스페인) 인도네시아 감독(16만 달러)의 8분의 1이다. 언론들은 “적합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박 감독은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며 웃었다.
지난달 19일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D조 베트남과 일본의 경기에서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경기 시작과 함께 터진 선제골에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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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최강팀을 가리는 스즈키컵(11월) 대회를 앞두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다음 달 17일부터 약 12일간 베트남 대표팀을 한국에 데려와 훈련과 연습경기를 할 예정이다. 박 감독은 “기대가 큰 만큼 부담도 되지만, 걱정한다고 될 것도 아니다. 즐기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동남아 진출을 염두에 둔 국내 지도자들에게 “도전에는 성공과 실패밖에 없다. 던져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며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의미있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인천=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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