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난민의 살인 사건으로 촉발
옛 동독 켐니츠서 1주일 넘게 시위 "외국인 추방 … 히틀러 만세" 외쳐
독일 작센주 켐니츠시. 구(舊)동독 시절 사회주의 계획도시로 뽑혀 '카를마르크스시'로 개명됐던 인구 25만의 소도시다. 이곳에서 일주일 넘게 이민자 추방을 주장하는 극우(極右) 단체가 대규모 폭력 시위를 일으켜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유럽을 휩쓴 반(反)난민·극우주의 바람의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선진국 독일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동서독 통일 후에도 여전히 낙후한 동독 지역민의 박탈감을 이용해 극우·인종주의가 파고들어 똬리를 틀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발단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켐니츠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다. 35세의 독일 주민이 거리 축제에서 시비가 붙은 이라크·시리아 출신 20대 청년들에게 살해됐다. 이 사건이 반이민 단체 '페지다(PEGIDA·서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유럽인회)' 지부의 소셜미디어에 퍼지더니 몇 시간 뒤 시 광장의 7m 높이 마르크스 동상 앞에 8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외국인은 나가라" "메르켈 퇴진하라"를 외치고, 중동인으로 보이는 행인들에 대한 무차별 폭행이 시작됐다.
이튿날인 27일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일반 시민, 단순 훌리건(난동꾼)까지 가세해 시위대 규모가 6000명으로 늘었다. 지난 1일엔 이 숫자가 8000명으로 늘었고, "하일 히틀러"라는 나치식 경례와 '히틀러 사랑해요' 같은 구호를 박은 기념품까지 넘쳐났다. 독일에서는 극도로 금기시돼 있던 나치 찬양 구호가 공공연하게 터져나온 것이다.
독일에서 2차 대전 이후 나치즘을 표방한 최대 규모 시위였다. 켐니츠 경찰 1800명으론 속수무책이었다. 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방정부와 이웃 9개 주로부터 병력을 지원받았다. 켐니츠 시민 3000여 명은 뒤늦게 1일부터 맞불 집회를 개최했고, 3일 독일 유명 밴드들이 연 합동 공연엔 6만5000여 명이 몰려 "우리가 더 많다" "이민자를 환영한다"고 외쳤다.
이 지역에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범죄가 크게 늘었다는 것은 공식 지표와는 다르다. 메르켈 정부는 2015년 이래 중동·북아프리카 출신 난민을 140만여 명 받아들였는데, 이 난민들은 일자리가 많은 서독 지역에 주로 정착했다. 서부의 단위 인구당 난민 비율은 동부의 4~5배에 달한다. 또 지난 5월 내무부가 발표한 범죄 현황 통계에 따르면, 독일 내 범죄 건수는 지난해 3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젊은 남성이 주를 이루는 난민 범죄율은 10% 정도로, 10~30대 독일 남성의 범죄율과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일간 슈피겔은 "일부 우발적인 난민 범죄를 고리로 대규모 극우 시위가 폭발하는 것은 구동독 지역만의 현상"이라고 했다. 2016년 서부 프라이부르크에서 일어난 아프간 난민의 강간 사건이나 지난 8월 오펜부르크의 소말리아인 살인 사건 때 극우파가 선동에 나섰지만, 시민들이 호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들은 1990년 통일 후 한 세대가 지나도록 해소되지 않은 뿌리 깊은 동서 격차와 이질감을 주요 원인으로 거론한다. 지난해 구동독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 지역의 73%에 불과했다. 실업률도 전국 평균은 3~4%대인데 동독 지역은 7~8%로 두 배가 넘는다. 특히 정·관계와 재계 수뇌부를 서독 출신들이 차지해온 데 대한 동독민들의 패배감이 크다.
지난해 총선에서 외국인 혐오주의와 EU 탈퇴를 내세운 극우 정당 AFD가 92석을 획득해 제3 정당으로 올라서는 파란을 일으킬 당시, 전국 득표율이 12%인 데 비해 구동독 지역에선 20%가 나왔다. 켐니츠시가 포함된 작센주에선 27%로 최고를 기록했다.
독일의 소리 방송은 AFD의 전직 간부를 인용, "AFD의 최대 호재는 동서 갈등이다. 극우파들은 동독인들에게 나치즘이 현 서독 중심 체제를 뒤집을 매력적인 대안이라고 호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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