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이 20일 1860뮌헨전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뮌헨 | 정재은통신원 |
[뮌헨=스포츠서울 정재은통신원]“너무 힘든 경기였네요.”
이재성은 ‘스포츠서울’과 만나자마자 허탈하게 웃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왼쪽 눈 밑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어깨는 축 처졌다. 독일 홀슈타인 킬의 핵심 미드필더인 그는 20일 독일 뮌헨 그륀발데어 경기장에서 열린 2018~2019 독일축구협회(DFB) 포칼 1라운드 1860뮌헨과 원정 경기를 치러 팀의 3-1 역전승에 공헌했다. 이재성은 90분 풀타임을 소화했고 마지막 쐐기골을 도왔다. 하지만 그는 만족스런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이날 낯선 포지션에서 출발했다. 왼쪽 윙으로 나섰다. 팀 발터 감독은 이재성이 왼쪽과 중앙을 오가도록 주문했고, 아직 팀 적응도 마치지 못해 새 포지션 적응은 더욱 어려웠다. 전반 20분 골대를 정면에 두고 패스를 받았으나 슛이 빗나갔다. 1분 후 프리킥 기회마저 허공으로 날렸다. 전반 8분 상대 니코 카르거가 선제골을 넣은 상황이라 킬에 더욱 아쉬웠다. 후반전 교체로 팀에 변화가 생기자 이재성은 다시 본인이 익숙한 포지션인 중앙으로 들어갔다. 움직임이 달라졌고, 마침내 팀의 마지막 득점자 킹슬리 신들러의 골을 도왔다. 독일 데뷔전에서 2도움, 이어진 홈 개막전에서 동점포, 이날 1도움까지 공식 경기 3경기에서 모두 공격포인트를 쌓았다.
독일에 온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선수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이재성의 고민은 깊어져 간다. “힘들다”는 말부터 꺼낸 그에게 이유를 들었다. 마지막에 이재성은 이렇게 말했다. “다음 주 레겐스부르크 원정에선 더 좋은 경기력 보여드릴게요.”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들었나.
아직 적응이 잘 안 된 상태에서 이렇게 원정을 왔다. 내가 낯선 포지션(왼쪽 측면)에 서서 뛰었다. 여러 면에서 힘든 경기였다. 이제 3주밖에 안 됐다. 아직 적응하는 단계에 있다. 오늘 내 플레이는 아주 실망스럽지만 이런 것들이 적응해 나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준비해야겠다.
-왼쪽에서 뛰었다. 팀 발터 감독이 기대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사이드로 나왔지만 가운데에서 플레이를 하라고 했는데 이 포지션에 서다 보니 이해를 잘하지 못했다. 뭔가 잘 안 맞았다. 후반에는 좀 더 가운데로 들어가려 노력했다. 또 선수 교체로 가운데에서 뛸 수 있었기 때문에 후반에는 조금 더 좋았던 것 같다.
-리그 2경기에 이어 포칼 1라운드에서도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그런 공격 포인트 덕분에 적응하는 데 있어 자신감이 붙는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일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것보단 내용상으로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팀에 어떻게 더 녹아들까 하는 걸 항상 생각하고 있다. 감독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훈련 때부터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라고 말씀해주셨다. 계속 노력하고 있다.
-어쨌든 연속 공격 포인트로 기대감이 쌓이는 건 사실이다.
그런 기대감에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함부르크전 때도 나 자신도 모르게 잘 풀렸다. 거기서 주위의 기대감 높아졌고 다음 경기에서 골까지 넣다 보니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기대감이 너무 높아졌다. 부담감과 압박감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용병이다. 이런 걸 이겨내고 버텨내야 더 성장하는 것 같다. 경기 내용적인 측면이 더 좋아져야한다.
-지금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주는 본인의 퍼포먼스를 말해보자면.
나의 100%를 못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잔디 적응도 안 됐고, 음식도 적응이 안 됐다. 모든 부분이 적응하는 단계다.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말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응하는 게 첫 번째 임무다. 팀에 빨리 녹아들고 싶다. 함부르크전때는 우리가 패스 플레이를 잘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좀 재밌게 경기를 뛰었다. 하지만 다음 하이덴하임은 터프했다. 독일 축구를 딱 연상시키게 했다. 그런 걸 적응해야 할 것 같다.
-생활 적응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여전히 호텔에서 지내고 있는데.
집을 좀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구단에서도 신중하게 집을 골라주는 중이다. 그래서 아직 호텔에서 형과 둘이 생활한다. 시간이 좀 걸린다. 나는 해외 첫 생활이고, 어딜 가든 그런 것은 경험해야 하는 거로 생각한다. 해외에서 집 구하는 부분부터 하나하나 다 내게는 익숙지 않다보니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차근차근히 해나가야 한다. 꿈을 위해 왔으니 감수해야 한다. 감수하고 그라운드 안에서 내 꿈을 펼쳐야 한다.
한국인 팬이 홀슈타인 킬-1860뮌헨전에 나타나 응원하고 있다. 이재성은 그에게 친절하게 사인을 해줬다. 뮌헨 | 정재은통신원 |
-지금 제일 힘든 것은 무엇인가.
언어와 음식이 제일 힘들다. 언어는 배우고 있는 단계고 처음이다 보니까 소통하는 데 있어서 어렵다. 선수들이랑 장난을 치고 싶더라도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한국에서 먹는 것만큼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있어서 그런 부분이 힘든 것 같다.
-독일에서 장거리 원정을 왔다 갔다 하는 부분도 처음이라 힘들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에 있을 때는 버스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지만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게 참 힘들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내 꿈을 위해 왔다.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더 큰 선수가 되려면 이런 피로가 큰 일정도 잘 수행해야 한다. 다행인 건, 일주일에 한 경기라서 몸을 회복하는 데 쉽다.
-발터 감독과 3주 생활 해보니 어떤가.
감독님은 워낙 친절하고 유쾌하다. 형처럼 웃고 장난쳐주신다. 나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도 물어보신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등등 섬세하게 챙겨주신다. 이런 감독님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입단 초엔 “내가 잘하면 동료들이 인정해줄 것”이라고 했다. 지금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나.
우선 여기 있는 선수들이 워낙 착하고 잘 챙겨주고 있다.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끝까지 격려하고 다독여준다. 오늘도 전반에 결정적인 찬스를 날렸지만 동료들이 격려를 해줬다. 그 덕분에 끝까지 잘 뛸 수 있던 것 같다. 공격포인트 말고는 경기력과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다.
-전북이 휘청거렸다. 2위 경남에 잡히고 포항에 크게 지기도 했다. 다 챙겨봤나.
내가 전북에서 뛰었고, 그곳에서 사랑을 많이 받은 덕분에 이곳에서 꿈을 실현하고 있다. 그래서 전북 경기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챙겨본다. 오늘 서울전도 챙겨봤다. 내가 유럽에 나왔다고 해서 무너질 팀은 전혀 아니다. 워낙 개인 능력이 좋은 팀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응원해주면 곧 다시 경기력으로 보답할 팀이다.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워낙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팀이다.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고,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이기는 팀이다.
20일 홀슈탈인 킬-1860뮌헨전에서 한 팬이 이재성 마킹 셔츠를 입고 있다. 뮌헨 | 정재은통신원 |
-한국에 또 하나 큰 이슈가 있었다. 벤투 신임 국가대표 감독이 선임됐다.
먼저 김판곤 기술위원장님이 월드컵 때부터 우리 선수들과 소통을 했다. 대표팀 생활적인 부분부터 하나하나 우리 의견을 귀담아들으시고 반영해주셨다. 그런 부분에 너무 감사드린다. 최고의 판단을 내리셨다고 믿는다. 국민도, 선수들도 모두가 벤투 감독님을 믿고 잘 따라가야 한다. 앞으로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벤투 체제에서 기대하는 부분은.
우선 나의 퍼포먼스를 최대한 끌어내서 내가 다음 국가대표에 승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면 감독님이 요구하는 전술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좋은 축구로 팬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독일에서 매주 월드컵을 치르는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세 경기를 치렀는데, 좀 느껴지나.
그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매주 느끼고 있다. 원정이지만 많은 팬분이 오셔서 경기장을 빛내줬다. 그 덕분에 선수들이 더 좋은 퍼포먼스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축구가 더 발전하는 것 같다. 이런 걸 우리 한국 선수들도 배우고 경험해서 훗날의 선수들에게 잘 심어줘야 할 것 같다.
silva@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