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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남자도 당할 수 있다" 미 성범죄전문가가 본 '한국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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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말리 美 검사장 “미투는 성대결 아니다”
‘나도 당할 수 있다’ 공감대가 ‘미투’의 불씨
위력에 의한 성폭력…조직안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불특정 다수에게 증거없는 ‘미투’ 폭로는 재고해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성추문 사건 때도 나 역시 처음에는 폭로한 여성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권력, 업적에 비춰 ‘클린턴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지난 23일 대검찰청 주최 ‘2018 서울 국제형사법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낸시 오말리(O’malley) 미국 캘리포니아주 알라메다 카운티 검사장은 솔직했다.

여성 대상 성폭력 분야 전문가인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부지역 첫 여성검사장이며, 알라메다에서만 2010년·2014년· 2018년 연속 과반수 넘는 동의를 얻어 검사장으로 당선됐다. 성범죄를 오래 다뤄온 그와 ‘미투운동’과 ‘미투 이후’의 여러 갈등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선일보

한국국제교류재단(KF) 초청으로 국제형사사법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오말리 검사장은 지난해 9월 한국 검찰 내 ‘여성 1호’ 타이틀을 가진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한인검사협회(KPA) 시상식에서 '선구자상(Pioneer Award)'을 받기도 했다./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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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올해초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백으로, 이후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그러나 폭로 의도를 의심받기도 하고, 역으로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은 어떤가.
“서지현 검사 미투 사건은 잘 알고 있다. 폭로 초기에 ‘다른 의도가 있어서 폭로한다’는 시선도 있었다는데 대부분 ‘미투 운동’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피해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사회·정치적으로 이룬 게 많은 사람이고 피해자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nobody)이라면 더욱 그런 일이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성추문 사건을 두고 나 역시 처음에는 폭로한 여성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권력, 지위 등에 비춰 “클린턴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틀린 판단이었다.
권력에 취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대개 여러명을 상대로 문제를 저지른다. 이 때문에 문제를 ‘눈감고 넘어가지 않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자신이 피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피해자 마음을 이해하고 “언제든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폭로했을 때 직장내에서 해고되지 않도록 조치가 있어야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투 운동’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도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재판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지기도 전에 ‘범죄자’로 낙인 찍혀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도 그렇다. 많은 남성들이 명백한 증거가 없더라도 ‘미투’ 때문에 조직에서 잘리는 경우가 있다.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 중에서는 자기 정체성을 권력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범죄 사실이 발각되어 권위가 추락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미투 운동’에 몇가지 단계나 조건이 있어야한다. 증거에 기반한 폭로가 이어져야하고, 폭로 방식에서도 변화가 있어야한다. 현재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방법은 파급력이 크지만 피해도 크다.
조직 내에서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경로가 있어야한다. 작은 목소리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여 전문적으로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인력도 필요하다. 문제 제기가 이뤄지면, 많은 사람들이 상사(가해자) 편을 드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12년 전 한 흑인 여성이 ‘미투’를 외쳤으나 잠잠하다 작년 들어서 운동이 크게 이어졌다. 왜 그랬는가.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경우도 미국 맨하탄 지방검찰청에 2~3년 전 사건이 접수됐다. 그러나 피해 사실을 밝히는 피해자들이 많지 않아서 별다른 조치 없이 묻혔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더 이상 이 같은 차별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정치 사회적인 운동이 되는 것이다.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 숫자가 많아질수록 이 같은 외침에는 힘이 실린다.
여전히 대부분 조직 리더는 남성이다. 미국 사립 로펌에서도 임원직 5% 미만이 여성이고, 여성에게는 유리천장이 존재하는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권리를 찾자’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건 긍정적인 움직임으로 보고 싶다.”

조선일보

오말리 검사장은 올들어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서지현 검사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내 성추행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 단장이었던 ‘1호 여성 검사장’ 조희진 전 검사장의 사직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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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피해자로 남성이 미투운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에선 어떤가.
“남성에 의한 미투는 미국에도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드라마 스태프가 유명 배우 케빈 스페이시에게 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할리우드에서 일하지 못하게 됐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남성들이 피해를 받는 사례도 흔하고, 이런 이슈가 공론화되고 있다. 미투 운동 본질은 한쪽 성별을 보호하거나 나머지를 배척하는 게 아니다. 이런 피해가 자신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게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 부작용으로 직장 내에서는 여성을 배제하는 ‘팬스룰’이나 성별 혐오와 관련된 집단 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질문에 답하기 전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소개하고 싶다. ‘테이블에 앉지 않으면 당신은 메뉴가 되고 만다(If you are not at the table, you are on the menu)’라는 말이 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성적 차별은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면, 성적으로 피해를 당하더라도 이 같은 문제는 반복된다는 얘기다.
물론 미투 운동에서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다만 최근에 나온 ‘미투 운동’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었고 이 때문에 성대결 양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미투 운동’ 본질은 성대결이 아니라, 성적으로 피해를 입은 자의 권리를 찾는 운동이다. 교육이 뒷받침되면 되면 지금과 같은 성별 갈등 양상은 줄어들 것이다.”

조선일보

1주일간의 방한 일정에 남편도 동행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동안 남편은 커피숍 주변에서 기다렸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직접 오말리 검사장 명함을 나눠주며 외조를 하기도 했다./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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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달라져야하나.
“첫번째, 미투운동 불씨를 죽게 해서는 안된다. 지금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더 많은 남성·여성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두번째, 더 많은 여성들이 직장 리더 역할을 해서 ‘성적 감수성’이 높은 조직을 만들어야한다. 남성 자리를 뺏어서 여성에게 주자는 의미가 아니고 능력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들은 ‘권리를 인정해달라’며 목소리 높일 필요 없이 묵묵히 본인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게 중요하다. 세번째, 뒤이어 나오는 또 다른 ‘미투 운동’이 성공하도록 독려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미국에선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의미의 `#WithYou`(당신과 함께) 뿐만 아니라 소송을 위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모금하는 `#TimesUp`(때가 됐다) 해시태그를 붙인 운동까지 나오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정서적 지지 뿐만 아니라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도 주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이 생겼을 때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 ‘여성 1호 검사장’인 조희진 검사장이 사임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조희진 검사장을 LA에서 본 적이 있다. 내가 본 그녀는 ‘충직한 공무원’으로서 책임감이 강했다. 미국 지방검사장 58명 중 여성은 5명 뿐이다. 미국도 성차별적 편견이 굉장히 심하다. 사퇴한 이유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본인이 원해서 한 선택이길 바라고,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게 여성 권리를 위해서 일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행보는?
“지난 40년간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집중했다. 강간 및 살인 사건을 DNA 분석 등을 통해 범죄자를 찾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또 최근 미국에서는 11~17세 여자 아이들이 납치당해 성노예로 팔려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 분야를 더 연구해볼 예정이다.”

[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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