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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월드컵 돋보기]빅게임선 힘 못 쓰는 ‘모래알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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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시드니 올림픽 연달아 금 따고도 월드컵선 4강 문턱 못 넘어

러시아서도 줄줄이 1차전 패배…주먹구구식 조직에 ‘원팀’ 구현 못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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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문제처럼 보였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가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을 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카메룬이 아프리카 팀으로 또다시 정상에 올랐을 때 시그널은 명확했다. ‘세계 축구에 아프리카의 시대가 오고 있다.’

아프리카 축구는 유럽이나 남미 축구와 또 달랐다. 압도적인 탄력과 피지컬, 낙천적인 자유분방함, 축구의 논리를 의미없게 만들어버리는 예측 불허의 패스와 돌파, 전광석화 같은 슈팅은 축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펠레는 “20세기 안에 아프리카 팀이 월드컵을 제패할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그의 다른 예언들과 마찬가지로 그 예언 역시 ‘펠레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지만.

올림픽을 제패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프리카 팀은 월드컵에서 우승은커녕 4강 진출조차 아직 요원하다. 카메룬(1990년)과 세네갈(2002년), 가나(2010년)가 8강까지 오른 게 최고 성적이다. 아프리카 땅에서 열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는 6개 팀이 나섰지만 가나만 유일하게 8강까지 살아남았다. “(아프리카 팀들은) 경기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우승하지 못한다”는 자조적 표현이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출발 역시 밝지 않다. 모로코와 이집트가 이란과 우루과이에 각각 0-1로 덜미를 잡혔고, 나이지리아마저 크로아티아에 0-2로 완패했다. 세네갈과 튀니지까지 포함해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5개 팀 중 한 팀도 FIFA 랭킹 20위 안에 들지 못했다는 게 아프리카 축구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조지 웨아와 디디에 드록바, 야야 투레, 그리고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무함마드 살라흐까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축구가 월드컵에서 좀체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코트디부아르를 이끈 스벤 고란 에릭손 전 감독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축구 부진의 원인을 한 단어로 표현했다. ‘조직(organization)’이었다. 대표팀 지원 시스템, 국내 리그, 협회 행정, 유소년 및 지도자 양성 시스템 등이 모두 주먹구구식이라는 얘기였다. 조직은 팀 자체에서도 문제가 된다. ‘팀은 개인보다 강하다’고 할 때의 ‘팀’을 온전히 구현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자유분방함이 만들어내는 마법의 순간들마저 실종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프리카 축구에 대한 기대를 접기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육체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아프리카 축구의 매력이 너무 치명적이다. 러시아에서 전해져 오는 아프리카 팀들의 초반 부진 소식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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