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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김용일의 쁘리벳 러시아]"한국인은 손흥민-박지성 중 누구를 최고로 평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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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한국 축구 2000년대와 201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 스타 박지성(오른쪽)과 손흥민. 두 사람이 유일하게 함께 호흡을 맞춘 건 지난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이다. 사진은 지난 2011년 1월2일 아시안컵 대비 대표팀 훈련을 위해 걸어나가는 두 사람. 김도훈기자



[모스크바=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한국 사람은 손흥민-박지성 중 누구를 최고로 평가하나요?”

기자는 러시아로 오는 길에 한국 축구에 정통한 일본인 칼럼니스트 요시자키 에이지 씨에게 질문을 받았다. 월드컵 본선 첫 경기를 앞두고 한국과 일본 주력 선수인 유럽파 공격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다. 결론적으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 재능이나 보이는 수치에서는 손흥민이 박지성보다 ‘뛰어난 선수’로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사람에겐 박지성이 더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러시아 월드컵이 손흥민에게 위대함으로 가는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2002년 ‘박지성 시대’를 지켜본 한국 축구는 2010년대 ‘손흥민 시대’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관심사다. 꼭 우리만의 관심은 아닐지 모른다. 12년 전 독일 월드컵을 취재한 한 선배 기자는 현지 우리 상대국(토고, 프랑스, 스위스) 캠프를 다니면서 ‘박지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묻는 말에 시달렸다고 한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을 비롯해 현지 곳곳에서 만나는 전 세계 축구 미디어, 관계자가 한국하면 입버릇처럼 튀어나는 게 ‘손흥민’이다. 축구를 배우고 익힌 과정은 차이가 있으나 둘의 커리어 궤적은 묘하게 닮았다. 각각 네덜란드(박지성), 독일(손흥민)에서 기반을 다진 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전성기를 맞았다. 그리고 잉글랜드 무대에 안착한 뒤 국가대표팀 핵심 선수로 발돋움해 두 번째 월드컵에 참가한 것도 마찬가지. ‘등번호 7’도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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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주장으로 원정 첫 16강을 이끈 박지성. 사진은 2010년 6월23일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 오디아를 피해 패스하는 박지성. 최승섭기자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박지성은 ‘만 21세’ 풋내기로 뛴 2002 한·일 월드컵 때과 비교하면 그라운드 지배력이 달라졌다. 프랑스전 동점골도 기억에 남지만, ‘원정 첫 승’을 거둔 토고전(2-1 승)에서 안정환의 결승골에 이바지한 장면이 압권이었다. 일종의 장계취계(將計就計-상대편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계략)를 연상케 하는 문전 쇄도로 상대 수비를 끌고 가 안정환에게 슛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보이지 않는 공헌을 했다.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한 2010 남아공 월드컵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박지성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축구 팬이면 모두 알 것이다. 당시 박지성이 사랑받은 건 두 개의 심장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은 엄청난 활동량과 희생정신, 위기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근성이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이 곧 그의 부족한 재능을 메워주고 경기력도 매 시즌 거듭났다. 그리고 그가 위대한 선수로 거듭난 건 남아공 월드컵 때 주장 완장을 차면서다. 비범함보다 평범함이, 성인(聖人)보다 보통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는 한비자처럼 박지성은 ‘평범함의 위대함’을 실천한 사람이다. 자신이 유럽파를 대표하는 최고 선수였음에도 전체 경쟁력을 위해 스스로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카리스마를 앞세운 캡틴이 대세였다면 박지성부터는 부드럽고 배려하는 리더십이 주목받았다. 그게 남아공의 성공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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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의 손흥민이 지난달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공을 몰고 있다. 대구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임시이긴 했으나 러시아로 오기 전 국내에서 열린 온두라스전에서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4년 뒤 카타르 월드컵 때 손흥민이 주장으로 팀을 이끈다면? 아직 그에게 군 문제 등 유럽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여러 고비가 있으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꽤 높다. 그렇다면 손흥민에겐 러시아 월드컵이 위대함으로 가는 여정이 돼야 한다. 한국 최고의 선수라는 자부심은 품되, 현명하게 팀의 중심 구실을 해야 한다. 아버지 손웅정 씨로부터 강하게 축구를 배운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기자는 ‘손흥민이 분명히 다른 축구 사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 뿐 아니라 축구에 대한 접근성이나 이해도가 학원 축구에서 성장한 선수보다 질적으로 다르다. 독일에 이어 잉글랜드서 이 정도로 성공한 한국 선수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교만하거나 지나치게 자기 표현을 강하게 하는 건 환경이 달랐던 동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늘 겸손한 손흥민이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올 수 있는 습관 아닌 습관이다. 국내 평가전에서 크로스 실수를 저지른 김민우를 향해 고개를 저은 것이나, 오스트리아 볼리비아전 직후 정우영과 불화 논란은 단순히 바라보는 사람의 오해일 수 있겠지만 손흥민 스스로 먼 미래를 위해 다잡아야 할 행동이다. 이게 위대함으로 가는 첫 발이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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