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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러시아월드컵 개막] 장애와 국경은 무의미…축제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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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체 장애우(초록색 셔츠)를 주변으로 공간을 두고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사진=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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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체 장애우가 주변 사람들이 축구를 시청할 공간을 터주자 고마워하고 있다 [사진=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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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러시아월드컵이 개막한 15일(한국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의 구원 사원 옆에 있는 코뉴센나야 광장 뒷편에서는 인상적인 풍경 하나가 그려졌다.

이날 이곳에서는 거리 단체응원 행사가 열렸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는 '팬 페스트(Fan Fest)'다. 우리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 특설무대를 설치하고 다 함께 모여 축구대표팀을 단체로 응원하는 것과 같았다. 화면에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개막 경기가 중계되고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시청했다.

사람이 많았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을 꽉 차고도 남을 것 같았다. 복잡한 인파 속에 정신지체 장애우가 휠체어를 타고 자리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인이었고 나이는 20~24살 쯤 되어보였다. 그의 오른편에는 가족들이 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행여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아들이 다치기나 할까 걱정하는 듯했다. 그때 장애우 왼편에 있던 파란색 옷을 입은 한 아저씨가 다들 장애우를 비켜서 가달라는 듯 소리치며 손을 내저었다. 순간 바다가 갈라지듯 장애우 주변으로 공간을 두고 사람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장애우의 화면 시야를 가릴 까봐 그의 앞으로 공간을 많이 내서 이동했다.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장애우의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휠체어를 뒤로 살짝 당겼다.

거리응원을 하는데 장애 따위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전반 12분 러시아 대표 공격수 유리 가진스키가 헤딩으로 선제골을 넣자 장애우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일제히 두 손을 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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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거리응원을 하는 광장에 만들어진 특설무대와 대형전광판 [사진=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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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사진=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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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거리를 다녀보면 광장이 유난히 많다. 광장은 기적을 만드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도 경험했다. 시청앞, 광화문에서의 불꽃 행렬이 정권을 바꿨고 우리의 권리를 지켜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은 러시아의 2월, 10월 혁명이 시작된 장소기도 했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이 광장은 또다른 의미의 혁명을 시작했다. 국경을 초월한 '작은 지구촌'을 만들고 모두가 하나가 됐다. 이날은 날씨가 유난히 더웠다. 러시아월드컵 개막 열기를 반영하는 듯했다. 12시~2시 점심시간이 지나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일제히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러시아 시민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란, 모로코, 멕시코, 덴마크, 콜롬비아 등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각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한 곳에 집결했다. 이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광장에 모여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왼쪽 사람이 "오 러시야!라고 하자 오른쪽 사람이 "오 브라질!"하며 서로 상대방의 모국이름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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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외치며 거리를 활보하는 콜롬비아 축구팬들 [사진=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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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기를 들어다 보이는 멕시코 축구팬들 [사진=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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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 나타난 스웨덴 여성팬 [사진=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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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만난 이들도 있다. 이란과 모로코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나팔을 불면서 장난스러운 신경전을 했다. 이란과 모로코는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B조리그 첫 경기를 한다. 우리 축구대표팀과 경기할 멕시코, 스웨덴 사람들도 만났다. 멕시코 사람들은 기자를 불러 영어로 "한국인이냐"고 묻고는 "당신들 졌어!"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우리가 독일도 이길거야"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눈은 모두 대형화면을 향했다. 러시아가 골을 넣을 때마다 득점한 선수의 이름을 모든 사람들이 연호했다. 러시아 사람이 콜롬비아 사람과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월드컵 첫 골을 넣은 "가진스키" 이름을 함께 불러 눈길을 끌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 열기는 식지 않았다. 러시아 국민들은 거리를 활보하며 "러시아! 러시아!"를 외쳤다. 도로 위에는 많은 차들이 광장을 빠져나가는 탓에 교통체증이 심했지만 운전자들은 경적소리로 응원가를 연주하며 운전석에서 함께 환호했다.
반면 타국 축구팬들은 자국 선수의 이름을 외치면서 걸었다. 마치 "우리도 러시아처럼 크게 이길거야"라고 주문을 외는 것 같았다. 콜롬비아 팬들 무리는 간판 스타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연호했다.

지구촌 축구 축제는 그렇게 뜨겁게 막을 올렸다. 모두가 기뻐해야 할 축제지만, 승부의 세계는 또 냉정했다. 모두가 웃을 때 사우디는 울었다. 사우디는 이날 모스크바에 있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 경기에서 러시아에 0-5로 크게 졌다. 16강 진출을 노리고 개막승을 챙기려 했던 사우디는 조별리그 운영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러시아는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최고 분위기로 시작했다. 무려 5골을 몰아쳤다. 스타니슬라브 체르체소프 러시아 감독도 "5골은 상상도 못했다"며 기대 이상의 결과에 놀라워했다. 공격진이 모두 제 몫을 다했다. 알렉산드르 골로빈은 1골2도움, 데니스 체리세프는 2골, 아르템 주바가 1골1도움을 책임졌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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